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Description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 1889 –1966)는 역사철학자, 문화비평가, 영화이론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일간지 편집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친 인물이다. 그러나 동시대에 활동하며 근대성을 탐구한 발터 벤야민이나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국내에서 알려진 명성에 비해 그의 저술은 널리 읽히지 못했고, 영화나 매체 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 언급될 뿐이었다. 그의 대표작인 『영화 이론(Theory of Film)』이나 문화비평서 『대중의 장식(Das Ornament der Masse)』도 아직 소개되지 않았고, 그의 사후에 나온 『역사: 끝에서 두번째 세계(History: The Last Things Before the Last)』만이 유일하게 번역되어 있다. 이번에 출간된 『과거의 문턱: 사진에 관한 에세이(The Past’s Threshold: Essays on Photography)』은 크라카우어가 사진에 관해 쓴 글 다섯 편을 모은 선집으로, 이십여 년에 걸쳐 지속되거나 변화하는 생각의 궤적을 따라간다. 크라카우어에게 사진은 대중문화의 중심이었고 또 그 문화를 널리 알리는 주역이었기 때문에 그로서는 필히 분석해야 하는 매체였다. 또한 사진은 일생에 걸친 학문 연구의 길목마다 그의 사유를 견인하는 역할을 한 까닭에 크라카우어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상징적 매체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그가 독일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차이퉁』 문화면 편집자로 일하면서 쓴 글에서부터 나치 정권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 쓴 글까지 담겨 있어 그가 매체를 대하는 태도나 관점이 점차 세밀해지고 다층화되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또한 엮은이들이 쓴 매체이론가로서의 크라카우어를 조명한 글, 사진 자료와 함께 일대기를 다룬 글이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 준다. 역사의 운명을 가르는 사진의 가능성 당시 사진이라는 매체는 무한한 자기복제를 통해 정보전달의 언어를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완전히 바꾸었다. 사진이 점차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자, 크라카우어는 이 새로운 현상을 근대성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는다. 화보신문에 실린 사진들은 여행에서 찍은 사진부터 스포츠 경기 중인 선수의 사진, 국내외 유명인의 화보사진이나 초상사진, 또는 정치인들의 공적인 사진까지 다양하다. 도처에서 쇄도하는 이미지는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될까? 1927년 『프랑크푸르터 차이퉁』 1면에 발표한 「사진(Die Photographie)」은 사진 이미지와 기억 이미지의 차이, 사진이 사람들에게 미친 인식의 변화, 그리고 사진과 역사의 관계 등을 폭넓게 아우르며 모종의 해법을 탐색한다. 크라카우어는 이 글의 첫머리에서 두 장의 사진을 병치한다. 하나는 스물네 살 영화스타의 화보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찍은 지 육십 년이나 된 할머니의 젊었을 적 초상사진이다. 〔신문 지면의 한계 때문인지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해당 사진은 수록되지 않고 글로만 묘사됐다. 대신 엮은이 필리프 데스푸아의 글에 이와 유사한 이미지로 짐작되는 사진(서문의 도판 1–3)이 실렸다.〕 같은 나이의 젊은이지만, 이 사진의 감상자들은 화보사진에서는 생기있는 모습을 포착하는 반면, 오래된 사진에서는 삶의 덧없음, “흘러간 시간의 순간, 돌아오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시간의 순간”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화보사진 속의 영화스타나 옛날 사진 속 할머니나 육십 년이 지난다면, 그저 “구식 패션의 디테일들”로 해체되는 운명에 처한다. 즉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사라지고, 우스꽝스럽고 신기한 그 시절의 고고학적 마네킹이 되는 것이다. 