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일본의 인문학은 이 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 일본사상계가 낳은 슈퍼스타의 대표작 이 책은 1971년생인 아즈마 히로키(東浩紀)가 1998년에 간행한 출세작 를 완역한 것이다. 저자는 국내에도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일본인으로 이미 여러 권의 책이 번역,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들을 중심으로 서브컬처론, 일본사상론 등과 관련하여 얼마간의 논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인물로 간주되어 왔는데, 왜냐하면 대표작 이 여전히 풍문으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은 저자의 입장에서는 처녀작에 불과했지만 일본의 지식계나 일본의 독자들은 그것을 거대한 폭탄으로 받아들였다. 20대 중반(23살~26살)에 씌어진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철학연구서(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된 것이기도 하다)로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팔렸다. 한 달도 되기 전에 1만 3천부 정도 팔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는 일본의 대표적 주간지인 <AERA>의 표지 모델로 장식될 뿐만 아니라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하고 심지어는 문학상인 미시마 유키오상 후보에까지 오른다. 일본출판계는 새로운 지적 영웅의 출현에 환호를 보냈다. 어떤 이를 그를 ‘가라타니 고진의 후계자’라고 평가했고, 또 어떤 이는 일본사상계는 이 책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으로 보았다. 아즈마 히로키가 가라타니 고진의 후계자라고 불린 것은 일찍이 그에게 주목하여 비평가로 데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의 원고를 자신이 편집하는 잡지인 <비평공간>에 연재하도록 한 이가 가라타니 고진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당시 독서계에 준 충격은 게이오대학 교수이자 평론가인 후쿠다 가즈야의 다음과 같은 한탄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옛날 대학원생들이 하나같이 가라타니 고진을 읽었다면, 지금은 모두가 아즈마 히로키의 을 읽는다.” 그리고 1980년대 일본사상계의 영웅이었던 아사다 아키라는 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다. “아즈마 히로키와의 만남은 신선한 놀라움이었다. 그 놀라움과 함께 나는 <구조와 힘>이 마침내 과거의 것이 되었음을 인정했다.” ■ 데리다에 대한 훌륭한 해설서이자 그 이상을 담은 책! 은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크 데리다에 대한 해설서이다. 하지만 데리다의 해설서라면 일본에도 무수히 나와 있었다. 이 책이 당시 일본사상계에 충격을 준 이유는 단순한 해설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후반 프랑스철학의 유행에 대한 반성과 그것의 종언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일본을 석권한 프랑스철학은 1990년대엔 한국의 지식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풍미되었는데, 그 열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금 왜 모두가 그에 그토록 열광했는지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 점에서 그저 ‘팔리는 인문학’만이 환영받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지적 풍토를 검토하는 데에 있어서도 이 책은 매우 유용한 저작이라 할 수 있다. ■ 탈구축(deconstruction)에는 두 종류가 있다. 존재론적 탈구축과 우편적 탈구축. 은 다음 두 가지 사이의 긴장관계에 의해 성립하고 있는 책이다. 첫째는 말 그대로 데리다를 경유한 현대사상(라캉, 푸코, 들뢰즈, 그리고 알튀세르까지)에 대한 정리 내지 요약이고, 둘째는 그런 것에 몰두하는 자신에 대한 거리두기(자기분석)이다. 그런데 이 긴장감은 그로 하여금 결국 현대사상을 넘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한 뿌리(하이데거와 프로이트)로까지 소급하게 한다. 이때 아즈마 히로키는 ‘우편적’이라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내세워 프로이트 편에 서서 하이데거를 비판한다. 그가 말하는 두 개의 탈구축(‘존재론적 탈구축’과 ‘우편적 탈구축’ 또는 ‘괴델적 탈구축’과 ‘데리다적 탈구축’)이란 바로 이들의 긴장관계에서 유래한다. 이 부분에서 주목을 요하는 것은 프로이트와 라캉의 차이에 대한 엄격한 구분과 후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라캉은 프로이트를 하이데거화(철학화)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지젝도 그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따라서 이 책은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현대사상가인 지젝에 대한 비판서로도 읽을 수 있는데, 이는 다른 말로 지젝에 열광하는 한국 지성계와 독서계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다 무시한다고 치고 단순히 데리다 해설서로서도 유용한데, 왜냐하면 국내에 나온 어떤 데리다 연구서보다 친절하게 독자들을 데리다 사상의 뿌리로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