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듯 가뿐히, 동시에
애도하듯 먹먹한 마음으로
기억의 곁을 지키기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 시집 『죄책감』 『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를 펴내며 단단하고 꾸준한 시작 활동을 펼쳐 온 시인 임경섭이 민음사에서 7년 만의 신작 시집 『종종』을 선보인다. 때로는 애도의 공간에서, 때로는 이국의 풍경 속에서 삶과 세계를 끈질기게 응시해 온 시인의 시선은 『종종』에 이르러 기억의 자리로 향한다. 문학평론가 소유정은 “시인은 ‘기억되기’보다 ‘기억하기’를 택했으나 『종종』으로 인해 우리는 그를 기억의 파수꾼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라며 시인을 ‘기억의 파수꾼’으로 명명했다. 임경섭은 어지러운 만화경 같은 시간 속에서 꼭 지켜내야 할 기억들을 길어 올려 일상의 언어들로 지어진, 각기 다른 모양의 시편에 보관해 둔다. 연약한 기억들은 시인의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고요하고 단단한 땅 위에 서게 되었다. 『종종』을 펼쳐 든다면 우리는 이제 산책을 하는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또 한편으로는 이쪽에서 움직여야만 만날 수 있는 대상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안고, 언제든 그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 네게서 잊힌 동안 나는
우는 종을 생각하고 있었다
울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닐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종종 우는 종은 종종 종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종」에서
『종종』의 화자는 때때로 골똘한 얼굴이 된다. 누가 울려 주지 않으면 영영 정물처럼 고요함을 유지하는 종의 모습과 닮았다. 그는 그 고요함 탓에 “울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닐” 것이라며 존재를 부인당하거나 다른 이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일쑤다. 고독 안에 들어앉은 종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아파트 단지 안 고물상 주인의 목소리나 어느 날 밤거리를 물들이는, 찹쌀떡 수레의 녹슨 바퀴가 내는 삐걱임 등 세상의 많은 소리와 한데 뒤엉키며 삶의 감각을 생생하게 유지하고자 한다. 다른 많은 소음들에 기꺼이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 스스로는 잠잠히, 동시에 꾸준히 존재 증명을 해 나가고 있던 셈이다. 생생한 삶의 현장을 끈질기게 응시하고 때때로 그것들과 공명하며 시간을 견뎌 내 온 종을 마침내 누군가가 두드릴 때, 그리하여 그 소리가 온 동네에 낮고 묵직하게 울려 퍼질 때, 우리는 그동안 잊고 있던 그 혹은 그것을 어느 때보다 강렬히 인지하게 된다. 종은 그 순간을 위해 종이 아닌 채로 오랜 시간을 부지런히 기다리고 있다.
■ 기다리며 줍는 시
청탁받고 시를 쓰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지웠다. 시와 함께 쓰라고 한 짧은 산문 때문이었다. 원하는 대로 시가 나오지 않아 산문을 먼저 끼적이고 있었는데, ‘이게 시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실린 「우는 마음」은 그때 끼적이던 산문이었다.
(……)
오늘 안에서 너무 많은 모양이 만화경처럼 겹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춘천으로 가는 길 위에서 아내가 던져 준 화두를 시로 쓰다가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지웠다.
―「오늘이 시네」에서
기억의 영토 바깥에는 정리되지 않은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다. 말들은 떠돌고, 물건들이 날아다니며, 쓰던 글은 영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이별한 대상의 얼굴이 전보다 생생해진다. 화자는 문득, 그렇게 잔뜩 어지럽혀진 공간에서 우연히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 한 조각을 발견한다. 그것을 글로 옮겨 적다가 종소리가 울리듯 “이게 시네.” 하고 깨닫는 순간, 무질서는 곧 시가 되고 관망자이던 화자는 곧 시인이 된다. 그렇게 시가 될 무질서의 조각들을 차곡차곡 모으다 보니 길게만 느껴지던 기다림도 이내 기꺼워진다. 우리가 기억이라 부를 만한 드문 순간들 사이를 모두 기다림이라 한다면, 우리는 이제 멍하니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시로 치환할 수 있다. 『종종』에 모인 시, 즉 시간의 조각들을 따라 읽으며 자기 안에 이미 완성돼 있을 “만화경”에 눈을 가져다 대 보아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