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랑스를 사로잡는 아멜리 노통브의 힘
매해 8월이면 새 소설과 함께 독자들을 찾아오는 프랑스 문단의 스타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멜리 노통브가 올해도 어김없이 새 작품을 발표했다.(국내에 이번 번역된 책은 프랑스에서 2009년 8월에 출간되었고, 올 8월 18일에는 『Une forme de vie』라는 새 소설이 현지 출간 예정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 플로르상, 알랭 푸르니에상, 르네 팔레상 등 수많은 수상경력에 2008년에는 장 지오노 문학상 대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더하며 올해로 데뷔 19년째를 맞는 아멜리 노통브의 열여덟 번째 소설 제목 『겨울 여행』은 슈베르트의 연작 가곡집(우리나라에는 <겨울 나그네>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겨울 여행』의 주인공 조일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죽인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을 건축학적으로 적용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아스트로라브) 첫 글자 A를 연상시키는 파리의 에펠탑을 납치한 비행기로 폭파시키려 한다.
우리의 주인공에게는 사랑의 실패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파괴를 통해 사랑을 완성시키려는 한 남자의 슬픈 사랑법은 차가운 얼음 속에 갇힌 한 여인의 마음을 녹여낼 수 있을까?
이상야릇하지만 어딘가에 꼭 있을 법한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을 창조하는 아멜리 노통브는 분명 천재작가이다. 독특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끄는 그녀의 솜씨에는 따라올 자가 없다. 『겨울 여행』 속의 ‘여행(trip)’에는 이중의 뜻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는 겨울 나그네의 외로운 사랑 여정’과 ‘환각을 일으키는 성분의 흡수로 야기되는 상태(소설 속 주인공들은 환각버섯의 도움으로 내면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에서의 내면 여행’. 작가가 열정적으로 묘사한 환각이야말로 이 소설의 백미이다. 자극적이면서도 사이키델릭하다.
『겨울 여행』의 표지사진은 1934년부터 살바도르 달리, 장 콕토, 프랑수아즈 사강, 카롤 부케, 기욤 카네, 등 연극배우, 무용가, 화가, 작곡가, 정치인, 스포츠 스타, 작가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스튜디오 아르쿠르(Studio Harcourt)’의 솜씨로 30년대 은막의 스타로 노통브의 모습을 표현해내었다.
프랑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된 『겨울 여행』은 “진한 탄닌에 적절히 섞인 고통의 맛에 이어지는 살얼음의 냉기와 황홀한 착란이 섞인 뒷맛이 감미로운 작품”(르 푸엥),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의 우울한 분위기에 적절히 섞인 노통브만의 짓궂은 유머와 도발적이면서도 즐거운 명랑 쾌활함이 돋보이는 작품”(리르), “현기증나는 사랑으로 야기될 파리의 9?11 테러”(텔레 루아지르) 등의 평가를 받았다.
