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마주하는 법에 관한 흥미롭고 논쟁적인 주장을 펼친다.”
-조문영,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국과 중국의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는
‘지리적 중간물’ 김유익이 통찰한
반대하고 싶은 중국 연대하고 싶은 중국
혐중 정서가 만연한 가운데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으며 많은 전문가가 수교 이후 단연 최악이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 각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디커플링(관계 단절)’이 아닌 ‘디리스킹(위험 완화)’ 방향으로 설정하는 추세지만 한국만은 글로벌 흐름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그 영향으로 외교, 경제, 국방,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우리에게 한중 관계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인사이트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의 저자인 김유익은 중국에서 서로 다른 국적,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 주는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이다. 서울시립대학교 하남석 교수는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를 이어 주는 ‘역사적 중간물’ 루쉰처럼 김유익 또한 중국과 한국을 이어 주는 ‘지리적 중간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매개자가 아니다. 중국의 문제의식으로 한국을 들여다보고, 다시 한국의 문제의식으로 중국을 들여다보며 두 나라가 지닌 여러 문제와 모순을 성찰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결 전문가’답게 중국에서 일상을 살면서, 동시에 한국과 부단히 접속하면서 마주한 인물, 매체, 사건을 다채롭게 엮고 인문학적 견문을 결합해 혐중을 통찰하고 청년과 세대, 대중문화, 농촌과 도시화, 법과 통치, 홍콩 시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다양한 쟁점을 다루었다.(조문영, 연세대학교 교수) 또 애국주의와 정치적 ‘중화 민족 만들기’, 허무한 강국몽, 검열과 탄압에 몰두하며 폐쇄적으로 변해 가는 중국 사회와 역사적 맥락, 그 속에서 중국 사람들이 가지는 복잡한 감정을 예민하게 포착했다.(박민희, 《한겨레》 논설위원) 추상적이고 왜곡된 거대 담론을 넘어 구체적인 중국과 그 속의 ‘생활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저자의 코디네이팅은 중국과 중국인을 보다 제대로 알고 그들과의 공존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지역과 생활 세계를 통해 바라본 조금은 다른 중국
다국적 기업의 금융 IT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생태 교육과 생활 공동체 등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 활동가로 커리어를 전환할 때만 해도 저자 또한 중국에 대한 오해와 편견, 팔이 안으로 굽는 ‘한민족 중심주의’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2015년 무렵 중국의 농촌과 교외 지역에서 평범한 중국인들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 ‘생활 세계’를 경험한 후에야 우리가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중국과 중국인을 잘못 ‘읽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경험한 사례 중 하나가 동북공정 문제다. 그는 국내 주간지에 기고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상하이의 한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친구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동북공정을 단순히 지역 개발 프로젝트로 착각할 정도로 이슈 자체에 대해 무지했다. 또 중국의 주류 역사학계나 역사 교사들도 옆 나라의 역사일 뿐인 고구려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를 거라고 덧붙였다.(10쪽) 중국 남방의 주요 명절 중 하나인 단오가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중국인들은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이어서 곤경에 처한 타인을 잘 돕지 않는다’거나 ‘믿을 수 없고 속을 알 수 없는 음험한 존재’라는 선입견은 또 어떠한가? 이런 이미지는 길을 가다가 쓰러진 노인을 도와줬더니 너 때문에 다쳤다고 억지를 부리며 배상을 요구했다는 일종의 자해 공갈 사건(일명 ‘펑츠 사건’) 같은 가십성 일화 때문에 형성되었다.(154쪽) 하지만 중국인의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윤리관은 한국인의 생각처럼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사회와 공공에 대한 윤리적 감각이 다를 뿐이다. 중국은 한국과 다른 역사적 경로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보편 가치’에 대한 관점이 한국과 다소 차이가 있다. 한국인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중국에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18쪽)
중국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의 확산에는 한중 간 문화 교류 부족도 한몫했다. 한류와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흥행한 가운데 중국의 대중문화 수준은 여전히 낮게 평가하며 중국을 표절의 왕국, 지적 재산권과 저작권 개념이 없는 무법 지대, 프로파간다 콘텐츠의 천국으로 여겼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자국 대중문화를 보호하며 전략적으로 육성해 온 결과 다양한 장르에 걸쳐 웰메이드 작품이 선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SF다. 중국의 SF는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연이어 수상하는 등 국제적 위상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52쪽) 그 외에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웹툰, 웹소설, 게임 등 대중문화 콘텐츠의 창의성과 완성도는 글로벌 수준이며 이를 소화할 수 있는 내수 시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거대하고 탄탄하다.
물론 우리가 여태 알지 못했던 중국의 새로운 면모에는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동, 언론, 학문의 자유가 제한되고 인권 의식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지만 소수 민족을 차별하는 이중적 행태, 중국식 유교 관료주의의 한계, 대중문화에 대한 검열과 규제, 제로 코비드 정책의 명과 암, 가부장적 악습과 전제 통치를 위한 악법 등에 대해 저자는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렇다면 중국에 대한 이런 무관심과 몰이해가 혐중과 반중의 원인일까? 물론 충분한 배경이기는 하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한중 국민들의 집단적 잠재의식에서 비롯된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혐중의 배경에는 ‘르상티망 플러스’가 있다
한국은 1992년 대중 수교 이후 줄곧 ‘가난하고 낙후한’ 중국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성장한 중국의 문화적 역량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한령으로 인한 수출, 관광, 서비스업의 침체는 한국 서민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대만과 홍콩 문제, 신장과 티베트의 인권 문제, 미세먼지와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보통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키운 반감은 중국이 자초한 것도 있고, 중국을 악마화해야 하는 미국이나 이에 동조하는 한국의 우파 세력이 과도하게 부추긴 점도 없지 않다.(175쪽)
저자는 혐중과 반중의 배경에 새로운 형태의 ‘르상티망(ressentiment)’이 있다고 말한다. 르상티망은 숙명적으로 도저히 능가할 수 없는 상대에게 품은 원한을 일컫는다. 그래서 니체는 ‘주인에 대한 노예의 감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흔히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을 고래 사이에 끼인 새우에 비유하곤 한다. 이를 외줄 타기와 같은 처세로 이용하자는 부류도 있지만, 조선의 엘리트들은 중화 중심주의를 내면화하며 문명의 변방에 위치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르상티망으로 해석된다. 더 나아가 로마 제국에 죽음으로 저항한 스파르타쿠스나 중국에 대한 대만과 베트남의 감정처럼 한국 또한 “아주 오래되고 찐득한” 정서, 패권 혹은 ‘추상적인 거악’에 대한 반역과 저항 정신을 가졌다고 보는데 저자는 이를 ‘르상티망 플러스’라고 명명한다.(179쪽)
《삼국지》 《영웅문》 등을 보고 자라면서 우아하고 장엄한 중국 문명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을 가졌던 현재의 중장년 기성세대와 달리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MZ세대는 동년배 중국인 유학생이나 인터넷 게임 상대를 통해 중국을 접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조별 과제 실패나 비매너 게임 플레이 등 중국인 때문에 현실적인 손해를 입으면서 그들에 대한 비호감을 키웠다. 중국의 제조업과 문화 산업 역량이 높아지면서 미래의 경쟁자가 될 것이라는 무의식적 두려움,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적 갈라치기 전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