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아이들의 계급투쟁』
브래디 미카코의 세계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밑바닥 어린이집 시리즈’의 탄생!
도덕이 무너지고 다양한 정체성이 부딪히는 사회의 밑바닥
난폭한 아이들과 무기력한 어른들의 참담하고 아름다운 세계
『빌어먹을 어른들의 세계』는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아이들의 계급투쟁』을 통해 영국 밑바닥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온 브래디 미카코의 초기작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전작 『꽃을 위한 미래는 없다』가 동양계 이민자이자 저소득 노동자로서 브래디 미카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뷔작이었다면, 이 책은 저자가 무직자와 저소득자를 위한 자선단체의 부설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겪은 일을 적어낸 기록이다. 훗날 출간된 『아이들의 계급투쟁』의 전사에 해당되는 이야기로, ‘밑바닥 어린이집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브래디 미카코를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된 글이다. 또한 후반부에 저자 특유의 세계관으로 써내려간 영화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수록했다.
아이들이 던지는 인간의 정상성에 대한 의문
누구도 타인의 삶을 판단할 수 없다
아일랜드 이주민 출신 남자와 결혼해 영국 브라이턴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일본인 브래디 미카코. 트럭 기사인 남편과 살며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던 그는 아이를 출산한 뒤 보육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동네의 한 어린이집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무직자와 저소득자를 위한 자선단체의 부설 어린이집인 그곳에는 가난, 폭력, 방임 등 가혹한 환경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 있다. 툭하면 아이들을 때리고 인종차별 발언과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네 살 제이크, 아기 인형을 거꾸로 매달아놓고 고문하며 즐거워하는 다섯 살 네오, 다른 아이들을 잔혹하게 폭행하는 두 살 리애나, 아버지에게 맞은 흉터가 몸에 가득한 세 살 무스타파, 할 줄 아는 말이 “Fuck!”뿐인 한 살 아기 데이지. 저자는 이곳을 ‘밑바닥 어린이집’이라고 부르며 당장이라도 그만두겠다고 상사에게 하소연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점차 그들에게 애정을 갖게 된다.
『빌어먹을 어른들의 세계』에는 기존의 윤리가 붕괴되고 다양한 가치관과 정체성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어른들과 그런 어른들의 세계에 휘둘리면서도 단단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체화된 계급 의식과 인종차별, 그에 따른 체념과 좌절, 경제 상황이 나빠질수록 ‘아래쪽’으로 향하는 분노와 그로 인한 또 다른 갈등. 다면적이고 복잡한 사회 갈등을 다루는 브래디 미카코의 펜 끝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날카롭게 파고든다. 저자는 돈도 명예도 도덕도 미래도 다 잃은 무기력한 하층 인간 군상을 차갑게 관찰하면서도 동시에 누구도 그들을 비난할 권리가 없음을 일깨운다. 일을 하지 않고 세금을 내지 않고 제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고 약물에 의존하는 소위 말하는 ‘망가진’ 인간이라 할지라도 누구도 ‘인간의 쓸모’를 논하며 그의 인생을 비난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밑바닥 어린이집의 아이들은 난폭하고 제멋대로이지만 “‘무릇 인간이란 이래야 한다’는 관념에서 자유롭게 해방”되어 있다. ‘가정은 부모와 아이로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는 서로 성별이 달라야 한다, 아이는 학교에 다녀야 한다.’ 같은 소위 ‘정상성’을 강요하는 사회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아이들의 내면에는 “대단히 드물고 귀중한 것”이 자라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을 쓸모만으로 판단하여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생각 그 너머에 있는 것, 때론 인간의 자유의지로, 때론 존엄으로, 때론 인간애로 읽히는 그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사회를 저자는 개탄한다.
돈에 쪼들릴수록 인간의 분노가 아래로, 더욱 아래로 향하는 것은 보편적인 사실이지만, 이토록 세상이 살벌해지니 귓가에 오래전 나사렛의 일용직 목수가 했던 말이 맴돈다.
“인간에게는 도덕과 신앙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낙오자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중요한 것’이 없는 것이다. 너희는 쓸모없는 인간들이야, 쓰레기야. 그 말 너머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중요한 것’이다.
―본문 중에서
우리 빌어먹을 어른이 되지 않을래?
쇠락한 세계를 반영하는 영화와 음악들
밑바닥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보육사로서 쓴 일기가 1장으로 책의 전반부를 이끈다면, 후반부인 2장은 브래디 미카코가 발표했던 영화와 음악에 대한 칼럼으로 채워진다. 1장과 2장은 전혀 다른 성격의 글이지만 놀랍게도 같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1장이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갈 곳을 잃은 어른들과 잔혹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면, 2장은 쇠퇴와 몰락의 조짐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브래디 미카코는 특히 자신이 가장 아끼는 영화감독 셰인 메도우스의 영화, 다큐멘터리,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30년 전 노동자 계급 청년들이 겪은 비극과 여전한 좌절에 빠져 있는 이 시대 ‘루저’들의 삶을 동시에 조명한다. 대처 정권 시절 지방 도시의 몰락으로 인해 정부의 가축으로 전락한 실업자들과 오늘날 기초생활보장으로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지적하며, 저자는 혼란해진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도덕을 따르는 ‘중산층 어른’이 되든지, 혼돈으로 가득한 길을 나아가며 ‘뭐, 할 수 없지.’라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빌어먹을 어른’이 되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앨트제이, 폭시젠, 슬리퍼드 모즈, 모리시, 제이크 버그 등 동시대 여러 뮤지션들의 앨범을 소개하며 격차와 양극화로 비틀거리는 영국 사회의 암울한 시대상을 읽어내고, 데이비드 보위, 닉 케이브, 스콧 워커, 존 라이든 같은 원로 가수들의 행보를 통해 지나간 시대에 대한 상념에 잠기는 한편, 노쇠와 처연하게 마주하는 예술가의 긍지를 예찬하기도 한다.
여러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예술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거의 모든 글을 관통하는 정서는 ‘쇠락해가는 시대와 마주하는 의연함’이다. 찬란했던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암울할 뿐이지만, 그럭저럭 오늘을 살아간다. 대단한 쾌락도 죽을 것 같던 절망도 모두 지나가고 이제는 노화와 쇠퇴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겠지만 그조차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담담한 각오. 그런 각오를 품고 참담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브래디 미카코는 셰인 메도우스의 드라마 「디스 이즈 잉글랜드 ’88」의 대사를 빌려 말한다.
“하지만 우리 말이야, 빌어먹을 어른이 되지 않을래?”
“좋은 생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