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압색 현장: 사상 최초의 ‘압수수색’ 르포르타주
2023년 9월 14일, 길고도 긴 이름의 서울중앙지검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 소속 검사와 수사관 30여 명이 동시다발로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뉴스타파 뉴스룸과 한상진, 봉지욱 기자 집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앞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무려 1년 6개월 전 2022년 3월 6일 뉴스타파가 보도한 윤석열 대선후보 검증 기사를 겨냥해 “사형에 처할 국가반역죄”라는 극언을 내뱉었다. 윤석열 대통령실은 이 뉴스타파 보도를 “희대의 대선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이에 화답하듯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검사 10여 명을 투입해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약 3개월 뒤인 2023년 12월 6일 검찰은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집도 덮쳤다. 그리고 2024년 9월 24일 이 사건 첫 재판이 시작됐다. 당초 ‘국가반역죄'이자 ‘희대의 대선 정치공작’이던 이 사건은 1년 뒤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으로 쪼그라들었다.
<도서출판 뉴스타파>가 새로 낸 책 <압수수색>은 정치검찰의 뉴스타파 압수수색과, 포렌식, 출석조사, 공판 전 증인신문, 기소, 공판준비기일, 공소장 변경, 첫 재판 등 지난 1년간 숨가쁘게 펼쳐진 윤석열 검찰의 침탈과 뉴스타파의 응전을 스릴러 소설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공동저자인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와 한상진, 봉지욱 기자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휴대폰을 뺏기고 저장 정보도 털렸다. 출국이 금지되고 통화내역도 사찰당했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죄목으로 끝내 기소돼 법정에 섰다. 하지만 꿀릴 건 없었다. <압수수색>은 2023년 9월부터 지금까지 1년간 이어진 민주화 이후 최악의 언론탄압 과정에서 당사자이자 목격자인 베테랑 탐사보도 전문기자 3명이 꾹꾹 눌러쓴 사상최초의 압수수색 르포르타주다. 검찰 압수수색과 기소는 역설적으로 이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취재 영역을 제공했다.
일단 기소가 되고 보니 “기소가 되면 인생이 절단난다”는 윤석열 검사의 말이 확 와닿는다. 앞으로 우리의 인생은 과연 어떻게 절단날 것인가. 검찰과 법원을 들락거리며 이런 실존적 고민에 빠지다가, 한편으론 기자로서 큰 기회를 잡았다는 짜릿함을 느낀다. 탐사보도 기자는 가끔 잠입 취재나 위장 취재, ‘스팅 오퍼레이션(sting operation)’을 한다. 정상 취재 방법으로 밝히기 힘든 일을 알아내기 위한 특수 취재 기법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치검찰의 압수수색과 기소는 기자인 우리에게 하늘이 내린 복이나 마찬가지다. -<압수수색> 프롤로그 중
검찰의 노림수=뉴스타파 죽이기+비판언론 입틀막+이재명 죽이기
세 저자는 윤석열 검찰의 뉴스타파 침탈에 3가지 목적이 있다고 본다. 첫째 뉴스타파 죽이기, 둘째 이를 통한 비판언론, 특히 공영방송 입틀막과 위축 효과(chilling effect), 셋째 이재명 죽이기다. 실제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 첫 공소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 이름은 엉뚱하게 이재명이다. 136차례나 나온다.
모두 8개 장과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구성한 <압수수색>은 검찰의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이 목적으로 진행됐음을 하나씩 폭로해낸다.
1장 ‘공모’는 정치검찰과 대통령실, 국민의힘,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극우보수 언론이 뉴스타파의 김만배 음성파일 보도를 억지 꼬투리 잡아 일사불란하게 뉴스타파 사냥을 공모하고 공격한 과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2장 ‘침탈'은 뉴스타파 뉴스룸과 한상진 봉지욱 기자, 김용진 대표 집 압수수색 현장을 세 저자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려낸다. 사상 최초의 검찰 동시다발 압수수색 현장 르포르타주다. 독자는 마치 자신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듯한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6장 ‘중대범죄자'는 압수수색 이후 세 저자가 출국금지 대상에 오르고, 통신사찰까지 당한 과정을 역시 1인칭 시점으로 다룬다. 탐사보도 전문 기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검찰이 지목한 중대범죄자가 돼 고군분투하는 상황은 이 시대의 성격을 가장 적확하게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다.
