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반항아, 과격분자,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깊이 무는 불도그,
전쟁을 위해 태어난 사람…
“그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거듭거듭 잔인하게 매를 맞았다. 그래도 여전히 배우지 않았고, 어느 날 항의의 뜻으로 교장의 밀짚모자를 밟았다.” _본문 35쪽
제바스티안 하프너(1907~1999)의 역작 『처칠, 끝없는 투쟁』이 출간되었다. 독일 현대사 3부작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어느 독일인 이야기』,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에 이어 네 번째로 국내에 소개되는 이 책은 다른 세 책과 달리 독일의 숙적 영국을 다룬다. 독일 국민작가가 쓴 영국 역사, 그것도 독일을 잿더미 속으로 밀어 넣은 전쟁 영웅의 이야기라는 기묘함! 그러나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경계인’적인 정체성을 고려하면 더없이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하프너는 1907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1938년 나치의 폭정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뒤 《옵서버》 편집장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독일인으로 태어나 2차 대전의 한복판에서 영국 언론을 위해 일했던 이력을 고려하면, 하프너야말로 처칠(1874~1965)을 다면적으로 조명할 적임자다. 하프너는 원고지 700장 남짓한 분량으로, 90년에 이르는 처칠의 전 생애와 양차 세계 대전으로 얼룩진 격동의 세계사를 흥미진진하게 압축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처칠의 공과를 모두 짚는다. 1940년과 1941년에 처칠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거대 게르만 친위대 국가가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고 상찬하는 한편, 처칠이 반파시스트가 아니라 오히려 파시스트에 가깝고 정치인으로서는 로이드 조지나 네빌 체임벌린 등에 비해 하수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하프너는 처칠의 삶이 ‘투쟁’으로 얼룩져 있다고 말한다. 기나긴 투쟁 중에서 가장 격렬하고 빛나는 장면은 두말 할 필요 없이 히틀러와의 대결로, 이 책의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책의 가운데를 처칠의 비범함이 차지하고 있다면, 처음과 끝은 기이할 정도로 미약한, 그러나 여전히 ‘투쟁’하는 인간 처칠이 자리하고 있다. “초강력 교육기계” 기숙학교에서 잔혹한 매질을 당하면서도 배움을 완강히 거부하던 소년은 빛나는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 살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순간까지 살아남아 우울증과 무료함, 뇌졸중과 투쟁하면서 서서히 소멸해 간다. “나는 늘 물로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울보가 되었어. 그걸 어떻게 할 수가 없나?”(본문 281쪽) 90년의 장고한 삶이 스산하게 완결된다.
책의 말미에는 냉전 상황 속에서 유럽의 정치·경제적 통합에 초석을 놓고 세계 평화를 위해 분투하는 말년의 활약상이 간결하게 소개된다. 2014년 『처칠 팩터』(한국어판은 2018년, 지식향연)를 출간하기도 한 언론인 출신 신임 총리 보리스 존슨이 “3년간 망설임의 종지부를 찍겠다”며 유럽연합 탈퇴를 공언하고 있는 지금, 세계 통합을 향한 처칠의 비전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읽힐 것이다.
독일 로볼트 출판사의 로로로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역사적인 도판 53컷을 수록했다.
책의 내용
■ 소년 처칠의 수난과 투쟁
『처칠, 끝없는 투쟁』은 보잘것없는 시골귀족이었던 처칠 가문을 고위귀족으로 끌어올린 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1650~1722)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서 150년 동안 역사책에서 종적을 감추었던 처칠 가문을 다시 일으킨 또 한 명의 천재가 소개된다. 서른 살에 “혜성처럼” 정치무대에 등장해서 6년 만에 보수당을 다시 집권당으로 만들었으나 부총리에 취임한 지 넉 달 만에 스스로 모든 관직을 내던지고 파멸한 기이한 천재 로드 랜돌프 처칠(1849~1895). 바로 그가 윈스턴 처칠의 아버지다.