크라카우어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개인 또는 세계의 역사를 구제하기 위해, 사진 이미지에 기억 이미지를 맞세운다. 사진이 외적 대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면, 기억은 억압, 왜곡, 강조의 과정을 거쳐 의미가 있는 것을 선별한다. 그래서 사진의 입장에서 “기억 이미지들은 파편”으로 보이고 “기억 이미지의 입장에서 사진은 불필요한 잉여들이 뒤섞여 있는 혼합물”로 보이는 것이다. 이때 사진은 유사성의 원칙에 따라 사진 속 원본(Originals), 달리 말해 개인의 삶에 접근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진 이미지가 포착하는 것은 원본의 외면성, ‘내용 없음’일 뿐이다. 기억 이미지는 그와 반대로 작동한다. 한편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사물과 유사한 이미지를 소유함으로써 세계를 인식했다고 느끼지만, 정작 사진의 속성인 ‘내용 없음’ 탓에 역설적으로 세계에 대해 더 무지한 상태가 된다. “몰아치는 이미지들의 폭풍은 남아 있는 의식의 결정적 특징마저 없앨 만큼 위협적이다. (…) 무수히 복제된 원본에 어울리는 격언은 ‘함께 붙들려 함께 죽는다’이다. (…) 독자는 화보신문에서 세계를 보지만, 화보신문은 독자가 그 세계를 지각하는 걸 방해한다.” —「사진」 중에서 사진은 무한히 복제되며 사람들의 인식 체계를 바꾸고 기어이 ‘기억의 댐’을 무너뜨린다는 것이 크라카우어의 분석이다. 세계의 화려하고 순간적인 파편들 속에서 죽음을 망각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크라카우어는 한 인간의 역사를 하나의 선으로 압축한 ‘모노그램’을 불러온다. 모노그램은 그의 역사철학의 중심 개념 중 하나로, 한 인물 또는 사건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형상을 말하며, ‘기억 이미지’, ‘원본’, ‘진리내용’ 등의 계열에 속한다. 크라카우어는 사진 이미지와 기억 이미지의 차이를 분석하는 데에서 진일보하여 사진이라는 매체가 갖는 고유한 가능성을 전망한다. 사진이 오래되며 기억 이미지와의 관계가 끊어지면, 그 안의 요소들은 그들 간에 익숙했던 일체의 관계를 지양하는 임시적인 상태가 된다. 그래서 사진들은 종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자연의 올바른 질서”에 아랑곳하지 않고 파편적인 이미지들을 새롭게 배열하고 또 낯선 형성물로 연결하며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사진은 과거의 문턱에 머무는 현실의 파편일 뿐이며, 그것을 다루는 주체의 판단에 따라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가릴 수도 있고 새로운 세계를 조합(montage)해내는 매체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진의 가능성이야말로 “사진으로의 전환은 역사가 모든 판돈을 건 도박 행위”라는 문장이 의미하는 것이다. 사진 매체의 고유한 특성 「사진」에서 다룬 주제들은 나머지 세 편의 글에서도 변주되어 나타난다. 다만 전자에서 매체의 의미와 그 존재방식에 더 주목했다면, 후자에서는 매체의 발전 과정이나 그 고유의 특성으로 눈길을 돌린다. 「어제의 경계에서(An der Grenze des Gestern)」는 크라카우어가 1932년 베를린에서 열린 상설전 「영화와 사진」을 방문한 뒤, 전시장을 거닐며 느꼈던 인상들을 스케치하듯 쓴 글이다. 이 전시는 사진의 시원기 형태인 니엡스의 엘리오그라피에서 시작하여 정지된 이미지를 움직이는 이미지로 전환하는 비오스코프와 같은 영화 장치들, 그리고 그밖의 영화의 발전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크라카우어는 이 글에서 사진이나 영화의 기술 발전의 속도와 그것에 저항하는 ‘역사’의 관계, 그리고 그 매체들의 본래 의미에 주목한다. 「사진 속 베를린(Photographiertes Berlin)」에서 크라카우어는 사진가 알베르트 페너만의 사진들이 “기억을 가로지르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며 상찬한다. 이는 사람들이 지나쳤던 일상 속 풍경, 곧 사람들과 함께했던 가깝고 익숙한 일상의 이면을 사진이 속속들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사진의 특성은 크라카우어가 이후 「사진적 접근(The Photographic Approach)」에서 그 매체의 본래 특성으로 지목하는 것이기도 하다. 「초상사진에 대한 논평(Anmerkung uber Portrat-Photographie)」은 크라카우어가 베를린을 떠나기 전에 쓴 사진에 관한 마지막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수동적인 기록 장치”로서의 사진을 강조하는데, 기존의 초상화와 비슷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