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겊원숭이가 뭐야?
―아이들에게 마을을 만들어주는 좋은 어른들
‘헝겊원숭이’라고 하면 부지불식간에 인형을 떠올린다. 하지만 ‘헝겊원숭이’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와 메시지가 함축돼 있다. 김보민 헝겊원숭이운동본부 이사장이 쓴 이 책의 내용 전체가 헝겊원숭이의 뜻을 설명하고 있는데, 저자는 ‘좋은 어른’이라고 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좋은 어른’은 또 무슨 뜻일까? 저자에 의하면 ‘좋은 어른’이란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생각해주는 어른이다.” 사실 이 말도 부연이 필요해 보인다. 저자의 말이다.
마을 공동체와 가족공동체가 거의 해체되어 마음 둘 곳이 없는 아이들. 요즘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건강한 마을 생태계가 파괴되어 나타난다 고 생각한다. 늦게 돌아오는 부모를 대신해서 저녁을 먹었는지 관심을 가져주는 이웃 어른, 엄마에게 혼나고 달려가서 위로받을 수 있는 따뜻한 할머니의 품. 이런 것이다.(140쪽)
자본주의 산업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회의 물질적 부는 풍요로워졌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그늘이 깊다는 지적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늘의 일부로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꼽는 경우는 그렇게 거론되지 않는다. 왜냐면 어린이와 청소년은 당연히 가정과 학교에 포함된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등의 경우에만 사회는 복지라는 카테고리에 넣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저자인 김보민 헝겊원숭이운동본부 이사장의 경험은 그러한 ‘일반적인’ 인식들이 얼마나 현실에 맞지 않는지 증언한다. 도리어 산업화의 진전으로 “마을 공동체와 가족공동체가 거의 해체”되면서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소속감을 주지 못한 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자유주의적인 입장에서 강조되는 어린이 청소년들의 꿈은 어른들의 욕망의 주입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 이런 어른들의 욕망은 아이들의 마음과 정신을 비뚤어지게 한다. 동시에 경제적 빈곤층에서 일어나는 방임은 마을 공동체라는 울타리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영혼을 배회하게 만든다. 일반적인 통념으로 울타리는 자라는 아이들에게 울타리는 억압과 규제를 상징하나 저자의 생각으로 울타리는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여기서 울타리는 바로 헝겊원숭이, ‘좋은 어른’들을 말한다. 아이들은 이 헝겊원숭이들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정서적 안정감과 건강한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잠깐, 헝겊원숭이에 대한 유래는 다음과 같다.
헝겊원숭이는 195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 박사의 애착 실험에서 등장한 것으로 이 실험은 엄마 잃은 새끼 원숭이가 헝겊원숭이와 젖병이 달린 철사 원숭이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젖병이 달려 있는 철사 원숭이 쪽으로 새끼 원숭이가 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새끼 원숭이는 헝겊원숭이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심지어 고개를 내밀어 젖병의 우유를 먹으면서도 헝겊원숭이의 품을 벗어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아이들이 부모를 사랑하는 이유는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실험은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정서적인 교감과 포근한 접촉 즉 따뜻한 관계에 대한 욕구가 영장류에게 얼마나 근원적인지 알려주었다.(261~252쪽)
헝겊원숭이운동은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정서적 교감으로 이루어진 마을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마을 만들기는 추상적으로 접근하면 고작 아이들을 계몽, 훈육하는 제도 교육의 연장으로 고착될 개연성이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신체적으로 자라나는 과정 중인 존재인 것을 감안할 때 그들에게 밥을 먹이는 일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따라서 좋은 어른은 먼저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존재이며 밥을 먹이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정서적 교감도 가능하다는 저자의 경험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밥 먹고 놀자!
―우리나라 돌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비정규직을 철폐해야 한다
산본공고는 경기 남부 전역에서 학생들이 오다 보니 아침을 먹지 못하고 오는 아이들이 대부 분이었다. 저녁에는 아르바이트 하느라 밥을 거르기 일쑤였고 학교에서 먹는 점심밥이 유일한 식사인 아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학교에 오면 책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아침부터 축구를 하고 뛰어놀길래 교장 선생님이 물어봤다고 한다.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아침밥 먹었잖아요!!”(133쪽)
위 대목은 아침밥을 제대로 못 먹던 청소년들이 헝겊원숭이운동본부가 제공한 아침밥을 먹고 변화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자체에서도 교육청에서도 가급적 ‘복지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군포의 헝겊원숭이들이 찾아다니면서 밥을 먹이고, 놀이를 하고, 공부를 가르쳐주는 활동은 아이들의 생활에 놀라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동시에 어른들의 몰이해로 인한 일탈의 함정에 작은 동아줄을 던져줌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절제하고 스스로를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이 활동은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심어주는 ‘불우이웃돕기’가 아니다. 헝겊원숭이운동본부가 보다 안정적으로 밥과 놀이와 공부를 선물해주기 위해 마련된 밥먹고놀자 식당의 운영 원칙과 놀이 개발은 아이들 스스로가 책임진다. 나아가 아이들 자신이 봉사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밥을 먹는 게 자신들의 권리임을 가르침으로써 필요한 것을 요구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을 방종의 상태로 몰아가지 않는다. 권리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감사의 마음과 절제도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 울타리는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절제를 가르치기도 하는 상징이다.
울타리가 되어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지켜준다는 의미와 함께 적절한 한계를 설정해준다는 의미도 갖는다. 아이의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어주고 필요를 채워주는 일은 어쩌면 쉬운 일이다. 아이와 부딪힐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지키고 적절한 한계를 알려주고 직면하게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280쪽)
결국 ‘밥 먹고 놀자’는 말은 같이 밥 먹고, 같이 놀고, 마을이 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전에 먼저 마을 어른들이 헝겊원숭이가 되자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닌 것은 저자의 현실 인식에서 드러난다. 산업 문명의 발달로 인한 가족공동체와 마을 공동체의 해체를 꼽는 것은 여느 활동가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여기서 저자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노동환경이 변화되어야만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돌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비정규직을 철폐해야 한다”.(61쪽) 이것이 저자의 속마음이기도 하면서 최근에 부쩍 회자 되는 돌봄 문제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은 이론이나 추상적인 당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저자가 그동안 직접 몸으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사실’들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돌봄에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생생하게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좋은 모델을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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