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Description
섬세하고 따뜻한 문장으로 상처 받은 이들을 위무해온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정여울의 신작 에세이다. 정여울은 그간 최신의 감각을 읽어내는 날카로운 평론과 영화, 소설, 뮤지컬, 연극, 음악 등을 아우르는 전 방위의 산문으로 문학 독자들을 포함한 다양한 독자층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정여울의 글이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한 분야를 끌어안는 특유의 포용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여울의 글은 소설로 들어가 영화로 맺기도 하고, 연극으로 들어가 뮤지컬로 끝나기도 하는 열린 시선을 가졌다. 이처럼 다양한 매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따뜻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 정여울의 문장은 온전히 ‘사랑’만을 정면으로 바라본 이번 에세이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반어법의 씨앗이 숨어 있다. 숨이 끊어질 듯 사랑하면서도 ‘잘 있지 말아요’라고 속삭이고, 편지를 쓰고 싶지만 차마 보내기는커녕 완성할 수조차도 없다. 절대 놓아주고 싶지 않지만 ‘그냥 지금 헤어집시다’라고 선언하고, 그녀를 결연하게 떠나보내면서도 자신의 사랑이 무거운 저울추처럼 그녀에게 평생 매달려 있을 거라는 저주를 서슴지 않는다. 사랑하기에 붙잡을 수 없고, 보낼 수 없기에 차라리 놓아버리는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프롤로그’에서 정여울은 궁극적으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이를테면, 그녀가 문학평론가로서, 독자로서, 관객으로서, 작가로서, 혹은 여자로서 접했던 수많은 ‘사랑 이야기’ 중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는 것들을 모아 사랑의 맨 얼굴에 대해 묻는 것이다. 풋풋한 첫사랑부터 처절한 순애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서서 이별을 고하는 쿨 한 연애, 아들뻘의 소년을 사랑하게 된 중년 남자의 슬픔, 인간보다 더 매력적인 괴물의 사랑…… 정여울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사랑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사랑에 대한 질문을 풀어나간다. 주로 37개의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그녀가 바라보는 사랑의 범주는 무척이나 넓어서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다. 특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클로저』, 『드라큘라』, 『오페라의 유령』, 「색, 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등 영화화되거나 공연으로 상연되는 작품들이 중심인데, 스크린이나 무대 위에서 생동했던 원작의 문장이 정여울의 다정다감한 글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된다. “영화 「클로저」는 바로 이 우선멈춤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타인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내가 아는 최선의 노력을 해보지만, 그럴수록 타인의 마음은 오히려 얼어붙을 때. 이제 ‘당신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멀어진 당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의 아픔. 「클로저」는 오랫동안 진정한 사랑을 갈망해온 네 남녀의 엇갈린 인연을 그려낸다. 앨리스(나탈리 포트만), 댄(주드 로), 안나(줄리아 로버츠), 래리(클라이브 오웬)는 서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끝내 행복을 찾지 못한다. 그들은 왜 서로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을까. 그들은 왜 함께 살면서도 행복할 수 없을까. 남자들이 상대방의 ‘진실’을 찾으려 할 때, 여자들은 상대방의 ‘이해’를 원한다. 여자들이 ‘미래’를 계획하며 행복의 주문을 걸 때, 남자들은 ‘과거’에 집착하며 그녀들을 유도신문 한다. 여자들이 지금이야말로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라 느낄 때, 남자들은 행복을 방해하는 갖가지 장애물을 확인하며 조바심을 느낀다. 이 영화는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사랑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불안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사랑 앞에서, 우선멈춤’에서 정여울이 주목한 작품 중에서는 『적과 흑』, 『설국』, 『리시스트라타』, 『월 플라워』 등 시대적 배경과 공간을 전혀 달리 하는 것이 많다. 나아가 연애소설이나 사랑 이야기로는 거의 읽히지 않았던 작품도 있다. 이를테면, 스탕달의 『적과 흑』은 1830년대 반동기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계급관념을 통렬히 풍자한 최초의 사회소설로 읽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여울은 순전히 연애소설로써의 『적과 흑』에 방점을 찍는다. 