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전쟁의 격랑 속에서도 살아남은 인간의 존엄과 사랑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빠스쩨르나끄가 남긴 불멸의 걸작
동시대 서정시와 러시아 서사문학의 위대한 전통에서 이룩한 중요한 업적
- 노벨문학상 선정 사유
『뉴욕 타임스』 선정 ‘20세기 최고의 책 100선’
우리 시대 최고 걸작의 하나 - 『뉴요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를 경험할 기회 - 『뉴욕 저널 오브 북스』
1957년 출간되어 이듬해 작가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만들어주고, 이후 영화화를 통해 전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세기를 넘어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호명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 『의사 지바고』가 창비세계문학 96, 97번으로 출간되었다. 일찍이 시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보리스 빠스쩨르나끄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러시아혁명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러시아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살아냈던 지바고의 생애와 운명적 사랑이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작품 『의사 지바고』는 인류가 품었던 가장 숭고한 꿈이 인간에 대한 폭압으로 변질되는 처참한 현실 속에서도 예술을 향한 굽힘 없는 열망을 품었던 의사이자 시인 지바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다룬다. 이 작품은 정치적 이유로 자국에서 출간을 거부당하고 이딸리아에서 출간되었으나 이후 18개국에서 번역 계약이 되며 작가에게 세계적 명성뿐 아니라 노벨문학상의 영예까지 선사했다. 그러나 정작 러시아에서는 이 수상을 놓고 반(反)빠스쩨르나끄 운동이 일어날 만큼 거센 항의가 빗발쳤고, 작가는 결국 수상을 거부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작가 동맹에서 제명당하는 등 국가로부터 외면받은 빠스쩨르나끄는 2년 뒤 침묵 속에 지병으로 사망하는 쓸쓸한 결말을 맞이했다.
창비세계문학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의사 지바고』는 근현대 러시아 문학을 두루 소개해온 역자 최종술의 적확하고 탁월한 번역으로 ‘소설로 쓴 시’ ‘시와 산문의 종합’이라는 평을 받는 작품의 진면목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작품의 문을 여는 문장 “걷고 또 걸으며 「영원한 기억」을 노래하고 있었다. 행렬이 멈추면 발이, 말이, 바람의 숨결이 추도의 노래를 이어받아 부르는 것 같았다”(1권 9면)에서 엿볼 수 있듯 원작의 고유한 문체와 시적 리듬을 고스란히 담아낸 판본이라 할 수 있다. 또 작품의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한 역자의 해설을 통해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역사적 책임과 시대의 소명을 자각한 주인공에게서 벗어나 타협하지 않고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추구하는 주인공 유리 지바고의 독특함을 짚고, 이 점이 혁명과 소비에뜨 사회주의가 가진 의미를 새롭게 드러낸다는 통찰을 제시해 보이고자 했다.
개인의 사랑과 죽음을 넘어서는 구원의 서사
『의사 지바고』를 수식하는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격랑 속에서 피어난 지바고와 라라의 운명적 사랑’일 것이다. 실제로 작품의 두 주인공 지바고와 라라는 그 어떤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그런 서로를 제 몸처럼 믿고 사랑한다. 이들에게는 공간적, 시간적 이별은 물론 생사 여부조차 장애가 되지 않는다. 현실 생활의 규범과 풍습을 넘어 인간의 자유를 갈구하는 영혼의 동반자인 것이다.
그러나 『의사 지바고』가 이토록 아름다운 영혼을 타고난 두 사람이 피워낸 사랑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바고는 인간을 억압하는 전제정치와 자본주의의 폭거를 타도하기 위해 일어난 혁명에 열광한다. 자신의 출신 계급이 그 타도의 대상임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그 미래를 사랑”하고 “남몰래 자랑스러워” 한다. 그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1권 299면) 그러나 그 혁명의 끝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참혹한 현실을 호도하는 공허한 구호와 여전한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체제의 억압뿐이다. 그러한 고난과 환멸을 견뎌내기 위해 지바고가 붙드는 것은 예술과 노동이다. 감자 한알, 땔감 한더미를 얻는 것이 더없는 걱정거리인 일상을 꾸려가며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충실한 노동 속에서 그는 삶 자체를 발견하고, 그 발견은 곧 시작(詩作)이라는 구원으로 이어진다.
『의사 지바고』는 어린 지바고가 참석했던 어머니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해 친구들이 지바고의 유고 시집을 뒤적이며 어스름에 잠긴 모스끄바를 내려다보는 에필로그에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자신의 근원이 소멸한 자리에서 시작해 자신의 생명이 다한 뒤 결실처럼 남은 문학에서 끝나는 이 서사는 지바고의 일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책의 마지막에 실린 「유리 지바고의 시」는 지바고가 남긴 시 25편을 통해 ‘고난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고난으로 인해 비로소’ 해방되는 자유와 인간이 지닌 사랑과 창조의 힘에 대한 믿음을 품었던 지바고의 예술관을 생생히 드러내 보인다.
“마지막 말이자 온 세상을 향해 건네는 가장 중요한 말”
보리스 빠스쩨르나끄는 『구름 속의 쌍둥이』 등 러시아 낭만주의를 계승한 시집들을 펴내며 1920년대에 이미 시인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자신의 작가적 과업을 장편서사에 두었다.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삶의 철학을 대중 독자와 공유하고자 했던 그의 열망은 그를 『의사 지바고』의 집필로 이끌었다. 작가는 이 역작을 놓고 1905년과 1917년의 혁명, 그리고 두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체제라는 격변의 시대를 거쳐야 했던 동시대인에게 들려주고자 한 “마지막 말이자 온 세상을 향해 건네는 가장 중요한 말”(2권 484면)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격랑 가운데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과 자신의 삶이 어긋나 파멸할 것임을 예견하면서도 자유로운 인간 삶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은 지바고의 일대기를 통해 작가가 건네고자 했던 바로 그 말을 역자는 이렇게 요약한다. “삶은 축복인 동시에 소명이다. 살아야 한다.”(2권 5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