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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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의 정치사’라는 계보학적 오뒷세이아의 출발점! | “지식의 의지. 이것이 내가 올해 강의에 붙이고 싶은 제목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내가 했던 역사적 분석들 대부분에 이 제목을 붙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내가 이제 하고 싶은 분석을 특징지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제목이다.”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는 푸코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행한 첫 번째 강의인 동시에 (그동안 푸코의 방법론이라 알려졌던 ‘고고학’과 대비되는) 자신만의 ‘계보학’을 선보인 첫 번째 연구 성과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강의는 지식(혹은 진리)과 권력의 관계를 탐구하는 ‘진리의 정치사’(혹은 ‘진리의 역사’)를 구축하려 한 푸코의 기나긴 오뒷세이아가 개시된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더욱 더 중요하다. 『감시와 처벌』(1975)의 전 세계적 성공으로 푸코는 흔히 ‘권력 비판의 이론가’로 알려져 있지만, 더 정확하게, 푸코가 문제 삼은 것은 권력과 지식의 상호작용(게임 혹은 결탁) 및 이런 권력-지식 관계가 개인을 주체로 만드는 다양한 양태였다. 요컨대 ‘지식-권력-주체(화)’라는 문제틀이 푸코 평생의 연구 테마였다.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는 푸코 본인의 육성을 통해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는 이처럼 푸코가 걸어온 사유의 여정을 ‘진리의 의지’(=지식의 의지)에서 ‘진실의 용기’(이것이 푸코의 마지막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제목이었다)로 회귀하는, 참/거짓을 나누는 배제의 체계에서 참/거짓을 나누는 상이한 게임으로 이행하는 진리/진실의 오뒷세이아로, 즉 ‘진리의 정치사’라는 틀로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읽는다면, 우리는 푸코가 다뤄온 외견상 상이한 테마들(지식/진리의 의지, 정신의학, 비정상인, 생명정치, 통치성, 자기 배려, 파르레시아, 자기와 타자에 대한 통치 등)이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상 하나의 동일한 문제설정 아래에서 일관되게 연구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는 당대의 독자들(=청중들)에게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들 중 가장 어려운 강의로 통했다고 한다. 기존의 저작들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낯선 테마들이 다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설명 방식(계보학) 자체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어판에는 ‘지식의 의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전체(더 나아가 푸코의 사유 전체)를 다른 저작들과의 관련 속에서 조망하는 옮긴이 해제(원고지 400매)를 수록했다. 여지껏 시도된 바 없는 이 작업은 국내의 푸코 독자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푸코가 선보이는 ‘지식의 의지’에 대한 계보학적 연구! | “첫 강의. 이번 강의는 한 가지 의미 이상으로 처음이다. 화자의 새로운 지위 수립, 연구 표적의 이동, 매체의 측면 등에서의 처음.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해의 강의 때문에 우리는 푸코가 기술한 지식들의 의미를 다시 물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처음.”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는 네 가지 축으로 이뤄져 있다. (1) 서구 형이상학 비판, (2) 담론의 사건성과 물질성, (3) 진리 효과들을 산출하는 법적-정치적 형태들. (4) 오이디푸스의 권력과 지식. 강의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1)과 (2)에서 중요한 것은 ‘니체 모델’과 ‘궤변술’이다. 푸코는 (소크라테스-플라톤을 이어) 인간의 본성에 새겨져 있으며 권력으로부터 분리된, 순수한 지식(인식)에 대한 욕망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 모델’에 ‘니체 모델’을 맞세운다. 니체에 따르면, 그런 중립적인 지식, 마치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양 간주되는 보편적인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진리 모델은 참된 담론과 거짓 담론을 구분한 뒤 후자를 가상 내지 오류라며 배제하는 폭력을 행사한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계열, 즉 수사학자/웅변가들이 아닌 철학자들은 결국 소피스트들을 철학사에서 몰아내고 참과 거짓의 체계와 그 담론 체계를 장악함으로써 말의(말할) 권리를 독점한다. 이로써 참의 견딜 수 없는 차원을 역설하는 비극적 발화는 거부되며, 진리라는 미명 아래 이뤄지는 합의의 기만과 불의의 추문을 고발하는 혁명적 발화는 제거된다. 푸코는 이(들)에 맞서, 진실을 더 잘 말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 소피스트들의 궤변술을 통해 ‘말해진 것’ 자체의 사건적이고 물질적인 성격에 주목한다. 강의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3)과 (4)에서 중요한 것은 ‘측정/적도-조사-검사’ 혹은 ‘시련-조사-검사’이다. 원래 ‘측정/적도’는 고대 희랍에서 한계에 대한 인식(가령 “너 자신을 알라”)에 의해 요청된 것인데, 푸코는 이것을 화폐가 발명되어 도시국가 전체에 유통되고 사회적 유대를 상징할 수 있게 됐으며, 공평무사한 익명의 법(노모스)이 제정되던 희랍 도시국가의 구성 과정과 연결짓는다. 이때 ‘측정/적도’는 권력을 지닌 자가 토지, 사물, 부, 권리, 권력, 인간을 측정해 공정한 질서를 수립하는 권력-지식의 한 형태로 등장한다. 한편, 푸코는 희랍 도시국가의 이런 변모 속에서 고대 희랍의 진실진술 양식으로서의 ‘시련’이 고전기 희랍의 ‘조사’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추적한다. 고대 희랍에서는 재판의 승패가 개인들 간의 대결로 결정됐다. 어느 한쪽의 시련-도전(가령 당사자의 맹세)을 받아들이냐 마느냐라는 게임에 의해 진실이 확립되고 재판의 승패가 결정됐던 것이다. 이와 달리 고전기 희랍에서는 개인들 간의 시비가 아니라 주권자 혹은 주권자를 대리하는 검사가 수행하는 심문(“누가 무엇을 어떤 상황 속에서 했는가” 등)을 통해 진실이 확립되고 재판의 승패가 결정된다(‘검사’는 『감시와 처벌』에서 다뤄진다). 요컨대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의 전반부는 서구 형이상학의 진리의 의지가 소피스트의 궤변술을 축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부는 고대 희랍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회·정치 변환(법·정치·경제·종교 체계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진리가 수립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연결하는 것은, 투쟁과 경합을 통해 산출되는 진리 관념이 무대에서 배제되며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가 무대를 차지하는 과정이다. 푸코는 객관성, 보편성, 중립성, 정함을 특성으로 갖는 진리/진실이라는 것이 사실은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지식의 복잡한 게임을 통해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에서 시작된 ‘진리의 의지’(=지식의 의지)의 계보학은 서구 형이상학 전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하려는 푸코의 이론적 토대로서 그의 사유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