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열 명의 소설가가 호텔 문을 여는 순간, 상상하며 펼쳐지는 ‘체크인’ 이야기 ‘소설가의 방’ 10주년 기념 소설 모음집 『당신을 기대하는 방』 서울 명동에 소재한 호텔 프린스가 2014년부터 주관한 ‘소설가의 방’ 레지던스 사업 10주년을 기념하는 소설 ·에세이 앤솔러지가 아침달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지금까지 ‘소설가의 방’에 입주한 작가들은 이곳에서 한국문학을 더욱 빛낼 작품들을 집필하였고, 미래에 등장할 작가들에게도 큰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한 달 넘게 무료로 제공되는 숙식을 통해 작가는 세상과 어긋난 마음을 잠시 맞출 수 있는 집필실에 머물러 세상과 불화하지만 기대해볼 수 있을 여러 약속이 담긴 이야기를 펼쳐낸다. 그중 이번 책 『당신을 기대하는 방』은 열 명의 소설가가 ‘체크인’을 주제로 입주 작가였을 때의 경험을 동력으로 삼고 상상력을 더해 쓴 소설 모음집이다. 책 제목은 정선임 소설가가 쓴 동명의 제목에서 가져왔다.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인 기대는 호텔 로비에서 가져온 짐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체크인을 하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열 편의 소설에는 저마다 호텔에 들어가는 이유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으로 묶이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바깥 삶이 아팠”(황모과, 「체크인 불가합니다」)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어딘가에 들어가는 일이므로. 이야기는 각자 복무하는 삶의 양태를 그리는 데 힘을 쏟는다. 장르적 구분 없이 다채로운 상상력으로 펼쳐내는 머무름은 호텔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웅숭깊은 언어로 그려졌다. 서로의 자리를 빌려주고 있었던 존재들에게 간결하고 매혹적인 서사들의 향연 『당신을 기대하는 방』에 수록된 열 편의 소설은 호텔에 체크인을 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내었다. 장강명의 「고양이별의 체크인」은 혈액암을 앓는 9살 소녀가 엄마 H와 함께 ‘나’가 일하는 호텔에서 체크인을 연습한다. 고양이별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지만 어떤 마음은 없는 것을 있다고 해야 믿을 수 있다. 정선임의 「당신을 기대하는 방」은 독특한 인물이 주인공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여행에서 마주치는 인물들과 다정하고도 우연한 만남을 나누는 장면이 애틋하다. 김지연의 「맴맴」은 취업 준비에 실패한 주인공 ‘백송희’가 휴식을 위해 한 호텔에 묵는 이야기다. 읽다 보면 무언가에 자꾸 맴도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유안의 「배웅」은 “잘 훈련된 웃음”을 가진 호텔리어 ‘강혜원’이 어느 날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가기 전 근처 호텔에 체크인을 하면서 함께했던 시절을 추억하고 혜원의 삶에 해준의 삶과 죽음을 포갠다. 방을 빌려주다가 빌리는 이야기를 통해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입장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기준영의 「부소니 호텔, 가을」은 ‘원희지’의 버킷리스트를 같이하기 위해 ‘권보경’이 한 호텔을 예약하고 그의 엄마 ‘염세정’이 동행한다. 꿈은 어떻게 꾸고 이루는 것인지 세 사람의 관계로 다양한 의미를 풀어놓는다. 나푸름의 「웰컴 투 더 시티」는 P 호텔 4층에서 격리 대상자들에게 식사를 챙기는 ‘나’에 관한 이야기다. 여러 사람을 상대하다가 이상한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누구인지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길 바란다. 김유담의 「이벤트」는 임신한 ‘이선’이 장기 투숙 이벤트에 당첨되어 호텔에 체크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호텔에서 만난 ‘경숙’과의 유대 또한 한순간의 이벤트로 기록된다. 양선형의 「철야」는 집이 불타고 나서 호텔에 들어가는 두 사람이 혼재된 자아처럼 “검은 말”과 “검은 개”를 중심으로 시적인 문장을 펼친다. 황모과의 「체크인 불가합니다」는 최고 명당에 입지한 P 호텔에서의 투숙 심사를 다룬 이야기다. 안쪽 사람과 바깥쪽 사람의 구분이 남기는 “비고객”이란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박솔뫼의 「체크인」은 우연히 소리를 한다는 “위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한밤을 회감한다. “내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일 수 있을지 다 쓰고 남은 것을 헤아리는 동안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들이 빗발친다. 소설가는 자신을 매 순간 현실 속에서 이방인의 입장으로 돌려 세계를 바라보는 습관을 지닌 자이다. 내가 겪은 경험은 특수하지만 이것을 한 편의 이야기로 옮기면서 언어는 동류의 감각으로 구성된다. 마치 각자 부여받은 객실 번호는 다르지만 결국 같은 복도를 건너야만 방에 다다를 수 있듯이. 방은 각자 머무르는 방식에 따라 다른 형태를 가지겠지만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비슷해진다. 방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듯 모든 경험이 내 것이 될 수는 없지만, 작은 상상력만으로도 사람들 곁에 이야기를 둘 수 있다. 머무름이 머무름만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쓰는 이야기에는 영원이라는 불가능한 시간을 가능한 시간으로 감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