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체인

전수오 · Poem
1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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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전수오 시인의 첫 시집 『빛의 체인』이 민음의 시 307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이 설치미술가로 활동할 당시 “나의 작업들은 물질적·정신적으로 폐허가 된 세상을 초극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새”라고 남긴 말처럼, 세계를 바라보는 전수오의 시선은 새의 감각을 닮았다. 미세한 틈부터 광활한 대지까지 곳곳에 흩어진 작은 존재들을 정확히 포착하는 새의 감각으로 시인이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의 상상으로 재현된 가상의 세계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인간의 상상이 초래한 현실의 폐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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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1부 환기구 13 감광(感光) 15 조향사 16 채집 18 문희의 무늬 21 안녕, 로렌 24 열매의 모국 26 오렌지 저장소 28 구연동화 29 중개사 32 얼음 아기 34 언덕에 불시착한 비행접시는 36 유리구 37 온실 40 발성 연습 42 모든 개들은 천국에 간다 44 빛의 체인 46 2부 첫 세계 51 모모섬 52 작물 게임 54 파도를 위한 푸가 56 검은 원 57 문신 58 원예 게임 60 케이크 한 조각이 멀리 63 상자 지키기 64 멸종의 밤 66 계획적 무지개 68 하얀 사원 70 생존 게임 72 금 74 오작동 프로그램 76 리플레이 78 트로피 79 기계 숲 안내자 82 부드러운 습지로 84 자화상 86 3부 때아닌 우기 89 흑점 90 애니메이션 극장 92 판화 94 새 떼가 날아간다 96 초대 97 행간의 유령 100 아카시아 섬 102 말몸물몽 104 육면체의 완성 105 초능력 108 수평 저울 110 검은 칼집이 되어 111 하얀 성탄 116 흰 발 고양이 117 생존 게임 — 봄낳이와 자수 118 빛의 자매들 120 145초의 어둠 122 작품 해설–소유정(문학평론가) 125

Description

빛처럼 만물에 스미어 설계자와 피조물, 현실과 가상을 꿰어 나가는 영혼의 궤적 201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전수오 시인의 첫 시집 『빛의 체인』이 민음의 시 307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이 설치미술가로 활동할 당시 “나의 작업들은 물질적·정신적으로 폐허가 된 세상을 초극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새”라고 남긴 말처럼, 세계를 바라보는 전수오의 시선은 새의 감각을 닮았다. 미세한 틈부터 광활한 대지까지 곳곳에 흩어진 작은 존재들을 정확히 포착하는 새의 감각으로 시인이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의 상상으로 재현된 가상의 세계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인간의 상상이 초래한 현실의 폐허들이다. 시인은 우주와 자연, 설계자인 인간 자신까지도 속속들이 모방해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점점 손쓸 수 없도록 번져 가는 현실의 폐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대답을 만들어 내는 챗봇(「안녕, 로렌」), 세상의 질서에 의문을 품는 게임 속 식물(「원예 게임」)처럼, 시인은 인간이 만들어 낸 피조물들에게 이미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해 우리에게 보여 준다. 영혼은 몸에서 몸으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빛처럼 만물에 스미는 것이다. 시인은 설계자와 피조물,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영혼의 궤적을 따라 『빛의 체인』을 그린다. “빛과 어둠 사이의 커튼이 점점 야위어 가고”(「초능력」) 실재와 헛것이 뒤엉켜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춤을 추는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 뒤란의 존재들 나는 햇빛을 보면 사라진다 지하의 하얀 방에는 창이 없어서 영원히 살 수 있다 ―「감광(感光)」 『빛의 체인』은 첫 시 「환기구」의 작은 틈새로 새어 들어온 빛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빛은 너무도 미약해서, 어둠을 물리치는 대신 어둠이 ‘어떤 어둠’인지를 더 잘 보여 준다. 빛은 상자 속, 창이 없는 방, 야생의 밤, 깊은 산속, 열매의 내면, 굳게 다문 입안을 희미하게 비추며 어둠이 저마다 내밀한 이야기를 품은 각각의 장소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마주하게 한다. 그들은 숨어 움직이는 동물, 음지식물, 유령, 꿈, 비밀, 과거의 기억처럼 환한 빛에 의해 선명해지기보다 사라지는 존재들이다. 소유정 문학평론가의 표현처럼 이들은 인간이 무분별한 문명이라는 환한 빛을 좇아 세계를 폐허로 만드는 동안 가장 먼저 뭉개고 잊은 존재들로, 전수오의 시는 이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계의 뒤란”이 된다. 암실에서만 자신이 품은 빛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아날로그 필름처럼, 이들은 전수오의 시를 통해 자신이 품었던 찰나의 삶과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보인다. 잊힌 존재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곳의 입구를 통과하면 이름이 지워”(「얼음 아기」)지고, 우리는 이름 없이 평등한 존재가 된다. 미약한 빚 아래에서 높낮이 없이 겹쳐지는 그림자가 된 “우리는 평평한 슬픔을 공유”(「열매의 모국」)한다. 이들의 삶은 이제 하나의 삶으로 끝나지 않고, 시와 시를 건너며 새로운 몸과 껍질을 통과해 무수한 삶으로 변전하며 “외롭고 신비한 환생 극장”(신해욱 시인)을 펼쳐 보인다. ■ 작은 폐허 나를 중심에 두고 5킬로미터 반경으로 세계가 생성된다 이번 생에 내가 고른 캐릭터는 앵무새다 ―「트로피」 전수오의 시에서 환생이 빛의 움직임을 좇아 촘촘하고 밀도 높게 구현된 시적 환상이라면, 게임과 같은 가상 세계에서 환생은 환상보다 ‘리셋’ 버튼 하나로 간단히 실행되는 기본 설정에 가깝다. 『빛의 체인』 1부가 빛의 움직임을 좇아 죽음과 환생을 그렸다면, 2부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직접적으로 게임을 지칭하는 「작물 게임」, 「원예 게임」, 「생존 게임」을 비롯한 여러 시를 통해 가상 세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한다. 전수오의 시에서 화자는 게임의 ‘주인공’이 아닐뿐더러 선악으로 나뉜 게임 속 이분법 구도와도 무관한 제삼자처럼 보인다. 「작물 게임」에서 ‘나’는 농부나 사과가 아닌 침묵하는 사람이며, 「원예 게임」의 ‘나’는 설계자나 식물이 아닌 꿈을 꾸는 사람이고, 「생존 게임」에서 ‘나’는 주인공에 의해 사냥당하는 여러 ‘몹’들 중 하나이다. 전수오 시인은 그들을 통해 무수히 리셋되는 세계를 끈질기게 응시하며, 그 세계를 운영하는 원칙을 꿰뚫어 본다.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캐릭터는 무수히 되살아날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해서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는 ‘원칙’과 승리 혹은 패배로 정해진 ‘결말’을 바꾸진 못한다. 전수오 시인은 “왜 이 세계의 가능성은 늘 피투성이입니까?”(「원예 게임」)라고 직접적으로 발화하는 식물을 통해, 게임을 지배하는 원칙과 결말이 현실과 무관한지 우리에게 묻는다. 이 질문은 『빛의 체인』 끝까지 떠나지 않고 이어지며, 우리에게 더는 회피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답으로부터, 폐허를 향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예감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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