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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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권의 장서가, 장석주의 오롯한 독서 일기 “니체에서 들뢰즈를 지나 노자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아우르다!” 이 책에 대하여 ― 책에 취해 마음 가는 대로 쓰다 《취서만필》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가 2년 동안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이자, 2만권의 장서가인 장석주의 오롯한 ‘독서 일기’다. 장석주는 한 분야만 고집하면서 독서를 하지 않는다. 그는 소설, 시, 인문서, 역사서, 논쟁집, 에세이, 예술서 등 다양한 책을 읽고 그 책들에 대한 느낌을 정연하고 자분자분하게 이야기한다. 그가 글을 전업으로 쓰는 사람이다 보니, 책 선정은 엄정하고 그 책에 대한 ‘독서 일기’는 다른 작가들보다 정치精緻하면서 논리적이고, 따뜻하면서도 냉정하다. 그러면서 그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심정으로 자신이 읽는 책의 내부 묘사와 그 내부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드러낸다. 장석주는 “책을 읽는 게 행복했다. 그 행복이 덧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다른 무엇과 바꾸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데카르트의 저 유명한 언사言辭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살짝 비틀자면, “그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고 할 정도다. 또한 그는 “책이라는 낙타를 타고 우주라는 사막을 타박타박 횡단하는” 순례자처럼 보인다. 장석주는 ‘사소함’, ‘논쟁’, ‘사람’, ‘예술’, ‘철학’, ‘문학’, ‘자연’, ‘여행’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어냈다. 모두 66권에 대한 그의 기록은 취서만필醉書漫筆, 즉 ‘책에 취해 마음 가는 대로 쓰다’라는 말처럼 탐독가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취서만필》을 통해 탐독가 장석주만의 책에 대한 시각, 무게, 느낌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취서만필》는 총 8부로 구성되었다. 제1부는 책, 사소함에 취하다, 제2부는 책, 논쟁에 취하다, 제3부는 책, 사람에 취하다, 제4부는 책, 예술에 취하다, 제5부는 책, 사유에 취하다, 제6부는 책, 문학에 취하다, 제7부는 책, 자연에 취하다, 제8부는 책, 여행에 취하다. 이는 단순한 나열식의 독서 일기가 아니라 그 책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메시지를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취서만필》에 담겨 있는 책 66권은 모두 장석주의 눈과 마음을 잡아끈 ‘사막의 오아시스’다. 그는 사막에서 오체투지로 순례하듯 경건하게 이들을 읽어냈다. 책은 ‘사막의 오아시스’다 보르헤스는 실명이 되었지만, 책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알베르트 망구엘이라는 책 읽어주는 소년을 발탁해서 소리로 책을 읽었다. 그에게 실명은 독서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장석주 또한 책 읽는 것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수많은 책을 읽어왔다. 그는 “세계는 거대한 사막이고 책은 오아시스다. 나는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자”라고 말할 정도다. 광활한 사막 속의 오아시스, 그 오아시스가 책이다. 그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장석주는 유목민처럼 떠돈다. 장석주는 “문자를 해독하게 된 이후로 끊임없이 책을 읽어왔지만, 지난 10년은 특히 책읽기 시간이 더 늘고 집중은 더 높아졌던 세월이 분명하다.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가택연금을 선택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유폐된 상태에서 그저 책만 읽었다”. 그는 노자에서 머물기도 하고 들뢰즈에서 머물기도 하고 장자에서 기숙하는가 하면, 발터 벤야민에서 머문다.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고 넘어 그 경계가 흐릿한 곳에서 장석주가 서 있다. 그는 왜 책을 읽는가? “책은 인류 문화사 안에서 최고의 발명품이다. 문화는 그 본질에서 놀이다. 