Description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소설 ≪아엘리타(Аэлита)≫는 1922년 베를린에서 집필되었고 그해 그곳에서 열렸던 소비에트 건국 5주년 기념식에서 그 일부가 낭독된 이후, 당시 가장 저명한 소비에트 문학잡지인 <붉은 처녀지(處女地)>(1922, № 6; 1923, № 1, 2)에 게재되었다. ≪아엘리타≫는 톨스토이의 창작 이력 가운데, 상반되는 두 시기의 경계에서 나온 작품으로, 그가 망명지에서 조국으로 돌아온 후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처음 출판한 것이다. 많은 연구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작품은 소비에트 환상과학과 유토피아 담론의 본격적인 장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 이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이 작품은 1924년 야콥 프로타자노프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원작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1924년 9월 25일 모스크바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든 군중들 때문에 정작 감독인 프로타자노프 자신은 극장에 입장하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영화 <아엘리타>는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전함 포템킨>이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다른 어떤 소비에트 영화보다도 해외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아엘리타 ? 로봇들의 반란>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아엘리타≫는 H. G. 웰스, J. 런던, E. 버로스로부터 O. 슈펭글러, R. 슈테이너, B. 브류소프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영향의 원천으로부터 차용된 조각들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소설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화성에 관한 일련의 소설들 가운데에서, 선행 작품인 G. 웰스의 ≪우주 전쟁≫(1898), A. 보그다노프의 ≪붉은 별≫(1908) 그리고 톨스토이의 동시대인인 미국 작가 E. 버로스의 ≪화성의 달 아래에서≫(1912) 다음으로 4번째 위치를 차지한다. 원전의 약 52%를 발췌했다. 수 세기 동안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 위치한 추상적인 이상 또는 보다 나은 미래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니까 그런 작품들이 주로 그 세계를 묘사하는 화자의 동시대로부터 머나먼 미래 세계를 그렸다고 한다면, ≪아엘리타≫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톨스토이의 유토피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에 위치하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문맥 속에서 쓰이고 읽히는 텍스트이다. 톨스토이가 화성을 통해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현존 사회·정치적 시스템의 결점을 제시하기 위해 실제 사회 질서와 대조시키고 있는 이상적 모델은 먼 미래가 아닌 아주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 시공간 속에서 현존하는 현실과, 고리키가 말한 ‘제3의 현실’인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의 사라짐은 독자의 실제 세계와 유토피아적 미래상 사이의 긴장을 증대시키며, 기존의 정적인 유토피아 모델을 동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환상의 합리화가 주된 사건이며, 현실의 대안적 모델의 구성이 그 기능인, 그러한 환상적 플롯에 토대를 둔 작품을 ‘환상과학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엘리타≫는 일종의 환상과학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유토피아가 단지 ‘존재하지 않는 장소(u-topos)’뿐만 아니라 ‘좋은 장소(eu-topos)’를 의미하며, 그것의 기능이 단순히 현실의 가능한 변형들 중에서의 대안이 아닌 보다 나은 변형의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아엘리타≫는 또한 유토피아 작품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1920년대 당시 소비에트 문학에 있어서 유토피아는 단지 수많은 문학 장르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유토피아는 ‘미래라는 이름의 전쟁’과 ‘신구의 투쟁’, ‘먼 미래를 향해 도약하는 가죽점퍼 차림의 볼셰비키’에 관한, 그 당시 모든 문학작품에 스며들어 있었다. 즉, 1920년대에 유토피아는 모든 예술과 삶 자체의 불변적 특성을 구성하고 있었던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천상의 유토피아를 이 지상으로 끌어내렸던 소비에트 문학은 ≪아엘리타≫를 통해 또다시 지상의 유토피아를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리기를 꿈꿨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