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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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의 수상자 구병모. 그녀의 처녀작이자, 수상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기존 청소년 소설과 달랐다. 장르문학‘적’인 구성과 소재, 독창적인 캐릭터, 냉소적이면서도 빠지면 나올 수 없는 흡입력 있는 문장. 소설의 구성 요소 어느 것 하나 기존 한국 청소년 문학의 고정관념 바깥으로 뛰쳐나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25만의 독자들은 그런 그녀의 작품에 화답했고, 문단은 그런 그녀에게 주목했다. 구병모는 대중과 평단의 기대에 부응하듯 장편소설 『아가미』,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을 잇달아 출간, 히트시키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이제 구병모는 하나의 장르이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부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당신의 시간을 하얗게 연소시킬 이야기의 연쇄 폭발 지금 이야기 질주가 시작된다! 2012년 2월, 구병모의 신작 장편소설 『방주로 오세요』(문학과지성사, 2012)가 출간되었다. 이미 두 권의 장편소설과 한 권의 소설집으로 뜨거운 상상력을 선보이며 독자들을 녹다운시켜버린 그녀답게 이번 소설 역시 집요할 만큼 재밌고, 충격적이다. 그리고 이 재미와 충격은 여러 겹으로 섬세히 세공되어 아이와 어른, 일반과 고급 독자 다른 모두에게 각기 만족과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해 미치겠는 장르적 특성과 이야기가 은유하고 있는 이 사회의 모순들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절묘하게 녹아들어간 이번 소설 『방주로 오세요』의 주인공은 고등학생들이다. 그리고 그 고등학생들은 두 패로 나뉘어 자신들이 속한 학교를 부수려 하고 막으려 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그래서 이 소설은 가정법 ‘If-’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미래가 아닌 현재의 가정법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는 ‘만약, 지름 15제곱미터짜리 운석이 지구에 떨어진다면’, 이라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지각변동, 극심한 기후 변화, 질병과 기아. 수많은 재앙을 그린 영화나 소설 들에서 이미 다룬 소재다. 그래서 작가는 한 가지 단서를 더 붙인다. ‘그리고 만약, 20년 뒤 여전히 ‘지금처럼’ 인간들이 살아간다면.’ 다시 말해, 이 이야기는 재앙을 겪는 인간들의 급박한 ‘현재’나 위기 그리고 (일시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화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사태를 겪어낸 인간들이 다시 일상을 간신히 되찾은 다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것이 가깝든 멀든 미래가 아닌 현재의 가정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20년 전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 것이다. 이제 상상해보자. 만약, 지금이 ‘그때’라면.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들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 나아오리니 그 생명들을 보존하게 하라 ─창세기 6장 20절에서 여기 도시가 있다. 운석이 떨어진 곳에 생긴 높이 1.2km, 넓이 39.5km2 언덕 위에 만들어진 곳이다. 이 도시는 돔으로 둘러싸여 있고, 모든 것은 시스템에 의해 통제된다. 심지어 기후마저. 이곳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초대형 초고속 엘리베이터다.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건물들, 아늑함과 풍요로 가득한 꿈의 도시. 이 도시의 이름은 성서 속 대 재앙의 시대, 생명체의 희망. 방주다. 이곳에는 고등학교가 있다. 학교의 이름은 방주고등학교. 학교의 학생 비율은 방주시에 사는 아이들 80%와 지상에서 들어온 아이들 20%로 되어 있다. 방주시에 사는 아이들은 당연히 이 학교로 들어온다. 그리고 지상의 아이들은 성적과 가정환경, 인품 등을 철저히 검토, 엄선된다. 일단 학교에 입학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받는다. 교복, 급식, 설비, 수업 이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초호화다. 이제 모든 가정이 완성되었다. 이 가정이 실제로 가능할 수 있는가, 여부를 떠나서 우선, 생각해볼 문제는 ‘선택’일 것이다. 방주시와 방주고가 하는 선택은 한정이라는 핑계를 내세운 우열의 이분법적 논리이다. 선택이란 방법론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세계를 둘로 나눈다. 방주시와 방주고등학교는 ‘물론 모두를 선택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까’,라는 전제로 선택을 한다. 선택을 하는 자는 물론 ‘시스템’이다. 시스템에게 선택받은 자들과 선택받지 못한 자들로 이루어진 세계. 이것이 사회이고, 그 간극이 사회 구조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선택받은 자들은 그것을 유지하고 누리고자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사회는 진보해나간다. 그럴 듯한 논리다. 그리고 이 가정의 세계 역시 그러하다. 그렇다면 방주시와 방주고는 낙원인가? 낙원이 맞다. 그 대상을 돈과 명예와 권력을 지닌 자들에 한정한다면. 그것은, 차이인 동시에 차별이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증폭시킨다. 여기는 방주시. 선택된 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학교 폭파할 거야.” ─윤시온 한 소년이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특유의 온화한 성품과 명석한 두뇌로 방주고등학교에 들어왔다. 소년에겐 모두가 부러워할 탄탄대로만이 남았다. 하지만 소년은 눈치를 챈다. 자신은 방주시에 사는 선택받은 자들에게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그들이 자신의 선택을 누리기 위해 저 지상에 사는 사람들이 힘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소년은 결심한다. 이 선택을 거부하기로. 더 나아가, 선택의 주체, 시스템을 거부하기로. 소년의 이름은 윤시온. 방주고 2학년. 안티 방주그룹 프로네시스의 리더. “지상의 아이들 전형은 말이지, 잘 배운 인재들을 자기들의 노예로 만들기 위한 예비학교야. 이 제도가 그대로 이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처음부터 방주시에서 살았던 학생들은 이 학교 졸업과 함께 도시의 주인이 되겠지만, 우리는 도시가 굴러가게 떠받치는 일꾼 이상은 되지 못해. 아무리 개인이 노력해도 주인 자리를 내주지는 않는다고.” 선택의 본질이자 함정은 기준이다. 선별의 기준은 무엇인가. 시스템은 무엇을 근거로, 사람들을 걸러내는가. 돈, 명성, 가문, 학업 성취도. 과연 이런 것이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이것이 옳은가. 주인공 중 하나인 ‘윤시온’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선택이라는 비인간적인 행위로, 우리 모두가 불행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윤시온은 이 시스템에 항거하기로 한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하지만 개인은 시스템에 대항할 수 없다. 시스템은 너무 거대한 데다, 실체도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시스템인지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윤시온은 “가장 괜찮은 답에 가까워지는 행위”를 하려고 한다. 그것이 아무리 무모하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그것은 학교를 폭파하는 것. “학교 하나 날려버린다고 바뀌는 일이 없다는 걸 분명 알면서 하는 짓이거든. 그 이유를 좀더 들여다보고 싶어.” ─이마노 여기 다른 한 소년이 있다. 이란성 쌍둥이 중 하나인 소년은 방주시의 시민이 되기 위해 방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니다. 관광차 방주시에 왔었던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났던 한 소녀를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소년은 그 소녀가 자신의 운명일 거라 믿고 있다. 지상의 1%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것도 그녀 덕분일 것이다. 희망에 찬 학기 초 소년은 학생회장 일락에게 불려간다. 그리고 협박을 받는다. 같이 입학한 쌍둥이 누이를 지키려면, 학교에 무언가 해코지를 하려는 게 분명한 윤시온의 곁에서 프락치 노릇을 하라는 요구이다. 소년은 이를 받아들인다. 자신의 누이를 지키기 위해서, 이 학교 어딘가에 있을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아니 자신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