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으로 한국을 떠나 일본땅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며 사는 조선인의 애환,
해방 직전 하나오카 광산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진실이 드러난다.
《땅밑의 사람들》은 하나오카 사건의 발단이 된 나나쓰다테 사건의 배경, 조선인징용자와 일본인 노동자의 희생, 중국인 포로의 봉기, 중국인 포로의 학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작가가 사건현장을 탐방하며 취재한 기억을 되살려 촘촘히 그려놓은 작품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누구보다도 강제징용으로 조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며 사는 조선인의 마음과 애환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연행되어 하나오카 광산에서 노동하는 조선인들의 생활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더욱이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사랑으로 고뇌하는 일본인 여성 노동자의 애처로운 시선에서는 짙은 휴머니즘마저 느끼게 된다.
무엇이 일본인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국경, 신분, 제도를 초월한 남녀 노동자의 진실한 사랑을 그려 넣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읽어간다면 극단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을 형상화한 이 소설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지배와 피지배, 혹은 식민과 피식민의 구도는 어디까지나 일본제국주의와 국가권력에 의해 빚어진 것으로, 한중일 서민 입장에서의 공존과 화합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인식에서 탈피, 한일 관계의 주체적 방향설정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 책을 읽는 분에게...
마쓰다 도키코(松田解子)의 본명은 ‘오누마 하나’. 마쓰다 도키코는 필명이다. 성 뒤의 이름 ‘도키코(解子)’는 음독하면 공교롭게도 ‘해고解雇’라는 단어와 같은 발음인데, 그녀가 초등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상경해 어느 직장에서 일을 해도 번번이 해고당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 정도로 작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노동운동가로서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필명에서 받은 강한 인상만큼이나 그녀의 생애와 작품은 충격적이다. 광산 현장에서 시달리는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를 보며 성장했다고는 하나 마쓰다처럼 식민지 이국 노동자에 대해 동정과 인간애를 지닌 작가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에서도 조선인에 대한 관점은 일본제국주의와 자본가들에 의한 지배와 착취 구조속에서 빈곤층 일본인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땅밑의 사람들》은 작가의 이국 노동자에 대한 인간애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해방 전 일본제국주의의 광란에 의해 하나오카 광산으로 끌려와 몸부림치며 근근이 연명하던 조선인과 중국인의 사연을 하나하나 실타래처럼 풀어놓았다. ‘하나오카 사건=중국인 봉기사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노동자 또는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가 연대하고 공존하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마쓰다 도키코가 실천적 작가로 불리는 이유는 조선인 11명과 일본인 11명이 생매장당한 사건 현장을 취재한 뒤, 평생을 사건 규명과 그 진실을 알리는 운동에 매진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수의 중국인이 학살당한 하나오카 사건을 세상에 폭로하고 희생당한 중국인들의 유골 봉환 운동에 앞장섰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보다도 마쓰다는 강제징용으로 고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며 사는 조선인과 중국인의 마음과 애환을 잘 표현해냈다.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해와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까닭에 해방 바로 전 하나오카 광산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는 조선인들의 성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착출된 후 하나오카 광산에서 노동하는 조선인들의 생활상과 중국인 포로들의 모습도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더욱이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사랑으로 고뇌하는 일본인 여성 노동자의 애처로운 시선에서는 짙은 휴머니즘마저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식민지시대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구도와 질서가 뒤바뀌는 현장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일본인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국경, 신분, 제도를 초월한 남녀 노동자의 진실한 사랑을 그려 넣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읽어간다면 극단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을 형상화한 이 소설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지배와 피지배, 혹은 식민과 피식민의 구도는 어디까지나 일본제국주의와 국가 권력에 의해 빚어진 것으로, 한 · 중 · 일 서민 수준에서의 공존과 화합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음과 동시에 기존의 인식에서 탈피, 한 · 일 관계의 주체적 방향 설정도 가능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국내의 독자가 이 작품을 읽는 의미도 거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