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칼의 노래>, <남한산성> 작가 김훈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이후 한반도에 몰아친 비바람들, 한국전쟁, 4.19, 5.16, 5.18, 6.10을 보고 겪은 작가가 이승만, 박정희 등을 거쳐 국가권력이 옮겨가는 것을 목격하며, 그에 따라 영광은 작고 치욕과 모멸은 많은 우리 삶의 꼴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자전적 경험을 실마리로 집필한 작품이다.총 33장, 원고지 869매로 집필한 소설에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건들은 마씨(馬氏)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 마동수와 그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한 아들들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작가는 만주와 길림, 상하이와 서울, 흥남과 부산 그리고 베트남, 미크로네시아 등에서 겪어낸 등장인물들의 파편화된 일생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그 신산스러운 삶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을 드러낸다.일제시대, 삶의 터전을 떠나 만주 일대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겪어낸 파란의 세월부터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자본의 물결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사건들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 정착해 삶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마씨 집안의 가족사에 담겨 있다.광야를 달려야 할 말이 고삐에 걸려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야 하는 것처럼,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고삐에 삶이 얽매여 있는 이들의 비참하고 비애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이다지도 막막한 세상에서서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이 존재하는가를 처절하게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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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희
4.5
다른 소설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공터에서'에서 김훈 작가는 극적이고 굴곡진 삶을 그리는데도 굉장히 미지근한 온도로, 덤덤하게 그린다. 사실 그게 그 시대의 보통 소시민의 삶이라서이기도 하고, 원래 삶의 비극을 담담하게 그리기도 한다. 누구나 겪는 삶의 비극이라고 해서 비극이 아닌 것은 아닐진대 그 비극을 굉장히 구체적 일상 속에서 묘사하고 있어서 덤덤하게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입도가 높아진다. 작가 본인도 '일상의 구체성이 없는 문장은 공허하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일상의 구체성이 없는 문장도 자주 좋아하지만 김훈 소설들 속 일상의 구체성은 숨이 턱 막히게 와 닿는다. 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배설 조절을 하지 못하는 대목에서는 '아, 사랑했던 이성의 신비로운 육체지만 죽음이라는 당연한 인간의 숙명 앞에서는 그저 한 인간의 생물학적 신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로구나. 그럼 그동안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라고 죽음의 덧없음, 인생의 유한함과 허무함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장례를 치르고 결혼해서 집을 구하는 과정에 구체적으로 들어가 있는, 그 삶의 비극 속에 정신 차리고 이어가야 할 업무같은 소소한 행정(?)들과 소요비용 얘기가, 주인공의 감정 상태를 유려하게 묘사하는 대신 비극의 멱살을 실감나게 끌어다가 독자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이 모든 과정에 가득한 삶의 보풀들과 우리를 둘러싼 조악함. 삶은 영화같지도 소설같지도 않다.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고, 죽음과 한패인 병마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랑은 그렇게 영화처럼 빛나고 멋지기만 하지도 않고 탄생이 그렇게까지 거룩하고 숭고한 일도 아니다. 그렇게 거한 인생의 소재들을 두렵게 묘사하고 있음에도 덤덤하기 때문에, 비슷하게 겪어갈 당연한 삶의 보풀이 조금은 덜 수선스러워진다. 누구나 겪게 될 일임이 그 구체성 안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조금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ㅋㅋ 우리의 삶은 어쨌든 유한하고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죽음의 한패인 병은 늘 우리 삶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게 나 본인이 됐든, 가족이 됐든 한번씩은 겪어야 할 고통이다. 암, 치매, 노화, 죽음. 가족과의 작별. 김훈의 소설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요소들이다. 그 다가올 고통의 일상성, 구체적인 묘사들이 독자(나)를 괴롭게 하지만 단 하나의 위로는 '너만 그런 거 아니다. 죽음과 병,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별, 그리고 나 자신의 노화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수순이다'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김훈 소설이 허무주의라고들 하지만 사실 허무주의를 의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삶은 이런 것이다 라고 있는 것을 묘사했을 뿐인게 아닌가 한다.
90탄
3.0
난독증까지 해결해주는 김훈의 필력
샌드
3.5
김훈의 펜끝은 결국 사람을 향하는 듯 합니다. 그 독특한 문체는 무뚝뚝하지만 날카로움이 상당합니다. 마초적인 성향이 강해 호불호가 많이 갈릴 작가임엔 부정할 순 없겠지만 제겐 훌륭한 문장가로 느껴집니다.
최씨네
4.0
20세기라는 특수한 옷을 입고 있지만 마씨 일가의 이야기는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개개인은 영웅도 아니고 어쩌면 아무도 아니다. 버려진 혹은 그냥 놀려져 있는 공터.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우리는 그저 버티며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그저 일제강점기와 광복과 한국전쟁과 베트남파병이 있는 시대에서 살아냈을 뿐. 늙고 병이 들고 아이를 낳고 누군가는 죽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다. 그것들은 유난스럽지도 않고 담담하게 묘사된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남루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연의 끈은 생각보다 질기고 죽음은 밀물과 썰물과도 같다. 그것만큼은 영웅이든 소시민이든 누구에게나 공통된 삶의 이치겠거니 싶다.
제이
2.0
김훈도 늙었다.
까망콩
3.0
혈연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속박, 어찌해도 발붙일 수 없는 현실.
아방가르드
2.5
훌륭하게,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그 어떤 목적도 보이지 않는다
냉정한 눈알
4.0
인연의 무게를 짊어지고, 그렇게 우리는 생을 건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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