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지옥의 묵시록
어린 여우
먼지의 무게
나는 물방울이었다
욕조
바닥
그는 목발을 짚고 별로 간다
벽오동 심은 뜻은
인생목록
엥겔스의 여우사냥
가장 위험한 동물
항소이유서
가장 먼 길
지퍼헤드 1
지퍼헤드 2
수의
강
제2부
붉은 립스틱
마지막 연주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
크리스마스 선물
지난번처럼
나무
멀리 있는 빛
찢어진 고무신
노란 넥타이
햇빛 한 줌
3시간
산수유 씨앗
친구
마당을 쓸며
용서
돌탑
푸른빛
제3부
동백꽃
겨울 폭포
추모
빈틈
백조
복사꽃
새로운 유배지
폭탄
국가기밀
버킷리스트
E=mc2
악의 평범성 1
악의 평범성 2
악의 평범성 3
살아남은 죄
스타 괴물
새와 토끼
토끼훈련
제4부
이 모든 것은
맨발
유언
수행
미자의 모자
영혼의 목걸이
페르시아의 흠
나에게 묻는다
촛불은 갇혀 있다
운동화 한 짝
흙수저
나를 밟고 가라
대나무처럼
빙어
베로니카
길상사
히야신스
지뢰밭 건너기
나를 위해 울지 말거라
해설|김수이
시인의 말
악의 평범성
이산하 · Poem
148p

창비시선 453권.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폭로한 장편서사시 <한라산>으로 옥고를 치르고 긴 시간 절필 끝에 두 번째 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1999)를 발표했던 이산하 시인이 그러고도 다시 22년이 흘러 신작 시집 <악의 평범성>을 출간했다. '적'의 정체가 분명했던 시절에 격렬히 저항했고 그로 인해 안팎으로 상처를 입으며 벼렸던 시인의 날 선 시선과 감성은 겉으로는 안온한 일상으로 포장된 오늘날의 '적'을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켜 어떻게 다시 빛을 발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편들로 빼곡한 시집이다. 자신을 찍을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겠다는 '나무'의 자세로 시를 쓴 시인 이산하,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는 이번 시집은 아직도 열렬하게 살아 있는, 저항하는 시 정신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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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를 찍어라. 그럼 난 네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마.”
<한라산>의 시인 이산하, 희망 없는 세상에서
절망하지 않되 응시하고 저항하는 시 정신의 향연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폭로한 장편서사시 <한라산>으로 옥고를 치르고 긴 시간 절필 끝에 두 번째 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1999)를 발표했던 이산하 시인이 그러고도 다시 22년이 흘러 신작 시집 <악의 평범성>을 출간했다. ‘적’의 정체가 분명했던 시절에 격렬히 저항했고 그로 인해 안팎으로 상처를 입으며 벼렸던 시인의 날 선 시선과 감성은 겉으로는 안온한 일상으로 포장된 오늘날의 ‘적’을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켜 어떻게 다시 빛을 발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편들로 빼곡한 시집이다. 자신을 찍을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겠다는 ‘나무’의 자세로 시를 쓴 시인 이산하,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는 이번 시집은 아직도 열렬하게 살아 있는, 저항하는 시 정신의 향연이다.