‘디지털 신공안(新公安)’시대에 살아남기
대한민국은 압색공화국이다. 압수수색으로 해가 뜨고, 포렌식으로 날이 저문다. 2023년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압수수색검증영장은 46만 건에 이른다. 법원이 이 가운데 99%를 발부한다. 법원은 ‘압수영장 자판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3장 ‘압색공화국'은 압수수색영장 관련 통계 분석으로 우리나라 검경이 압수수색영장을 얼마나 남발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나아가 압수수색영장이 검찰권력의 원천이자 화수분임을 들춘다.
5장 ‘디지털신공안'은 수사관의 미세한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의 좁은 검찰 포렌식방에서 벌어지는 파일 빼앗기와 지키기 공방을 보여준다. 또 검찰이 전자정보 불법 무단 획득과 점유로 축적한 소위 ‘디지털 캐비닛’,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신공안 체제’와 그것이 초래한 디스토피아의 실체를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흥미롭게 폭로한다.
당해본 자가 쓴 ‘압수수색 대응 실전 매뉴얼’
압수수색 현장은 불법이 판을 친다. 도서출판 뉴스타파의 새 책 <압수수색>은 세 저자가 뉴스룸과 자택 현장에서 직접 당한 불법 사례를 낱낱이 폭로하고, 수사기관의 불법 압수수색 대처법을 상세하게 제시한다.
책 뒤에 배치한 ‘특별부록1. 압수수색 대응 매뉴얼’은 모두 20개 항목의 Q&A로 구성해 압수수색 관련 궁금증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한 해 압수수색영장 50만 건 시대다. 전체 인구 100명 중 1명 이상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다. 압수수색은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휴대폰 압수수색은 영혼이 털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압수수색>에 수록한 대응 매뉴얼은 수사기관의 불법 압색에서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비급’이다.
<압수수색> 공동 저자 3명은 이렇게 말한다.
한 번 더 들어오면 그때는 잘 할 수 있을 텐데. 이 괴랄한 시대에 압색 한 번 안 당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뇌피셜’ 공소장과 ‘빨간펜’ 재판부: 검찰 공소장 신구 대조본 수록
현직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검찰이 언론사 사무실과 기자 집을 압수수색하고 결국 기소한 사건은 1987년 사회 민주화 이후 한국 언론 자유 역사에 가장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검찰이 언론 기사를 두고 10명이 넘는 최정예 검사로 특별수사팀까지 꾸려서 1년 가까이 수사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가 저자 세 명을 기소하면서 법원에 낸 공소장만 71페이지다. 재판부가 이게 제대로 된 공소장인지 의문이 간다는 지적을 잇달아 하자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했다. 그래도 56쪽이다.
<압수수색>은 특별부록2에서 검찰이 첫 공소장에서 어떤 대목을 삭제했는지 알 수 있도록 신구 공소장 대조본을 수록했다.
4장 ‘망상’에서는 검찰이 뇌피셜로 가득한 공소장을 작성하기 전 단계, 즉 공소장 잉태 단계에서의 사고를 해부한다. 검찰이 압수수색영장 ‘범죄사실’에 기재한 텍스트를 하나하나 뜯어서 이들이 수사 초기부터 선입견과 고정관념과 정치검찰 특유의 비뚤어진 의도에 얼마나 사로잡혀 있었는가를 폭로한다.
7장 ‘출석’과 8장 ‘기소’에서는 유난히 무덥던 2024년 여름, 세 저자가 검찰청과 법원에 불려다니며 검찰의 뇌피셜 수사와 기소에 맞선 고난의 시간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때로는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서 “성실하게 조사받지 않겠다”며 검찰 권력에의 자발적 순응을 거부하고, 때로는 정치검찰의 뻔한 의도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보도를 통해서도 검찰 수사의 모순과 비열한 언론플레이를 주저없이 지적했다.
희대의 재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