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국가를 건설한 칼뱅의 독재와 폭력에 맞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며 관용을 부르짖은 위대한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
역사에서 잊혀졌던 카스텔리오의 감동적인 싸움을 20세기 최고의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역사의 전면에 부활시킨다!
종교적 광기와 독재의 폭력이 지배하던 시대, 박해받는 ‘다른 의견’을 위해
자신의 운명을 걸고 단호하게 맞섰던 위대한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
오늘, 그의 양심과 용기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붓끝을 통해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다!
_역사에서 잊혀진 인물, 카스텔리오의 부활
흔히 “역사는 승리자들의 기록”이라고 한다. 실제로 역사는 정당할 때가 없다. 역사는 냉정한 연대기 기록자로서 결과만 헤아릴 뿐 도덕적인 척도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역사는 오직 승리자만 응시하며 패배자들은 어둠 속에 남겨둔다. 이 책의 주인공 카스텔리오 역시 역사의 패배자로 철저하게 잊혀진 인물이다. 그의 맞수인 칼뱅(올해로 탄생 500주년을 맞는다)은 종교개혁을 이끈 인물로, 또 개신교 신앙의 아버지로 오늘날에도 널리 추앙받고 있지만, 그에 맞서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고, 관용을 부르짖었던 카스텔리오는 그 존재조차도 희미하다.
실제로 승리자 칼뱅에 관한 기록이나 자료, 책자는 수없이 많이 남아 있지만, 카스텔리오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그의 초상화는 겨우 한 장만 남아 있다). 하지만 전기작가 츠바이크는 수백 년 동안 잊혀졌던 16세기의 인문주의자이자 양심적인 지식인이었던 카스텔리오를 부활시켜 오늘 우리에게 소개한다.
_양심적인 지식인 카스텔리오의 전기
이 책은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지를 떠돌았던 위대한 전기작가 츠바이크가 혼신의 노력으로 발굴해낸 16세기의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의 전기다. 원제는《폭력에 대항한 양심-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Castellio gegen Calvin oder Ein Gewissen gegen die Gewalt》이며, 1935년에 독일어로 처음 출간되었다. 이 책은 주인공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는 여느 전기처럼 주인공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하기보다는 “정신적 독재자이자 광신적인 주지주의자”였던 칼뱅과 그에 맞서 목숨을 걸고 “관용과 양심의 자유를 부르짖은” 카스텔리오를 대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두 인물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도록 한다.
이 책은 제1장인 “칼뱅의 권력 장악”부터 제5장까지 칼뱅의 종교적 독선과 광신적 행태, 비인간성과 잔혹함을 묘사하고, 그의 지배 하에 있던 제네바를 히틀러 독재에 비견되는 독재체제로 고발하는 데 할애한다. 그런 다음 제5장부터 마지막 제9장까지는 “편협한 광신주의자” 칼뱅과 그 일파에 맞선 “자유로운 영혼” 카스텔리오의 고독하고 치열한 싸움을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_관용의 화신
‘관용’에 관한 유명한 경구가 있다. 바로 볼테르의 것이다. “나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견해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 서서 끝까지 싸울 것이다.” 카스텔리오는 볼테르에 앞서 이 경구를 글자 그대로 실천한 인물이었다. 그는 젊은 신학자 세르베투스가 성서 해석에서 칼뱅과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화형 당하자, 그의 신학적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옹호함으로써 스스로 박해를 선택한 용기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츠바이크는 “감히 카스텔리오를 볼테르나 에밀 졸라, 로크, 흄 같은 인물들과 함부로 비교하려 들지 말라. 이러한 비교는 카스텔리오가 한 행위의 도덕적인 높이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훨씬 후대의 인문주의적 시대에 살았던 볼테르나 에밀 졸라와 달리 카스텔리오는 지지자나 후원세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칼뱅의 흉포한 권력에 대항해 단신으로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그의 저서 《이단자에 관하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카스텔리오의 관용의 외침은 유럽에서 선구적인 것이었다.
_치열한 논쟁의 기록
이 책은 칼뱅과 카스텔리오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카스텔리오가 벌떼처럼 달려드는 적들에 맞서면서도 온건하고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흠잡을 데 없이 설득력 있는 논리로 칼뱅 일파의 논리를 공박하는 부분이다. 오직 자신의 견해만을 진리라고 강변하면서 다른 모든 의견을 이단시하는 칼뱅에 맞서 카스텔리오는 이렇게 반박한다.
“국가권력은 의견 문제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 다른 의견, 다른 세계관을 갖는다고 해서 거품을 물고 미쳐 날뛰는 일이 왜 필요한가. 어째서 끊임없이 경찰을 부르고, 살인에 이르도록 미워한단 말인가.……혼자만이 옳다는 오만에서 잔인함과 박해가 나온다.……오직 높으신 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때로는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런 탄압과 박해들이 일어난다.”
_폭력과 독재를 고발한다!