2. 프랑스 문단의 독특한 상상력, 노통브가 들려주는 짓궂은 사랑 이야기
노통브가 창조해내는 인물들이 늘 그렇듯이, 『겨울 여행』 속 주인공들의 이름은 평범하지가 않다. 조일과 아스트로라브(중세 최대의 연애사건의 주인공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아들 이름이다)는 『로베르 인명사전』의 프렉트뤼드나 『적의 화장법』의 텍스토르 텍셀만큼이나 낯설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성격에 딱 맞는 이름을 짓기 위해 여러 책들을 심도 있게 읽는다고 밝혔다.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기 위해 고심을 한다. 19세기에 편찬된 사전을 뒤져보기도 하는데, 그 사전이 꼭 광산 같아서 파들어가면 갈수록 놀랍고도 특이한 이름들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의미와 울림을 살려 내 나름대로 전혀 새로운 이름을 창조하기도 한다.” 배경은 『적의 화장법』에서처럼 공항이다. 작가가 즐겨 다루는 거식증이라는 소재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다만, 그 소재며 주제들이 전작들에서보다 더욱 깊이 있고 풍성하게 요리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작품에서 노통브는 비행기 납치라는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의 심리를 탐색한다. 왜 그런 범죄를 결심하는 걸까? 물론 노통브식 해답은 ‘사랑’이다. 이번 작품은 빗나가버린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문헌학자이지만 전력공사 직원으로 일하는 조일은 여류 소설가 알리에노르 말레즈와 함께 온기 하나 없는 싸늘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아스트로라브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알리에노르는 특이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지적장애인으로 아스트로라브의 도움이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알리에노르의 보호자를 자청한 아스트로라브가 한순간도 그녀를 혼자 놔둘 수 없다고 고집하자 애가 탄 조일은 두 여자와 환각버섯을 나누어먹고 환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조일은 증오의 화신이 되어 승객 백여 명이 탑승한 보잉기를 납치해 파리의 상징인 건축물을 폭파시킬 계획을 세운다. 보통 사람의 논리로는 이 기묘한 3인방이 펼치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허나, 줄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환각의 절정에서 내뱉는 조일의 독백 “……바오밥 나무를 아주아주 작게 줄여보면, 브로콜리가 되거든, 브로콜리는 먹을 수 있잖아, 바오밥나무는 우주적인 브로콜리야……”라든가 아스트로라브와 나누는 그의 대화 “……우린 소크라테스 시대 이전부터 서로의 운명으로 정해져 있었어……”, 혹은 사물을 보는 작가의 방식을 요약한 듯한 문장 “……사람들은 하얀 표면 뒤에 감추어진 보물들을 상상하지 못한다. 인식의 문을 열면 당장 눈에 보이는 그것을……” 등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기발함이다.
3. “사랑에는 실패가 없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다. 목적지를 모르는 여행이라야 진정한 여행이므로. 사랑에는 실패가 없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성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노통브의 신작 『겨울 여행』에는 괴상한 상황들과 맛깔스러운 대화가 가득하다. 노통브의 유머감각은 아무리 퍼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과도 같다. 환각버섯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장면도 등장한다. 세 명의 주인공이 함께 떠나는 환각여행은 화려하기까지 하다. 그들이 보는 환상적인 장면과 감정을 묘사해 놓은 부분은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인물들만큼이나 무게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추위에 대한 묘사 역시 탁월하다. 오만하고 잔인하면서도 달콤한 추위는 태양과 별들이 힘을 잃은 종말 이후까지 살아남을 존재로 신격화된다.
올해로 벌써 마흔셋이 되었지만 작품 속에서만큼은 여전히 천재 소녀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아멜리 노통브. 자조, 도발, 뒤얽힌 사건, 기발한 경구, 번뜩이는 통찰력, 그리고 독자들로서는 검색에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그러나 알아가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는 여러 학자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다 약간의 광기가 섞인 그녀의 소설은 해마다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번 작품에서는 작가 자신을 패러디한 알리에노르의 소설들을 은근히 언급해가며 평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었다. “알리에노르의 투명하고도 명확한 문체를 읽으면 작가가 되고 싶어져요. 아주 쉬워 보이거든요. 독자들은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한 번씩이라도 꼭 노트에 옮겨 적어보아야 해요. 그 문장이 왜 그렇게 훌륭한지 이해하는 데에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어요. 책을 너무 빨리 읽으면 그 자연스러운 문장 뒤에 감추어져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없죠.” (본문 중에서)
4. 광적인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작가 인터뷰)
《프랑스 스와르》誌(이하 FS) : 열여덟 번째 소설 『겨울 여행』은 정말 놀라운 작품이다. 어떻게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로부터 놀랍다는 반응을 얻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아멜리 노통브 (이하 AB) : 내 자신을 놀라게 하기 위해 글을 쓰기 때문이 아닐까.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신성한 스포츠와도 같다. 나의 한계를 넘는 최첨단의 상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