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1. 1, 2차 대전에서 한국전쟁까지 현대 전쟁의 기억문화를 탐구하다
― 《기억과 전쟁:미화와 추모 사이에서》 출간의 의미
우리에게 기념(commemoration) 문화에 대한 연구는 다소 생소하다. 최근에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기억 담론’에서 그 의미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기념문화는 근대 국가의 형성기에서부터 민족·국가·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제가 되어왔기에, 기념문화에 대한 연구는 박물관, 기념관, 상징물, 상징 체제 등 민족·국가·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기제를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적 방법론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기념 문화 가운데, 특히 전쟁기념 문화는 민족·국가·정체성이 구성되는 과정의 복합적인 배제와 통합의 기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전쟁기념 문화는 식민지와 제국의 관계, 한 국가 내의 다양한 정체성 그룹 간의 관계를 반영하기도 한다.
전진성·이재원이 엮은 《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는 전쟁기념과 기억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나선다. 우리의 경우 광주민주화운동이나 4·3 항쟁 등 이전에는 ‘항쟁’으로 기념되지 못했던 사안들이 새롭게 기념되기 시작했고, 국가와 통치체제로부터 ‘사태’나 반란으로 규정되던 역사적 사건들이 새롭게 ‘기념’의 장소로 이전하면서, 어떻게 하면 기존의 공식적인 기념문화와는 다른 새로운 기념 문화를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기념사업들의 등장은 지금까지 국가 폭력에 의해 배제되고, 특정 집단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역사들이 국가의 공식 기념문화 속으로 유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기념 공간의 대두는 기념문화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론적 고민을 야기하는 것이다.
서구의 경우 유물 반환 논쟁과 영토 분쟁이라는 상징적 지점들은 ‘기념’이라는 문제를 고민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 기념을 둘러싼 헤게모니(정치적, 담론적)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과거와 식민지/제국의 경험에 대한 성찰과 재인식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활성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전쟁기념 문화에 대한 연구는 민족 감정이나 국가 간의 내셔널 히스토리의 경계를 넘어서서 ‘역사’, ‘유물’, ‘기억’, ‘기념’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론적이고 성찰적인 문제제기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는 학문적으로 기념문화 연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기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기념’을 둘러싼 담론 지형을 새롭게 주조하여 민족 감정과 ‘상처’를 넘어서 합리적인 담론을 구성하고자 출간되었다.
2. 내러티브 기억과 트라우마의 기억
― 이 책의 특징 1
19세기 이래의 근대 국민국가에서 전쟁기념은 국민을 분열에서 통합으로 이끄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해왔다. 공적인 전쟁 담론은 희생을 미화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총력전을 겪은 20세기에도 이러한 행태가 유지되었는지의 여부는 다양한 공적 담론의 영역과 매체들을 두루 살피지 않고는 쉽게 결론지을 수 없다.
《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는 역사학 저술과 역사적 정치담론이 행해지는 언론매체, 그리고 역사교과서 등을 소재로 삼아, 공적인 전쟁담론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세분화된 분석을 시작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사안은 20세기 특유의 총력전이 낳은 ‘트라우마(trauma)’을 치유하고 이를 새로운 정체성 형성의 전기(轉機)로 삼기 위해 어떠한 공적인 ‘내러티브(narrative)’가 창출되었으며 그것이 국민들에게 실제로 어떠한 효과를 끼쳤는가 하는 점이다.
《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내러티브들의 구성과 성격, 효과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세기에도 전쟁기념이 여전히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위해 도구화되었는지, 아니면 보다 성찰적인 의식을 보여주고 있는지 그리고 공적인 전쟁기념의 성격과 방식이 국가별, 지역별로 어떤 차이를 갖고 있었는지를 규명하고 있다.
《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는 20세기 전쟁기념의 문화적 매체를 점검하고 있다. 현대의 전쟁기념문화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문화적 매체가 나타나는 점에 주목한다. 섬세한 문화적 매체를 동원함으로써,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체험의 의미를 어떻게든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문화적 매체를 통한 전쟁기념은 어떠한 고유의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는지, 여기에서는 과연 희생의 의미에 대해 반문하고 깊은 애도와 성찰을 유도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희생을 미화하고 도구화하는 구태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는 20세기 전쟁기념 문화 전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대안적 기념 문화를 찾고 있다. 이데올로기화된 모습이 완연한 사례와 기념 문화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대비시켜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총괄적인 이론 틀을 만들려고 한다.
기억 이론은 종래의 ‘역사’가 자민족중심주의, 엘리트주의, 역사의 연속성에 대한 공연한 믿음을 지녀왔던 점을 문제 삼으며 등장했다. 기억 이론은 그간 도외시되었던 타자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주었다. 즉, 민족적 타자, 사회적 타자 또한 시간적 타자를 인정하지 않고는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자기 정체성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20세기 전쟁기념 문화의 연구는 제국과 식민지, 중심과 주변부, 사회적 주류와 비주류 간의 차별성과 상호관계에 주목하는 시각이 요청된다.
3. 사회문화적 맥락으로서의 기억 연구
― 이 책의 특징 2
《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는 무엇보다 공동체적 기억, 즉 ‘기념(commemoration)’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라는 점에서 독창성을 지닌다. 근래 국내 학계에서는 ‘기억’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집단기억’, ‘대항기억’, ‘기억전쟁’ 등과 같은 용어가 웅변적으로 나타내주듯이, 기억의 문제는 본래적인 철학, 심리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새로이 점검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연구경향은 과거의 문제에 보다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사회·문화현상을 분석하기 위한 엄밀한 방법론으로서의 기억이론은 부재하다. 기억의 이론이 더욱 사회·문화과학적인 차원으로 진전되기 위해서는 ‘기념’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
이 개념은 한 사회 또는 특정한 사회집단이 자신의 과거를 관리하는 형식을 부각시킨다. 한 공동체는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자신의 기원, 생존과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특정 인물이나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지속적으로 ‘기념’해야 할 필요성을 가진다. 따라서 기념이란 한 공동체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배타적 행위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상징적 행위들, 즉 역사(이야기)서술, 종교적 의례, 축제, 예술적 형상화 작업, 그 외에 국경일 제정과 같은 각종 법적, 정치적 조치들이 두루 포함되며 이를 통해 배타적인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이 만들어진다. 기념행위는 개개인의 일상에 직접 호소하기보다는 일정한 사회공간 내에서 나름의 공적인 위상을 갖는다.
이와 같은 ‘기념’ 개념은 사회적 차원에서의 기억이 어떠한 필요에 따라, 어떠한 형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관해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준다. 이론적으로 불명확한 ‘기억’에 대한 언급만으로는 이러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기념이라는 틀을 통해 《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는 기억을 행하는 주체와 그 주체가 과거를 재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매체, 그리고 그 재현 결과의 수용자층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고 이를 지역별, 사안별로 비교 분석하고 있다.
본래 기억에 대한 근래의 논의는 그 자체가 현대 사회가 낳은 정체성 위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