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과 영혼

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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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년여 간 꾸준히 새로운 글쓰기와 철학적 개념들로 한국 인문학의 독특한 줄기를 이뤄왔던 철학자 김영민이 그간의 공부론을 집대성하고, 공부론의 실천을 통한 인간의 가능성을 가장 밀도 있게 담아냈다. 인간이 즉자적 동물성을 벗어나는 메타적 순간들을 살핀다. 공부의 목표에 ‘열중’하는 일에서 벗어나, 공부의 수행성을 다양한 각도로 ‘집중적’으로 살핌으로써 ‘영혼’이라는 삶의 내용을 모아내고 있다. 열중은 집중과 다르다. 열중은 도구적이고 호흡이 짧으며 자기 배리를 보인다. 저자는 열중에 비해 집중은 ‘존재론적 겸허’를 갖춘 태도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과 무늬를 형성케 한다. 마음은 뇌의 활동에 따라 떠오르는 것이며, 뇌는 몸의 활동에 의해 내면화된 것이고, 몸은 타자와의 조응적 활동에 의해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단계에서 집중이 행위의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사랑한 마법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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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서언 1장 집중, 인간이다 1 애착 2 연기(延期) 3 식탁의 인류학 4 차분하다(落(ち)付く) 5 집중이란 무엇인가(1) 6 노동과 집중 7 집중과 신(神) 8 경(敬), 또 하나의 집중 9 집중, 내용을 잃은 성취 10 집중 혹은 지성과 영성이 만나고 헤어지는 곳 11-1 집중이란 무엇인가(2) 11-2 집중이란 무엇인가(3) 12 집중이란 무엇인가(4): 불이(不二) 2장 공부, 혹은 1에서 0으로, 2에서 3으로 13 집중의 공부, 혹은 1에서 0으로, 2에서 3으로 14 시몬 베유, 집중과 영성 15 집중과 내용 3장 일본 혹은 어떤 차분함에 대하여 16-1 차분한 물건들 혹은 인간의 책임 16-2 장인, 그 정성의 이력이 신(神)을 불러낸 자리 16-3 좋은 시민과 나쁜 국민 16-4 예의 혹은 연극적 외설성 16-5 외부자는 관측을 오용한다 16-6 자전거를 타는 나라(1) 16-6-1 자전거를 타는 나라(2) 16-7 윤치호의 자리 17-1 ‘소우지(掃除)’하는 일본(1) 17-2 ‘소우지’하는 일본(2) 17-3 ‘소우지’하는 일본(3) 17-4 ‘소우지’하는 일본(4) 18-1 닮았다면 웃지요(1) 18-2 닮았다면 웃지요(2) 18-3 닮았다면 웃지요(3) 18-4 닮았다면 웃지요(4) 18-5 닮았다면 웃지요(5) 18-6 닮았다면 웃지요(6) 19-1 남을 보지 않는다(1) 19-2 남을 보지 않는다(2) 19-3 남을 보지 않는다(3) 19-4 남을 보지 않는다(4) 19-5 남을 보지 않는다(5) 19-6 남을 보지 않는다(6) 20-1 동원 가능성(1) 20-2 동원 가능성(2) 20-3 동원 가능성(3) 21-1 마지막 사회(1) 21-2 마지막 사회(2) 21-3 마지막 사회(3) 22-1 촌스러운 일본(1) 22-2 촌스러운 일본(2) 23-1 주변을 닦고 살펴 신들을 내려앉히는 23-2 신뢰 혹은 어떤 장소의 공기에 대한 직관 24 전라도의 소리와 경상도의 글자 4장 영혼의 길 혹은 달인과 성인의 변증법 25 달인과 성인 혹은 집중의 쌍생 26 영혼이란 무엇인가 27 영혼의 길(1) 혹은 변명과 낭독 28 영혼의 길(2) 혹은 불천노(不遷怒) 29 영혼의 길(3) 혹은 무(無) 30 영혼과 거울 혹은 휴대전화 만가(輓歌) 1 매체와 환상 2 함몰(陷沒)과 마비(痲痺) 3 영혼과 거울 31 인간(성)과 초월(성) 5장 잠시 내게 속한 앎, 인문학의 영도(零度)를 향하여 32 달걀은 幻이다 33 내 앎은 내 것이 아니다 34 그러나 누가 ‘알고’ 있었다는 게 왜 중요했을까? 35 낌새는 언제 내 것이 되는가? 36 치매와 암(癌) 혹은 자아의 처리에 관한 단상 37 부탁을 받는 순간 38 무사적 실존과 앎(1) 39 무사적 실존과 앎(2), 인문학은 예외적인가? 40 베는 맛 41 ‘아직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하여 42 글쓰기의 영도(零度), 영도의 글쓰기 43 영도(零度)의 공원(空園) 6장 분노사회와 창의성의 인문학 44 분한(憤恨)과 창의성 44-1 여자의 분한, 여자를 향한 분한 7장 공동체와 집중 45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집중’의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단상 46 영도의 인문학과 공동체의 (불)가능성 47 동무공동체와 불교적 상상력 1 공동체 혹은 틀 속의 개창(開創) 2 공동체, 호감과 호의가 아닌 3 응하기로서의 공동체 4 장소(감)와 공동체 48 예(yea), 예(禮), 예(藝) 49 유토피아적 상상과 거리(감)의 정치 50 시간과 장소는 어떻게 만나는가: 일, 거리(감), 사물 종언