역사와 인간 앞에서 겸허해지며
일상에 숨어든 악을 정면 응시하는 시 정신
이십대의 문학청년이 목격한 ‘제주 4·3항쟁’의 진실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시를 쓰고 발표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던 엄혹한 시절을 통과하며 시인은 이제 노년을 맞이했다. 자신이 맞닥뜨렸던 불의와 불합리와 부정의 세상은 이제 한결 보드랍고 온화하고 민주적인 표피를 보이지만 양상과 방식을 달리해 여전한 불의와 불합리와 부정 투성이다. 광주항쟁의 피해자를 비아냥하고, 세월호사건 피해 학생을 조롱하는 듯한 SNS의 글에 환호하는 이들이 “모두 한 번쯤 내 옷깃을 스쳤을 우리 이웃”임을 알기에 “가장 보이지 않는 범인은 내 안의 또다른 나”(「악의 평범성1」)라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악’은 결코 비범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하기에 어쩌면 더 악랄해지고 지독해졌으리라. 이런 ‘악’을 양산하는 사회구조는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노동을 천시하는 변질된 자본주의의 모순을 기반으로 한다.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새로운 가면을 쓰며 폭주하고 있다./맑스의 자본론이 오히려 예방주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엥겔스의 여우사냥」)는 시인의 통찰에 눈이 번쩍 뜨이는 이유이다.
해설을 쓴 김수이의 말대로 이산하의 이번 시집은 “최근 시단에서 찾기 힘든, 거시 역사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시집이다. 해서 김수이는 이 시집이 세 가지 유형의 바퀴를 그린다고 해석한다. 첫째,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으로서의 수레바퀴로 ‘자본론과 진화론’(「엥겔스의 여우사냥」)으로 대표되는 바퀴이다. 둘째는 역사를 피로 물들여온 악의 평범성, 즉 인간을 살상하는 끊임없는 폭력의 바퀴로 “한국전쟁 때 미군지프에 깔려 죽은/북한 인민군들 머리와 몸의 바퀴자국이 마치 지퍼무늬 같다고 해서”(「지퍼헤드2) 생긴 ‘지퍼헤드’라는 표현으로 상징된다. 셋째, 꿈과 신념이 잿더미가 된 세상에서도 인간이 두 손으로 굴리는 삶의 바퀴이다. “두 바퀴를 두 손으로 직접 굴리는 이 휠체어는/천천히 손에 힘을 주는 만큼만 바퀴자국을 남긴다”(「산수유 씨앗)에서 휠체어 바퀴자국은 앞세대와 뒷세대,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져야 하며, 인간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준다고 해석한다. 타인과 함께하는 발걸음이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시인의 말」)는 이 시집이 그려낸 세상에서, 희망은 없을지언정 시인은 절망하지도 좌절하지도 않는다. 또한 형형한 눈빛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역사와 현실을 마주하는 시인은 “현대사 앞에서는 우리 모두 문상객이 아니라 상주”(「나를 위해 울지 말거라」)여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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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하 시인과의 짧은 인터뷰 (질의: 편집자)
-22년 만의 신작 시집을 펴내셨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시를 안 쓰신 것은 아닐 텐데, 시집이 이렇게 늦어진 이유가 있으신지요?
시보다는 산문과 번역에 치중했던 편이다. 그동안 짧은 아포리즘 같은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 산사기행집 <적멸보궁 가는 길> <피었으므로 진다>, 장편성장소설 <양철북>, 번역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프리모 레비 지음) <체 게바라 시집>(체 게바라 지음), 복원판 시집 <한라산> 등 7권을 내며 여러 악기들을 연주해보았다. ‘시’라는 악기도 혼자 틈틈이 튜닝하며 연주했는데 공연만 오랜만에 했을 뿐이다.
-‘<한라산>의 시인’이라는 표현은 훈장일 수도 있으나 족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유배지」에서도 본인이 <한라산>으로 인해 유배를 갔고, 이제 새로운 유배지가 어른거린다고 쓰셨습니다. 이산하 시인에게 <한라산>은 어떤 의미인가요?
「한라산」 서사시는 내 27살의 비명이자 통곡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평생의 짐이 될 줄은 몰랐다. 네게 너무 많은 진실을 강요했고, 너무 많은 물고문의 악몽을 상기시켰다. 나도 가끔은 진실을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럴수록 더욱 강박감의 늪에 빠진다.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 각별히 집중했던 주제나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고문당할 때 가장 힘든 것은 고문자가 웃으며 자기 자식들 자랑할 때이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그들이 나와 똑같이 평범한 얼굴들이라는 점이다. 살아간다는 것의 다른 표현은 인간이 얼마만큼 인간이기를 포기하는가이다. 우리는 가끔씩만 인간이 된다.