책을 미친 듯이 읽는 행위가 앎에 대한 욕구와 상관이 있다면, 책에 몰입하는 행위는 놀이의 즐거움 속에서 자아를 구속하는 현실의 모든 제약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해방과 자유에 대한 꿈과 상관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그는 인류사에서 최고의 발명품인 책을 읽고 그 읽는 행위 속에서 세상사를 잊고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스물의 나이에 시립도서관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것은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을 읽어치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꿈이었다. 그는 “아무리 책을 좋아하고 일생을 책읽기에 바친다 해도 우리가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날마다 책 한 권을 읽는 원칙을 세우며, 세상의 모든 책들을 읽어내고 있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대부분 별 소용이 없는 걱정을 하는 데 써버린다. 그러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낸다. 장석주는 책과 친해지기 위해 날마다 책을 읽는다. 그에게 “책은 의미의 흐름들을 포획하는 기계다. 모든 읽기는 다음 읽기로 나아가는 디딤돌이다”. 하지만 그가 읽은 책은 “세상에 존재하는 책들의 총량을 바다에 견준다면 그 바다에서 티스푼 분량의 물을 떠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20세 때부터 폭주기관차처럼 책을 읽어왔다. 2만권의 장서가, 장석주가 읽은 책들을 한번 일별一瞥해보자. 황인숙의 《일일일락》을 품위 없이 낄낄거리며 읽다가 삶의 비루함과 고담함을 엿본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으며 자신에게 맹신과 광기로 치닫는 종교에 대한 불신이 있지만, 그래도 자신은 “신의 실재 쪽으로 끌려간다”고 고백한다.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을 읽으면서 육고기에 대한 식욕은커녕 구역질을 느낀다. 일본을 타자의 시선으로 분석한 《국화와 칼》을 몇 번이나 읽으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것은 번역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스콧 니어링 자서전》이나 《뿌리깊은나무의 생각》이나 《특집! 한창기》를 읽고 우리시대에 필요한 의인은 ‘스콧 니어링’이라고, 한창기야말로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를 사랑한 사람이자 자신이 문화인으로서 가장 흠모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행복의 건축》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을 독창성, 신랄함, 문학적 수사, 유머 등이 뛰어난 최고의 에세이스트라고 상찬한다. 이남호의 《일요일의 마음》에서는 예술가의 충만한 시간을 읽어내기도, 《유교 아시아의 힘》에서는 공자는 상업을 천시하지 않았으며 윤리가 희미해진 오늘날 유교가 대안이 될 거라 말한다. 반면《천 개의 고원》은 여러 번 통독했지만, 지난 10년간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문제적인 책이라고 고백한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들을 읽었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다고 하면서 바슐라르의 책들이 자신의 평론의 출발점이자 원체험이라고 한다. 마음이 요동치고 어지러워지면 서가에서 《선의 황금시대》를 꺼내 읽고 마음을 다독이기도 한다. 파스칼 레네의 연애소설 《레이스 뜨는 여자》는 그 연애소설의 수면 아래에 실패한 혁명이 만든 실망과 환멸을 읽어낸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에서는 저자의 방대한 독서량과 위대함에 기가 눌려 다치바나 다카시를 지구 위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격찬한다. 장승욱의 《사랑한다 우리말》은 틈 날 때마다 읽고 익혀두어 글 쓸 때 두루 도움을 받을 만하며, 크리스토퍼 듀드니의 《밤으로의 여행》은 “매혹적이고 풍요로운” 책을 다 읽기가 아쉬워 읽는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자신의 영혼이 무거움에 갇혀 헐떡일 때에 찾아 읽는다고 한다. 《도시의 기억》의 저자 고종석에게서 빼어난 에세이스트인 발터 벤야민의 모습을 엿보기도 한다. 《그 골목이 말을 걸다》을 읽으면서는 자신이 살았던, 삶의 자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서울 효자동과 부암동의 골목길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는 천상 장서가요, 독서가요, 탐독가요,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순례자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쉬지 않고 읽는다. 읽음으로써, 나는 존재한다. 나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먹고 산다. 책의 성분 요소들인 질료들과 날짜와 속도들을 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