[랜돌프 처칠은] 절도 없고 불끈 화를 내며 내던지고, 예의 없다고 할 정도로 남에게 상처를 주고, 게다가 스스로도 몹시 쉽사리 상처를 입는 다정다감한 사람으로, 돈키호테 방식의 기사였다. 그러니까 무모하고 정신 나간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자주 경탄의 뜻을 담아 ‘정신 나간 놈’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더욱 진지한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늙은 빅토리아 여왕은 그가 짧은 명성의 절정에 있을 때 악의를 품고 진지하게 그를 ‘정신병자’라고 불렀다. 실제로 그는 정신착란 상태에서 죽었다. 겨우 마흔다섯 살 때였다. _본문 13쪽
처칠은 일곱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12년 동안 영국식 “초강력 교육기계” 기숙학교에서 잔혹한 매질을 당하면서도 배움을 완강히 거부했고, 그로써 아버지 랜돌프 처칠에게 “재능 없고 희망도 없는 실패자”라는 경멸을 받아야 했다. “삶에서 가치 있는 모든 것”의 열쇠를 쥔 듯이 보이는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 어린 처칠의 “트라우마”였다. 처칠은 스무 살이 되도록 고등학교 졸업시험도 통과하지 못했고, 사관학교 입학시험을 두 번 떨어졌으며, 보병이 되기엔 “멍청”한 부잣집 자제들이 흔히 지원하는 기병이 되어야 했다.
어린 처칠은 해로 스쿨에서 영원한 낙제생이었다. 오직 영어만 우수했고, 나머지 모든 과목에 대해 ‘이성을 닫아’걸었다. 학교 스포츠에서도 반항적인 실패자였으니 크리켓과 축구도 라틴어나 수학과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 어떤 우정도 맺지 않았다. 그가 학교에 대해, 학교의 강요와 방식에 대해 마음을 닫고 내면의 파업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막연히 결심한 채 이 모든 것을 12년 동안이나 견뎠다. 비싼 학교는 그에게 모조리 허사였고 학비만 들었다. 그는 기율을 얻지 못하고 목표대로 형성되지도 않은 채 교육도 교양도 없이 학교를 떠났다. _본문 36쪽
■ 청년 처칠, 국민영웅이 되다
“다 자랐으나 쓸모없는 귀족 자제, 가문의 수치이며, 죽어 가는 아버지 눈에 ‘무능력자’일 뿐”이었던 처칠은 스물한 살이 되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환골탈태한다. 훗날 처칠은 “마치 알라딘의 기적의 동굴처럼” 세계가 자신 앞에 열렸다고 썼다. 그리고 하프너는 이 놀라운 변화의 원인을 ‘아버지의 죽음’과 ‘전쟁과의 운명적인 조우’ 덕이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에 대한 처칠의 회고에서 열쇠가 되는 문장이 나온다. “이제부터 나는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길들일 수 없는 그를 길들이려는 시도가 갑자기 사라졌다. 학교도, 사관생도 생활도, 위압적인 아버지도 없었다. 랜돌프 처칠 경의 죽음은 희망 없고 수치스런 위대한 사랑[아버지를 향한]의 종말을 뜻했다. 이 죽음과 함께 나타난 우울하면서도 깊은 해방감은 젊은 윈스턴 처칠이 꽉 눌려 있다가 스물한 살의 나이에 갑자기 풀려난 깃털처럼 앞으로 날아오른 것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이 된다.
또 다른 설명은 그가 거의 우연히 곧바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직종인 전쟁으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이다. _본문 46쪽
하프너는 책 전반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처칠을 “전쟁의 사람”이라고 호명한다. 실제로 처칠은 평생 전쟁을 쫓아다녔다. 청년 처칠이 대반전을 맞는 것도 쿠바, 인도, 수단, 남아프리카에서 잇달아 터진 전쟁에 뛰어들면서다. 특히 남아프리카 보어전쟁에서 기관차를 탈취해 부상자들을 구하고,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는 등의 스펙터클한 모험을 통해 처칠은 “국민 영웅”으로 급부상한다. 타고난 군사적 재능과 글쓰기 재능으로 무장한 처칠은 때론 기병소위로, 때론 신랄한 종군기자로 전장을 누비면서 점점 더 세상의 주목을 받다가 1900년 10월 스물다섯 살에 올덤 하원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다.
■ 성공한 기회주의자
정치인 처칠은 몇 차례 실패를 맛보기도 했지만, 거의 언제나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다시 보수당으로 철새처럼 옮겨 다니며 60년 동안 하원의원, 장관, 총리를 두루 섭렵했다. 그러나 하프너는 거물 정치인 처칠을 꽤나 야박하게 평가한다. “아웃사이더”인 동시에 “기회주의자”라는 이중적인 처신으로 권력을 좇았지만, 당대의 정치 천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나 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