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과거

장승리
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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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 531권. 정제된 언어로 따스하고 내밀한 감정을 묘사해온 장승리의 세번째 시집. 파경의 이미지로 사랑의 결렬을 섬세하게 표현한 <습관성 겨울>과 "정확한 칭찬"이라는 "불가능한 선물"을 주고 싶다(문학평론가 신형철)는 평을 받은 <무표정> 이후 7년 만의 신작이다. 감성학이 미학의 다른 이름임을, 그래서 미란 무엇보다 강렬한 감정의 표현임을 증명해온 장승리는 이번 시집에서 부재하는 너를 향한 사랑의 발화를 속삭인다. "네가 내게 온 건 어제 일 같고/네가 나를 떠난 건 아주 오래전 일 같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없음이라는 형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불가능한 방식으로만 가능한 연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시인에게 실체로서 너는 'nothing'이지만, 그것은 비존재로서 무(無)가 아니다. '너의 없음'이라는 지칭을 통해 비로소 '너'는 이곳으로 불려 나오고 보이지는 않지만 마주할 수 있는 대상으로 현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과거>는 눈앞에 대상을 둔 사랑이 아니라 부재하는 너를 애타게 호명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통해서만 가까스로 조우할 수 있는 연인을 향한 순정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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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시인의 말 유월/고라니/하나/그 후/폭식/에덴의 서쪽/좁은 문/합창/거미줄/화요일/맹목/맹목/신의 결혼식/직각의 바다/나방/나방/투우/생의 한가운데/나/나/더 많은 nothing/고도 애도/물새/문은 시작한다/전쟁과 평화/열정/선물/자기만의 방/한여름 밤의 인테리어/가설/풍향계/눈사람/꽃다운 나이/호위병들/불투명 인간/달콤한 인생/1308호실/환상곡/환상곡/환상곡/환상곡/연인/디테일/이 세상에는 오직 새밖에 없다는 듯이/이 세상에는 오직 새밖에 없다는 듯이/빛/술래/반과거/반과거 해설 사랑의 문법과 이진법 우주 - 권혁웅

Description

불가능한 사랑을 실현하는 목소리 없는 너로 가득한 고백의 시어 정제된 언어로 따스하고 내밀한 감정을 묘사해온 장승리의 세번째 시집 『반과거』(문학과지성사, 2019)가 출간되었다. 파경(破鏡)의 이미지로 사랑의 결렬을 섬세하게 표현한 『습관성 겨울』과 “정확한 칭찬”이라는 “불가능한 선물”을 주고 싶다(문학평론가 신형철)는 평을 받은 『무표정』 이후 7년 만의 신작이다. 감성학이 미학의 다른 이름임을, 그래서 미란 무엇보다 강렬한 감정의 표현임을 증명해온 장승리는 이번 시집에서 부재하는 너를 향한 사랑의 발화를 속삭인다. “네가 내게 온 건 어제 일 같고/네가 나를 떠난 건 아주 오래전 일 같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없음이라는 형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불가능한 방식으로만 가능한 연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시인에게 실체로서 너는 ‘nothing’이지만, 그것은 비존재로서 무(無)가 아니다. ‘너의 없음’이라는 지칭을 통해 비로소 ‘너’는 이곳으로 불려 나오고 보이지는 않지만 마주할 수 있는 대상으로 현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과거』는 눈앞에 대상을 둔 사랑이 아니라 부재하는 너를 애타게 호명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통해서만 가까스로 조우할 수 있는 연인을 향한 순정한 고백이다. “눈이 부시다 셀 수 없는데도 부족하다” 『반과거』 속 연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실존을 확인한다. 시인이 “죽은 새와 바람이 서로의 나무가 되어갔다”(「연인」)라고 적을 때, 우리는 그저 두 존재가 만나서 하나로 얽히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다. “죽은 새”는 생명을 잃었다는 점에서 불완전하고 “바람”은 형체가 없다는 점에서 태생적 결핍을 지니기 때문이다. 둘이 “서로의 나무”가 되어가는 상보적 이미지는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하나도 위태로워지는 관계, 즉 필연적 “연인”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왜 당신이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을 때까지 보고 싶은 걸까요 ―「맹목」(p. 19) 주의 깊게 살필 점은 장승리가 묘사하는 연인들이 실천하는 사랑의 형식이다. 「맹목」에서 나는 눈앞의 당신이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은 순간의 당신, 볼 수 없는 당신을 보고자 한다. 심지어 그 소망은 보고 싶음이 모든 가능성을 실현할 때까지, 아마도 무한의 기간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에 불가능으로 가능을 꿈꾸는 이 모순의 형식은 실상 부재하는 너를 향한 나의 애틋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너는 처음 본 절벽 떨어지는 내내 너와 눈 마주칠 수 있다니 ―「생의 한가운데」 왜냐하면 시인에게 너는 대지가 아니라 “절벽”이기 때문이다. 너는 발붙일 곳 없어 추락하는 순간에만, 장소가 사라진 장소에서만 비로소 “눈 마주칠 수 있”는 대상이다. 이처럼 장승리는 결핍의 형식으로만 충족이 가능한 ‘너’를 끊임없이 호출한다. 이것은 너와 나, 즉 우리의 연결 상태를 거듭 확인하려는 안간힘일 것이며,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감정적 깊이를 배가시키는 장승리식 사랑의 문법이기도 할 것이다. “너와 시선이 마주친다 영원이 연모하는 이 순간” 『반과거』에서 너를 불러내는 부재의 공간은 텅 빈 공중이 아니라 ‘무엇인가 일어날 수 있는 지점’에 가깝다. 시인은 이 영역에서 ‘무엇’이라는 명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일어남’이라는 동사에 주목한다.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 왜 내가 답장을 해야 하는지 너에게 받지 못한 답장을 내게 받는 매일매일 해를 향해 뒤로 걷는 나는 너에게 답장이 아닌 것을 받고 싶었다 너무 많은 nothing이라는 답장을 또 받았다 ―「너무 많은 nothing」 부분 어쩌면 시인에게 사랑은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 “내가 답장”하는 행위의 반복일지 모른다. 이러한 재귀적 운동을 통해서나마, 무용해 보이지만 부단히 발생되는 사건을 통해서나마 가리킬 수 있는 대상으로서 네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흙을 닦는다 없는 얼굴이 없었던 얼굴이 되도록 없었던 얼굴이 깨끗한 얼굴이 되도록 ―「꽃다운 나이」 그렇지만 “없었던 얼굴”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깨끗한 얼굴”이 되는 순간은, 내가 너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명징하되 짧다. 그것은 “한 번/눈꺼풀을 깜박이는 사이/네 옆이 내 앞”(「반과거」, p. 60)에 모습을 드러내는 찰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시인에게 이 순간은 “거울을 뚫고 나온 구멍이/나를 메우는 순간”(「그 후」)처럼 생의 이유이기도 하다. 찰나이지만 영원에 가깝고, 공허하지만 충만함을 일깨우는 마주침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과거』를 통해 상대를 눈앞에 둔 사랑이 아니라 부재로써 끊임없이 현존하는 사랑, 만날 수 없기에 어쩌면 영원히 만날 수 있는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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