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목전에 두고 모르핀을 먹은 후 전달한 벤야민의 마지막 편지, 그 최종 수신자는?
이 책의 저자 가운데 한 명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이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광기어린 유럽 지배 과정에서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려던 그는 결국 스페인 국경 마을인 포르부(Port Bou)에서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는 다음과 같다.
“막다른 상황에서 나는 끝내는 수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피레네 산맥의 한 작은 마을에서 내 삶은 끝나게 되겠지요.
부탁건대 내 친구 아도르노에게 내 생각을 전달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에게 내가 처했던 상황을 설명해 주십시오. 쓰고자 했던 말들을 쓸 시간이 내게는 충분히 남아 있지 않습니다.”(1940년 9월 25일)
사실, 이 편지도 실물이 남아 있지는 않다. 급박한 상황에서 벤야민은 모르핀을 먹은 후에 동행중이었던 헤니 구를란트 부인에게 편지를 전해주었는데, 구를란트 부인은 그것을 바로 읽고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추후 밝힌다. 위 편지는 구를란트 부인이 미국에 도착해 테오도르 W.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3~69)에게 구술한 것을 받아 적어 놓았던 아도르노의 유고 속에서 발견되었다.
독일 현대 지성사 속에서 집단지성을 대표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지식인들 가운데서도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특별한 지적 관계를 맺었다. 위의 마지막 편지에서처럼 벤야민은 막다른 상황에서도 아도르노에게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전하려고 끝까지 노력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둘 사이의 지적 논쟁은 치열해져 가면서 ‘논문’을 방불케 한다
이 책은 아도르노와 벤야민이 1928년부터 1940년까지 주고받은 121통의 편지를 상세한 독일 편집자 주석과 함께 번역한 것이다. 편지가 갖고 있는 속성상 이 두 지식인의 편지에서 우리는 지성사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속살을 포함해 그들이 처했던 실제 상황을 보다 더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책의 구성상 제1부와 제2부에 해당하는 부분들에서 처음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는 때의, 즉 서로 간에 예의를 갖춘 편지에서는 어쩌면 의례적인, 그리고 형식적인 느낌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3부에 접어들면서부터 ― 정확히는 제2부 57번 편지부터이다. 이 편지에서 아도르노는 ‘벤야민 씨’가 아니라 ‘발터’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 둘 사이는 보다 친밀감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하면서 지적인 대화나 서로간의 곤란한 처지를 솔직히 털어놓기 시작한다. 특히 벤야민의 ‘파사젠베르크’ 저술 작업에 대한 아도르노의 기대와 관여는 우리가 흔히 벤야민이 아도르노에게 많은 지적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는 기존의 생각을 새롭게 보게끔 하기도 한다. 아도르노는 지속적으로 ‘파사젠베르크’ 작업이 너무 방대해지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벤야민에게 지적하면서 지속적으로 사유의 고리를 견고한 이론적 틀 내에서 고정시키게끔 하려고 충고한다.
더불어 파리에서의 고단한 집필 과정 속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벤야민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처지를 아도르노에게 하소연하면서 경제적 도움을 지속적으로 요청한다. 이에 아도르노는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를 통해 어떻게든 벤야민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며, 이런 노력의 결실 속에서 그나마 벤야민의 지적 작업은 결실을 맺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내의 구성원이었던 에른스트 블로흐나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에 대해서도 솔직한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사상적으로 브레히트에 가까워지려는 벤야민에 대한 아도르노의 경계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하며, 블로흐나 크라카우어에 대한 혹평하는 대목에서는 독자들로서는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떠한 비밀도 숨기지 않겠다는 듯, 자신들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파국의 20세기를 어떻게 구원해 낼 것인가
히틀러의 파시즘과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가 물질적 진보를 추구하는 가운데 불러들인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었다. 계몽은 진보로 귀결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때,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파국을 가져온 그 물질적 진보의 토대를 재검토하고 방향 전환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끝까지 경주했다. 즉 이 두 천재 이론가들은 세기의 파국을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이론의 세계’를 구출하여 땅에서 멀리 떨어진 저 높은 곳에 올려놓은, ‘딴 세상’으로의 도약을 가능하게 해준 지성의 큰 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