Description

집중! 에고와 싸워 이기는 난사難事에 대하여 현실에 코 박고 살아가는 대신 지금 여기에 없는 현실적 공허를 살피는 집중은 왜 필요한가 장인에 이르는 성실한 적습은 어떻게 영혼을 생성시킬 만큼 존재를 거듭나게 하는가 철학자 김영민은 지난 25년여 간 꾸준히 새로운 글쓰기와 철학적 개념들로 한국 인문학의 독특한 줄기를 이뤄왔다.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신간은 그간의 공부론을 집대성하고, 공부론의 실천을 통한 인간의 가능성을 가장 밀도 있게 담아냈다. 이 책의 주제는 제목에 드러나 있다시피 ‘집중’과 ‘영혼’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즉자적 동물성을 벗어나는 메타적 순간들을 살핀다. 공부의 목표에 ‘열중’하는 일에서 벗어나, 공부의 수행성을 다양한 각도로 ‘집중적’으로 살핌으로써 ‘영혼’이라는 삶의 내용을 모아내고 있다. ‘열중’과 ‘집중’, 그 차이에 대하여 우리 시대 개인들은 제대로 된 집중의 삶을 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기 일쑤다. 대부분이 도시인인 우리는 이유 없는 피로에 젖어 삶에 대한 지속적인 에너지를 유지하지 못한다. 저자는 한국인이 매사에 들떠 부스대고, 명멸하는 하나의 매력에도 전체가 쉽사리 쏠려가 도무지 집중의 미학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관찰한다. 집중 대신 열중과 몰입만이 흔하게 보인다. ‘몰입 학습’ ‘열중 성공론’과 같이 집중은 변질된 형태로 성과주의의 중요한 도구가 된다. 돈으로 뛰고 인기로 먹고사는 축구 선수도 열중하며, 상가 재건축을 위해 세입자들을 솎아내는 이들도 열중한다. 하지만 열중은 집중과 다르다. 열중은 도구적이고 호흡이 짧으며 자기 배리를 보인다. 따라서 그 행위들은 언뜻 순수하고 멋있어 보일지 모르나, 사욕에 좌우되며 어느새 정신의 진보를 막는 수렁으로 작용한다는 게 이 책의 큰 문제의식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집중과 열중을 구분케 하는가? 저자는 열중에 비해 집중은 ‘존재론적 겸허’를 갖춘 태도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과 무늬를 형성케 한다. 마음은 뇌의 활동에 따라 떠오르는 것이며, 뇌는 몸의 활동에 의해 내면화된 것이고, 몸은 타자와의 조응적 활동에 의해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단계에서 집중이 행위의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 집중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하자면 그 길은 좁은데,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차분하고 견결하게 이루어지는 집중과 정성이야말로 달達과 성聖으로 가는 길이다. 그것이 ‘좁다’ 함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에고와 싸워 이겨야 하는 난사이기 때문이며, 그래도 그게 ‘길’일 수 있는 것은 여러 틀로써 그 본을 보여준 학學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집중을 하기로 하자면 그 행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방향이다. “사랑은 영혼의 상태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시몬 베유가 말했듯, 집중은 무엇보다 갖은 정신적 에너지의 밑절미가 되기에 그 방향에 따라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 죽 쒀서 개주어서는 안 되고, 공들여 오른 산이 엉뚱한 곳이어서는 곤란하며, 호의가 지옥으로 안내하는 길라잡이 노릇을 해서는 파국이다. 마찬가지로 전념해서 일군 재능과 성취가 폭력과 죽임의 매체로 전락하는 것도 비극이다. 그러므로 집중하는 사람이 집중을 통해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의 집중이 얹힌 생활양식은 어떤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지, 그리고 그 집중이 이웃과 세상을 어떻게 대접하는지 하는 문제가 다시 ‘문제’가 된다. 이런 뜻에서 집중은 문제의 해결이 아닌, 가장 중요한 문제를 발굴한 것인 셈이다. 그러므로 집중은 구체적인 여건과 매체의 조건에 얹혀 점진적으로 개량되는 극히 인간적인 과정으로 봐야 한다. 더욱이 집중이라는 행위는 ‘완전히 순수한 집중’, 즉 강도가 중요하다. 