남자 주인공인 쥘리앵은 천진한 나머지 상식적인 관계의 기술도 알지 못한다. 드 레날 부인을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 자기 인생의 아킬레스건, 트라우마, 당면 과제를 빠짐없이 낱낱이 고백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드 레날 부인은 오히려 낯선 여인 앞에서 쩔쩔매는 쥘리앵에게서 이전의 어떤 남성에게도 발견하지 못했던 무구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자기소개를 요구받는 순간, 현대인들은 뭔가 최대한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될 수 있는 한 멋있는 멘트로 바람직한 첫인상을 구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누군가와 처음 마주치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아무 사전 정보가 없는데도, 그 사람에게 내 모든 약점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내가 누구인가’를 말하는 것이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를 증명하는 길일지라도? 『적과 흑』에서 쥘리앵 소렐은 드 레날 부인에게 정말로 그렇게 한다.” -‘가질 수 없는 대상을 향한 눈먼 열정’에서 이처럼 현대인들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쥘리앵의 ‘순박한 사랑법’은 묘한 울림을 준다. 사랑하는 대상을 얻고도 다른 무엇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욕망하는 현대인들에게 과연 사랑이 얼마만 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되묻는 것이다. “욕망은 천정부지의 복리(더 큰 만족)로 계산되며, 천문학적인 이자(다음 기회의 또 다른 만족)를 동반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쥘리앵의 꾸미지 않는 욕망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월플라워』의 주인공인 찰리의 모습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자신을 성추행했던 이모의 죽음,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과거 등 불우한 기억을 가진 찰리가 샘과 패트릭이라는 영혼의 친구를 만나면서 이것들을 치유해가는 과정이 하나의 아름다운 ‘사랑의 얼굴’로 그려진다. 샘과 패트릭은 찰리를 ‘왕따’나 ‘이상한 아이’가 아닌 한 사람의 친구로 대함으로써 찰리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도록 도와준다. 정여울은 이러한 과정이 또 하나의 사랑의 얼굴이자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이 곧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정여울이 읽어주고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는 결코 책장에만 꽂혀 있거나 보고 나면 잊혀버리는 무겁고 휘발성 강한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방향으로든 재창조 될 수 있고, 특히 ‘바로 우리들의 사랑’에도 실제적인 영향을 끼치는 ‘친근한 조언자’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정여울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친구이자 언니’로서 “사랑으로 아픈 이들에게, 사랑이 떠난 자리를 놓아버리지 못하는 이들의 가슴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외로운 밤을 보내는 이들에게” 공감의 마음과 위로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우리에게 과연 사랑, 연애, 결혼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사랑, 연애, 결혼을 모두 뛰어넘는 더 커다란 운명의 힘, ‘인연’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이런 질문의 씨앗을 품고 태어났다. 사랑은 나 자신을 예전처럼 통제할 수 없게 만든다. 연애는 우리 인내심의 한계를 매번 시험한다. 결혼은 힘겨운 사랑과 연애를 통해 배운 그 모든 것들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험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번 맺은 인연의 사슬을 끊어낼 수 없다. 당신이 지금 내 곁에 없더라도. 우리가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은, 우리가 한때 ‘인연’의 끈으로 함께였다는 사실은, 불씨 없이도 타오르는 영혼의 등불이 되어 우리의 고독한 삶을 영원히 밝혀줄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순전히 ‘사랑’만을 다룬 정여울의 첫 번째 에세이인 이 책은 정여울 자신의 이야기이자 거의 모든 사랑의 기술과 방식을 언급한 훌륭한 도감(圖鑑)이기도 하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통해서는 자신이 직접 부른 노래를 녹음해서 음성 사서함에 남겨두던 앳된 남자친구를 떠올리기도 하고, 『월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