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는 실천시선 50번째로 1988년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 햇수로 벌써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시집으로 인해 명실공히 신경림 시인은 기존의 농민 시인에서 도시 빈민층의 고달픈 삶에 주목하며 민중 시인으로 자리매김을 하였고, 시인의 시세계를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중요한 시집으로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이 시집은 재작년에 절판되었다가 이번 출간 25주년을 기념하여 특별판으로 실천문학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한 시집이 25년 동안 꾸준하게 사랑을 받아온다는 것은 문학적 성과뿐만 아니라 민중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생명력을 획득한 『가난한 사랑노래』는 신경림 시인의 대표시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표지에는 남궁 산 판화가가 만든 신경림 장서표가 새겨져 있어 그 의미를 더했다.
어느 수배자의 비밀 결혼식
신경림 시인의 시작품 중에서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가난한 사랑노래」는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작품은 1970년대 한국 도시 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자조어린 편지글로 풀어낸 수작으로 평가 받아왔다.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움과 사랑 등 인간적 진실함을 모두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오로지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적인 것을 버려야만 했던 시대를 잘 드러낸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어느 수배자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어느 자리에서 시인이 들려준 사연은 이렇다.
시인이 1987년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살 때였다. 평소 집 근처 술집에서 자주 술을 먹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술집 주인 딸이 할 말이 있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가게 안에 있던 술손님이 집으로 돌아가자 슬그머니 남자친구로 보이는 젊은이가 가게로 들어왔다. 두 사람이 시인 앞에 앉아서 고민을 털어놨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싶지만 당시 남자가 지명 수배자로 쫓기는 처지여서 사람들 앞에서 결혼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도 한 번뿐인 결혼인데 체포의 위험을 감수하서라도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지를 시인에게 물어온 것이었다.
그래서 시인은 결혼하라고 독려하면서 축시를 써주고, 주례까지 맡아 젊은 예비부부를 결혼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시인은 가슴 저린 이 사연을 시로 쓴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시가 바로 「너희 사랑」라는 작품이다. 이 시는 물론 시집의 맨 앞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그 만큼 신경림 시인의 애정이 남다른 시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가난한 사랑노래」 작품은 결혼식 후에 한 편 더 쓴 작품이라고 한다.
끝나지 않은 가난한 사랑노래
요즘 사람들에게 신경림 시인을 말하면 누구나 한번쯤 그의 작품을 봤거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할 테지만 그의 시세계에 대해 말하라면 난색을 보일 것이다. 그는 이미 16권의 시집을 낸 대시인이기 때문이다.
신경림 시인의 독자적인 시세계는 등단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적 소재나 주제의 다양한 탐구 정신과 형식적 미학적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지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시적 탐색이 민중의 현실문제에만 비중을 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서정에 근거하여 개별화된 자아의 고뇌와 성찰에 천착한 결과이며, 이러한 시적 탐색이 꾸준히 이루어져 왔음은 모두 주지하는 사실이다.
특히 신경림의 서정성은 시를 시답게 만들어 주는 근원적인 힘이며 결정적인 관건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시대현실에 충실할 때 우리 현대시의 영역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신경림의 시는 이른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산문정신과 미학적 탐색으로 한국 시문학사의 지평을 확대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1970년대 신경림의 서정적 현실주의 시는 우리 시의 지평을 새롭게 확대하였으며, 1980년대 이후 시적 모색에 한 방향성을 제시하였다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의 최첨단이라 할 수 있는 금융산업의 붕괴를 목도하는 현 시점에서 이런 시세계를 구축한 신경림의 시를 다시 바라봐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 독재자와 기득권층을 위한 정치로 인해 농촌의 피폐해진 농민들의 삶은 와해되어 갔으며, 삶의 기반을 잃고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한 민중들의 생활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신경림이 노래한 민중들의 절망감과 무력감, 소외된 이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편들은 여전히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다시 울리는 그의 메아리는 여전히 새로운 시대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저항의지와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가 현재에도 유효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우리 시대가 여전히 암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현실의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역사의 한 주체로 다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경림 시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울음의 미학은 시인의 서정세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노래하는 연민과 시대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미래를 향해 열린 울음소리인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신경림 시집 『가난한 사랑노래』는 이런 의미에서 단순하게 출간 25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특별판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끝나지 않은 가난한 사랑노래가 불리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