-시와 문학의 정치성과 사회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 다수 실렸다. 여전한 사회적 모순에 마음과 눈길을 보내는 시인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시는지요?
세상은 강자가 약해져야 바뀌는 게 아니라 약자가 강해져야 바뀐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다음 시집은 언제쯤 기대해도 좋을지요?
8명의 젊은이들이 동시에 처형된 ‘인혁당 사건’ 서사시를 내년쯤 낼 예정이다.



마정
4.5
바닥 누군가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가봤다고 말할 때마다 누군가 인생의 바닥의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고 말할 때마다 오래전 두 번이나 투신자살에 실패했다가 수중 인명구조원으로 변신한 어느 목수의 얘기가 떠오른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이 강에 투신자살하면 거의‘99대 1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시신의 99%는 강물 속으로 가라앉다가 그대로 흘라가버리고 1%는 투신한 자리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흘러간 시신은 강의 바닥까지 완전히 가라앉은 시신이란다. 물론 잠시 머문 뒤 떠내려가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시신들은 한결같이 반쯤 눈 감은 채 미소를 머금어 마치 불상처럼 보인다고 했다. 어떤 생이든 막다른 벼랑에서 떨어져 바닥에 이르면 그곳이 정말 더이상 떨어질 수 없는 바닥의 바닥이라면 관짝을 부수고 나온 부처의 맨발처럼 오히려 고요해질지도 모른다. 고요해지면 더이상 두렵거나 더이상 취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바닥을 쳤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숨이 멎는다. 물론 욕망과 탐욕의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이르기도 전에 흘러간들 바닥을 치고 다시 떠올라 잠시 세상을 애도하고 흘러간들 시신을 염하고 운구하는 강물의 숨결은 한결같을 것이다. 언젠가 내 몸도 바닥에 이르지 못한 채 흘러가겠지만 언제나 가벼운 생일수록 바닥을 쳤다고 더욱 강조하겠지만 이제는 강물의 색깔만 봐도 수심을 안다는 목수의 말만큼은 바닥의 바닥을 치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을 믿는다. ————————————————————————- 생의 감각이 무뎌질 때마다 꺼내 읽어야지
Oo
3.5
결국엔 돌고돌아 나조차도 아주 평범한 악인인 것을
이제야
4.0
역사는 우리에게 강자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자가 강해져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가르쳤지만
규방이
3.0
아픔은 글감이 되어...
다니
4.0
This may contain spoiler!!
영이
4.0
시를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악의 평범성은 와닿는 부분도 많고 이해도 잘 되었다.. 세상에 얼마나 악한 이들, 일들이 평범하게 우리 주변에 있는지 알아서 그런건지 마음이 먹먹해졌다 악의 비범성이 없는 것이 악의 평범성이다 우리의 혀는 여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p.89
HISUTORY
4.0
어린 여우를 복복복 🫳
민현주
5.0
아름답지 않은 시라 말씀하시지만 읽는 이는 당신의 활자가 남아있기에 이 시가 아름답게 여겨진다. 당신의 활자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진실이 존재치 못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신의 활자는 역사이며, 아픔이자, 희망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따라가는 걸까 산 자가 죽은 자를 따라가는 걸까 걷는 길 위에는 여전히 함께이니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 2024.12.22 우리는 우리보다 앞 서 눈을 뜬 이에게 빚져 세상을 살아왔다. 이제는 그 뒤를 따라 눈을 뜬 우리가 앞 서 민주주의를 위해 걷고자 한다. 우리의 뒤에는 아직 눈 뜨지 못한 자가 함께하나 상관 없다. 언젠가 앞 선 이에게 물들어 눈을 뜰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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