엄벙덤벙, 데면데면하다면 그것은 이미 집중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주의의 상혼이 인문적 집중과 버성길 수밖에 없는 변덕과 자의의 시대에 제 나름의 형식과 강밀도를 지닌 집중의 생활을 유지하는 일은 어렵고 또 그만큼 중요한 생활정치의 노력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집중은 강도―지속성―방향이 핵심이다. 인문학적 존재―새로운 말을 배우며 낯선 감성에 응대하기 인문학의 토대는 무엇보다 문자학으로, 그 알짬은 ‘(새로운) 말을 배우는 일’이다. 그런 뜻에서 문학적 감수성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은 곧 문학’으로, 어쩌면 문학 혹은 문학스러운 것들은 철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근엄한 인상의 신사들이 감히 내뱉지 못하는 말과 글을 쉼 없이 흘리면서 인간의 앎과 그 의미를 내내 드러내왔는지도 모른다. 모든 좋은 문학은 그 글쓰기의 의도를 벗어나 빛살처럼 사방으로 튄다. 논리나 추론보다 빠르고, 인정이나 공감보다 빠른 곳곳에서 독자들은 인간 및 삶의 진실과 마주친다. 진리와 의미 생성에서 문학스러운 표현들은 논문처럼 쥐어짜내지 않아도 오히려 생생하게 그 취지를 그려낸다. 그리하여 토대로서의 문학은 철학, 경제학, 법학 등 학문 전 영역에 스며들어 그 실천적 지평에서 공감의 기반을 만들어내며 배제와 편향으로 기우는 이론들이 해결 못한 빈곳들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세계는 이로써 조금씩 자기수정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인문학도로서의 인간이 즉자적 동물성을 벗어나는 메타적 순간마다 피할 수 없이 접속하게 되는 인문人紋의 터는 곧 (낯선) 말이다. 가령 사투리든 외국어든 한 언어의 세계는 구조적으로 하나의 ‘완결’된 방으로 기능한다. 그 방이 복도로 이웃 방으로 마루로 마당으로 고샅으로 신작로로, 그리고 선창이나 국경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상당한 실존적 비용이 든다. 그야말로 우연찮게 들어가 살게 된 자신의 집은 이처럼 스스로의 습관과 환상 속에서 그 세계를 완결짓는데, 공부, 특히 철학적 사유는 바로 이 세계의 미결을 실존적으로 알아채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성과 겹치거나 어긋나는 언어성의 체험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의 방 안에 묵새기고 있으면서 그 내부 풍경이 익숙해지면 질수록 다른 방들의 존재는 잊혀가지만, 다양한 소통의 망을 통해 운행되는 인간의 갖은 말은 이러한 타성에 균열을 내고 다른 방, 다른 말, 다른 세계에 대한 비교적·메타적 관심을 촉발시킨다. 집중의 사례―일본이라는 내면 낯선 말과 낯선 감성의 세계의 하나로서 일본을 들 수 있다. 일본인은 한국인과 놀랍도록 닮았지만 기실 둘 사이엔 공통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 만치 서로 낯설며, 한국과 달리 일본의 내면은 ‘집중’의 한 사례로서 깊이 들여다볼 만하다. 특히 저자는 여행자처럼 건정건정 스쳐가며 보지 않고 한 집 한 집에 눈을 머물러두면 참 다르다고 말한다. (이는 처음 미국을 접할 때 그 표면은 매우 달라 보였지만 결국 한국과 닮았다고 결론 내리게 된 것과는 정반대다.) 그 다름은 가령 ‘장소감’이란 단어를 내세워 생각해볼 수 있다. 일본의 골목길이나 가게나 집 주변이나 정원 혹은 그 내부는 차분하고 정갈하며 작고 미학적이다. 그 어디에나 사람들의 지속적이며 알뜰한 노동이 일구어낸 ‘장소’들이 빼곡하다. 장소를 지배하는 존재의 책임은 사실 무한한 것인데, 가령 어떤 장소를 지배하는 인간의 책임은 자기 자손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길고양이는 물론 길섶의 야생화와 그 마을의 공기까지도 다 그의 책임 아래에 있는 것이다. 일본인은 제 장소를 가꿀 줄 아는 이들이다. 그중 저자에게 일본의 내면과 생리를 풀어내는 데 주요 화두가 된 것은 바로 그들이 청소하는 모습이었다. 집중이라는 행위가 낮은 곳으로, 작은 것으로, 숨은 곳으로 정교하게 이뤄지는 지속성이라면 청소는 그 전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는 비루하고 하찮게 여겨지지만, 사실 생활 내용의 길과 테두리를 짓고 그 형식을 빛나게 하며 더러 자기 성찰력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한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마치 땅에 흘린 바늘이라도 주우려는 듯 청소하는 일본인의 태도는 차분한 집중의 전범이 될 수 있다. 일본인들이 이곳저곳에서 청소(소우지)를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타자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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