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스트레스가 어떻게 유전자를 바꾸는가?”
마침내 드러나는 후성유전학의 모든 것
<타임Time>지는 2010년 1월 ‘당신의 DNA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 이유Why Your DNA Isn't Your Destiny’라는 제목을 기사를 통해 후성유전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이제 유전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시기는 지났다. 후성유전epigenetic이란 DNA 서열을 바꾸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DNA에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유전자 부호의 변화 없이 유전자 행동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으로, 그렇게 생겨난 유전자 행동의 변화는 평생, 때로는 그 이상 지속될 수 있다. 이러한 유전자 행동의 변화는 우리의 환경,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노출된 오염물질, 심지어 우리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반응으로서 일어날 때가 많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란 바로 이러한 후성유전적 유전자 발현 조절에 관한 모든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전 세계 학자들로부터 유전학의 새로운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후성유전학을 이야기할 때 가장 빈번하게 거론되는 사례는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일란성 쌍둥이일 것이다. 이들은 같은 유전자를 가졌음에도 자라면서 생물학적으로 서로 똑같은 형질을 갖지는 않는다. 한 명은 건강하지만 다른 한 명은 암에 걸릴 수도 있고, 한 명은 키가 크고 건장하지만 다른 한 명은 왜소한 체격일 수 있다. 후성유전학은 기존의 유전학으로는 잘 설명하지 못했던 이러한 현상을 잘 설명해냄으로써, 생물학과 의학계의 향방을 바꿀 만한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암이 유전 질환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후성유전적 질환임이 밝혀졌기 때문에, 새로운 암 치료법이나 조기 진단 등의 성과를 이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 《쉽게 쓴 후성유전학》은 새로운 21세기를 열 후성유전학이라는 학문을 가장 이해하기 쉽고 가장 흥미롭게 설명해냈다. 그 이름조차 생소하거나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후성유전학을 아주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응용과학에 이르기까지 꼭 필요한 이야기만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따라서 후성유전학에 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이 책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스토니브룩 대학과 UC 버클리, 스탠퍼드 대학에서 신경생물학 등의 연구를 진행한 저자 리처드 C. 프랜시스는 특유의 간결하고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 서술방식으로 후성유전학을 보기 쉽고 알기 쉽게 정리해내, 그에 대한 가장 만족스러운 가이드를 제공한다.
“전혀 다른 과거와 미래를 만난다!”
후성유전학에 관한 완벽 가이드
이 책은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었다. 후성유전학에 관한 기초적인 설명부터 보다 깊이 있는 내용과 그것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고, 응용과학에 이르러 이야기를 마친다. 이러한 단계별 설명과 각 장에서 제시하는 흥미진진한 사례들은 후성유전학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돕는다. 이제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자.
1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네덜란드 대기근을 통해 후성유전적 영향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자들은 네덜란드 대기근의 코호트(인구통계학저거 연구에서 조사의 핵심이 되는 특성을 공유하는 인구 집단)를 통해 어머니의 배 속에서 기근을 겪은 사람뿐 아니라 그 사람의 자식에게까지 기근의 영향력이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이는 다소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비유전자적 유전 방식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DNA 전체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기 위한 전 단계로서, 유전학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살펴본다. 3장 또한 후성유전적 유전자 조절을 알기에 앞서 평범한 유전자 조절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서는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유명한 야구선수 호세 칸세코의 사례를 예로 드는데, 이는 유전자가 세포 환경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또 4장에서는 베트남 전쟁의 참혹상을 그린 영화 <디어 헌터Deer Hunter>를 통해 ‘사회화한 유전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똑같은 경험을 한(여기서 약간의 차이는 무시한다) 세 주인공 마이클, 스티븐, 닉을 통해 저자는, 그들의 생애 초기 환경(또는 태내 환경)이 유전자에 영향을 미쳐, 같은 스트레스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이게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5장에서는 태내 환경과 비만의 상관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는 비만의 유전적 소인과 후성유전적 소인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6장에서는 후성유전적 과정들이 대를 이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어린 시절 밀렵군의 총에 맞아 죽은 어미 곁에서 발견된 실버백 찰스를 통해 외상이 모성에 끼치는 영향을 설명하는데, 어미 없는 어미, 모성을 느끼지 못한 어미가 자신의 새끼에게도 모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흥미로운 사실 또한 밝힌다.
7장에서는 세대를 초월한 후성유전적 유전에 관해 설명한다. 여기서는 스웨덴 외딴 동네의 사례를 이야기하는데, 남자가 사춘기에 섭취했던 칼로리와 그 손자들의 건강에 연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여기서 사춘기 이전에 기근을 겪었던 남자의 친손자들은 기근을 겪지 않은 남자의 친손자들보다 심장혈관질환에 더 취약했다.
8장에서는 X염색체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여기서는 Xist라는 새로운 RNA의 주형 덕분에 X염색체를 후성유전적으로 조절하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했음을 알린다. 9장에서는 각인된 유전자에 환경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이야기한다.
10장에서는 전성설과 후성설의 시각에서 후성유전학을 바라본다. 후성유전학이라는 말은 유전학에서 온 것이 아니라, 후성설에서 온 것임을 확실히 하고, 후성유전학이 줄기세포에 대한 까다로운 질문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밝힌다. 마지막 11장에서는 후성유전학과 암에 관해 다루고 있다. 전염성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타즈메이니아데빌의 사례를 통해, 후성유전학이 여는 또 하나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처럼 새로운 시대를 여는 후성유전학이라는 주제에 굉장히 친절한 설명을 내놓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후성유전학의 거대한 잠재력과 능력을 직접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