이 책은 저자인 츠바이크가 살았던 부조리한 시대에 대한 고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츠바이크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외국으로 망명하고 있던 시기에 이 책을 썼다. 실제로 책 속에서 저자는 단순히 종교적 폭력과 광기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단일한 신앙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되고 조작?지배되는 사회가 얼마나 끔직한 공포정치를 낳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칼뱅과 카스텔리오의 싸움을 통해, 독선과 광기에 사로잡힌 지도자와 그가 행사하는 권력과 규율이 그 어떤 다른 의견이나 개성도 용납하지 않는 전체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그와 동시에 카스텔리오를 그런 체제의 폭압성에 맞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끝까지 양심을 지켜낸 인물로 묘사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종교적’ 외투를 쓰고 있지만 다분히 ‘정치적’인 주제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카스텔리오의 삶은 역사 속에서 무수히 출현한 독재에 맞서 영웅적으로 투쟁한 참되고 올곧은 지식인의 모델로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할 것이다.
상원
4.0
"내가 다른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참되고 옳은 것이 마침내 정당성을 갖기 까지 거듭 말하는 일은 절대로 필요하다."
르네상스형뮤지션
4.0
‘자유는 권위 없이 불가능하고(그렇지 않으면 혼란이 되어버리므로), 권위는 자유 없이 불가능하다(그렇지 않으면 폭군이 될 것이므로).’ 인문학적으로 인물과 특정 시대를 다루면서 글 재밌게 쓰기로는 믿고 읽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명저. 관용 대 독단, 자유 대 간섭, 인문주의 대 광신주의, 개인주의 대 기계화, 양심 대 폭력, 인간적 대 정치적, 윤리 대 논리, 개체성 대 공동체. ‘사람들은 세계를 현혹시키는 사람들을 경탄하고 찬양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그들이 정신의 힘으로 평범한 물질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이상주의자들과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승리를 거두고 난 직후에 언제나 정신에 대해서 가장 고약한 배신자로 변한다.’ 스탈린, 히틀러 같은 독재자까지 갈 것도 없이 일론 머스크를 보라. ‘어떠한 이념이든 간에 그 이념이 다른 사람들의 신념을 단일화하고 복무규정으로 만들기 위해 테러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잔인성일 뿐이다. 가장 순수한 진리라 해도 폭력으로 그것을 남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정신에 반하는 죄악이 된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새겨야 할 아포리즘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소수의 활동가들이 테러를 마다하지 않으면 온건한 다수는 위협받기 마련이다.’
원기핑
3.5
폭력과 독재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행한 칼뱅, 그 어느 사람의 지지도 없이 삶을 내걸고 관용의 이름으로 맞선 카스텔리오. 현대에 와서는 어느 때보다 이성과 과학으로 점철되어 있다고하지만 역사는 반복되는 중. 이 시대에 관용은 안녕한가?
박상민
3.5
"카스텔리오는 단 한 가지만이 이러한 야만성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관용 Toleranz이었다. 우리의 세계는 단 한가지가 아니라 수많은 진리들을 위한 공간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원하기만 하면 서로 나란히 모여 살 수 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신념을 판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 광포한 이단이 외치는 소리는 필요 없게 되고,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온갖 박해는 쓸모없어진다. 칼뱅이 영주들을 항해 쉬지 않고 이단자를 제거하기 위해 칼을 휘둘러야 한다고 열을 올려 설파하고 있을 때, 카스텔리오는 이렇게 호소한다. "온건함의 편을 들고 살인을 사주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아야 할 때, 그들이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 을 도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변호하기에도 바쁠 것입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지금 여기에 계신다면, 그분은 절대로 여러분께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죽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한두 가지 세부사항에서 틀렸다고, 혹은 잘못된 길을 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 -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바오출판사, 2009), p.200-201 + 칼뱅과 달리, 부드러운 언어로 자유를 호소했던 카스텔리오를 더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된 츠바이크의 언어가 칼뱅을 향해 지나치게 날이 서있지는 않았는지 되묻게 된다. (다만 츠바이크 본인 역시도 칼뱅에게 공정한 태도로 글을 쓰기 위해 끝없이 고민했다는 사실도 함께 고려해야겠지.)
lightblueheart
0.5
한 인간을 뿌리부터 부정하려는 글에는 누구나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그 주장이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말이다. 왜일까? 그게 본능인 것 같다. 분명 맞는 말이긴 한데.. 똑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는 느낌에 지루했다
근웅
4.0
"언제나 가장 완벽한 극단은 마지막에 서로 만나는 법이다."
소미아
5.0
문학보다 더 문학적으로 느껴지는 철학서를 읽었다. 진리란 퍼져나가는 것이지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는 문장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아주 작은 다른 생각이 범죄는 아닐지언정 멈출 수 없는 범람으로 둑을 터트려 그 생각이 뚫고 나간 자리가 그 이전과 같아질 수는 없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그런 모험을 감행하여 신적인 다양성으로 드러나는 개성들을 살리고 싶다.
노종래
3.5
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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