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선험적 현상학 열풍과 『데카르트적 성찰』의 탄생 후설은 평생 학문에만 매진한 철학자다. 정치에 나선다거나 대중 연설을 한다거나 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세기 초 유럽이라는 매우 엄혹한 상황에서 유대인 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후설은 학문 그 자체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죽는 순간까지 침대에 누워 글을 쓴 후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가였을지 모른다. 이러한 노력으로 세상에 내놓은 것이 바로 ‘선험적 현상학’이다. 선험적 현상학은 ‘후설 현상학’이라 불릴 정도로 후설 고유의 철학 체계이자 20세기 서양철학 전반을 휩쓴 일종의 ‘브랜드’다. 선험적 현상학이란 세상의 모든 지식 너머에 있는 본질을 추적하는 현상학이다. 당시 유럽이 심취해 있던 심리학주의나 객관주의(과학만능주의)가 가변적 지식만을 다룬다면─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인간성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파국적 상황을 맞았다면─후설은 변하지 않는 본질을 추구한 것이다. 그는 제국주의, 전쟁, 과학만능주의 등 당시 서구가 직면한 문명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이러한 본질주의에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후설 현상학은 상당히 시사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독일 철학계와 더불어 유럽 철학계를 떠받치던 프랑스 철학계가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프랑스 철학계는 주로 셸러와 하이데거를 통해 후설 현상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후설이 보기에 저 둘은 후설 현상학을 왜곡한 데다 후설이 매우 비판한 ‘심리학주의’나 ‘객관주의적 자연주의’의 성격까지 띠고 있었다. 이에 후설이 전면에 나서기로 한다. 은퇴한 이듬해 2월 프랑스 학술원 주관으로 소르본 대학교의 데카르트 기념관에서 후설은 과연 선험적 현상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틀간 열강을 펼친다. 물론 그는 독일어로 강연했다. 대신 몇몇 제자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어로 ‘강연 요약문’을 만들어 나눠주었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적 성찰』의 모체가 된 요약문이다. 책 제목에 데카르트가 들어가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소르본 대학교 강연에서 후설은 선험적 현상학은 철저한 자기성찰과 자기책임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좋은 모델로 데카르트를 제시한다. 데카르트는 자아에 대한 성찰로 논의를 시작하고 모든 대상을 자아와 관련된 현상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이에 후설은 데카르트야말로 현대 현상학의 선구자라고 선포한다. 즉 데카르트에 대한 헌사이자 선험적 현상학의 성격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제목을 『데카르트적 성찰』로 지은 것이다. 여섯 번째 성찰과 『데카르트적 성찰』의 완성 핑크와 후설. 이 둘은 사제지간을 넘어 학문적 동료로서 깊은 철학적 담론을 나눴다. 후설은 『데카르트적 성찰』의 개정 작업에 곧바로 착수한다. 『데카르트적 성찰』은 무엇을 성찰하는지에 따라 제1성찰부터 제5성찰까지 나뉘는데 각 성찰을 한 권의 책으로 다시 써 총 5권의 시리즈로 출간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데카르트적 성찰』 외에도 수많은 원고를 정리하던 중이라 70세가 넘은 후설 혼자 모든 작업을 할 수 없었다. 이에 그의 연구조교 핑크가 작업을 도왔다. 핑크는 후설의 지도 아래 2년 동안 『데카르트적 성찰』의 다섯 가지 성찰을 모두 다듬었다. 비록 다섯 권짜리 책으로 출간하지는 못했지만 『데카르트적 성찰』의 개정 작업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후설은 마지막 보완 사항으로 핑크에게 ‘선험적 방법론’을 다루는 여섯 번째 성찰을 구상해보라고 한다. 이에 핑크가 전체적인 얼개를 구상하고 이것을 후설이 검토하고 핑크가 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2년 정도 거쳐 1933년 「현재의 비판에서 후설의 현상학적 철학」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평소 후설과 깊은 수준의 담론을 나눴던 핑크가 쓴 논문답게 후설은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준다. 나는 이 논문에서 완전히 나의 것이 아닌 문장, 나 자신이 명백히 승인할 수 없는 문장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어 기쁘다. _ 33쪽 후설이 직접 밝혔듯이 핑크의 논문은 『데카르트적 성찰』을 완성하는 데 부족함이 전혀 없는 글이다. 후설 자신뿐만 아니라 케언스, 슈츠 등 여러 현상학자가 이 논문의 중요성과 후설 현상학과의 일맥상통함을 인정했다. 특히 메를로퐁티는 자신의 주저 『지각의 현상학』의 머리말에서 이 논문을 상당히 주요하게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핑크가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 교수자격 취득논문으로 이 논문을 제출하자 하이데거는 “후설이 권위를 인정한 이상 더 심사할 필요가 없다”고 이 논문을 극찬한다. 이렇게 핑크의 논문은 후설 현상학을 계승하는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다섯 가지 성찰만 있는 『데카르트적 성찰』을 비로소 완성하는 글로 지금까지 많이 읽히고 있다. 핑크의 노력으로 선험적 현상학의 본질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길사가 이번에 출간한 『데카르트적 성찰』 개정판에는 핑크의 여섯 번째 성찰이 포함되어 있다. 선험적 현상학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