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마음을 치유해주는 신화의 심리학 살아갈 용기가 필요한 날, 신화에서 길을 찾다! ‘신화’는 말 그대로 신들의 이야기다. 누군가에겐 교양을 위한 텍스트일 것이며, 누군가에겐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수천 년간 잊히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온 신화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야기들은 인간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었기에 우리 행동과 생각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실마리가 된다. 융의 말대로 “신화는 인간 내면의 방향성이자 근원”인 것이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살다 보면 이렇게 외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한지,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지, 저 사람이 왜 괜히 싫은지, 그때 나는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내 마음인데도 도무지 모르겠고 뒤늦게 후회할 때도 많다. 정신분석학과 분석심리학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소개해온 김서영 교수는 그럴 때 신화를 읽으면 의외의 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신들의 이야기에는 오랫동안 응축된 인간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서 제어하기 힘든 분노를, 아르테미스에게서 자신을 지켜내는 힘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공감과 배려를, 로키에게서 우리 안의 콤플렉스를, 아르주나에게서 우리의 의무를 읽어낸다. 신화들은 하나하나 나의 가장 내밀한 심리와 연결된다. 또한 이 이야기들은 마음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의식과 자아라는 껍질을 깨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격려한다. 저자는 인도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를 읽은 후 융의 이론을 더욱 실천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신분석학 이론을 재해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론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깨달음을 얻으며 마음의 위안과 평온을 찾은 것이다. 그리스, 북유럽, 수메르, 인도를 아우르는 40가지 신화 이야기를 정신분석학과 분석심리학의 시각으로 봄으로써 우리는 마음의 신비를 풀고, 내 안에 존재하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신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신들의 이야기 속에 사람의 마음이 있다 신화가 현대의 삶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문명의 이기도, 현재와 같은 도덕률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가? 책은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에서부터 시작한다. 수메르의 폭군 길가메시가 길을 떠나 모험을 하고 변화를 거쳐 결국 성군으로 칭송받으며 죽게 되는 일대기를 그린 서사시다. 이 신화에서 주목할 점은 대적할 자 없는 힘을 지녔음에도 그 힘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망나니였던 그가, 엔키두라는 친구를 만남으로써 변화한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교감’이라는 경험을 하게 해준 친구를 얻어 함께 길을 나서고, 결국에는 그를 잃는 과정에서 길가메시는 성숙한 인간이 된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가 ‘관계’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28쪽) 길가메시가 우정에 관한 이야기라면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세상은 카오스(혼돈)로부터 시작된다.(64쪽) 이후 대지와 에로스가 생겨나는데, 왜 다른 것들에 앞서 에로스가 생겨나는 것일까?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에로스가 있어야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결합하여 창조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보다 좀 더 현실적인 교훈을 주는 쪽은 죽은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저승으로 간 오르페우스 이야기다. 오르페우스의 연주에 감동한 하데스가 에우리디케를 다시 내어주는데 한 가지 조건이 붙는다. “이승에 이를 때까지 에우리디케를 돌아보지 말 것.” 이러한 이야기가 늘 그렇듯 오르페우스는 결국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저승으로 끌려 들어가고 만다. 사랑이란 이토록 우리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또한 뒤돌아보았을 때 관계가 불행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관계에는 믿음이 필요하며,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스틱스 강에서 불사의 세례를 받았으나 발뒤꿈치에는 강물이 닿지 않아 치명적 약점으로 남은 이, 아킬레우스가 그 예다. 그의 이름이 치명적 약점을 뜻하는 대명사로 사용됨에도 우리는 그를 불세출의 영웅으로 기억한다. 자신의 약점을 알면서도 이를 비관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당당한 영웅으로 살고 죽었기 때문이다.(212쪽)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관건은, 그럼에도 저마다 최선을 다해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사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살다 보면 때로 우회로를 택해야 할 때도 있다. 아킬레우스가 정공법의 영웅이라면 오디세우스는 꾀 많은 전략가 타입이다. 그는 몸을 숙이고 때를 기다릴 줄 안다. 아내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물리칠 때 그는 거지로 변장한 채 온갖 모욕을 견뎌낸다.(219쪽) 이러한 오디세우스를 우리 무의식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무의식은 직설적으로 내뱉는 법이 없다. 언제나 부드럽게 선회하지만 결국은 정곡을 찌르는 어퍼컷을 날리고 만다. 그것이 발현되는 통로가 바로 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의식이 알려주는 길을 찾기 위해 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나아갈 길이 있다 토르와 로키는 마블의 영화 시리즈를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 영화에서도 악역인 로키는 북유럽 신화 최고의 골칫덩어리다. 사실 북유럽 신화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인 그리스 신화에 비해 파괴적이고 종말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애초에 그리스 신화의 세계는 카오스로부터 비롯되는 반면, 북유럽 신화에서는 거인의 시체를 양분 삼아 세상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시작부터 라그나로크라는 종말의 날이 예견되어 있다. 그 최후의 전쟁을 불러오는 장본인이 로키다. 교활하고 속임수에 능한 로키로 인해 완전함을 상징하는 신 발드르가 죽고, 세계의 균형이 깨진다. 그러나 정말 ‘완전한 존재’라는 것이 가능할까? 그러한 존재가 죽을 때 비로소 진짜 현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시각에서 보면 로키는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라기보다는 ‘이미 깨져 있던’ 조화를 알려주는 존재에 가깝다.(246쪽) 이를 인간의 마음에 적용하면 로키는 우리가 꼭꼭 감추려 하는 콤플렉스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콤플렉스로 인해 스스로의 의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콤플렉스를 똑바로 응시하지 않고 묻어두려고만 하면 그것은 오히려 점점 몸집을 키워, 세상을 파멸시킨 로키처럼 종국에는 더 큰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면의 콤플렉스가 자라나지 않도록 그것을 대면해야 한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어떻게 해도 종말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신화가 우리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을 주는 이유는, 그 종말이 반드시 새로운 창조와 생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뒤에 다시 새로운 세계가 자라나는 바탕에는 한 쌍의 남녀가 있다. 혼자 남겨진 것이 아니라 ‘함께’였기에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괴롭고 힘든 우리의 삶에 빛이 되어 주는 것이 바로 ‘관계’다. 북유럽 신화가 새로운 탄생으로 희망을 남겨놓는다면, 힌두 신화는 윤회로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 인간은 살아가며 매 순간 카르마(업)를 쌓는다.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도, 우리가 하는 생각과 말이 모두 카르마로 남는다. 그런데 생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생을 살 수 있다면? 이 생에서 잘못한 일들을 다음 생에서 고치거나 갚을 수 있다. 카르마를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매 순간 나 자신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 순응하기만 해서는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프로이트식으로 이야기하면, 충동에도 문명에도 전적으로 지배당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