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예측을 뛰어넘어 폭주하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원인과 발견 과정, 피해자들의 실상을 알아보고 비극을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빼앗긴 숨: 최악의 환경 비극, 가습기살균제 재앙의 진실’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다각도에서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안종주는 환경·보건 전문기자 출신으로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떠오르던 시점부터 이 사건에 주목해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그리고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피해 실태를 직접 조사했으며,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사건 백서’의 총괄 편집인을 맡기도 한, 이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관찰자다.
이 사건은 파고들어 갈수록 우리 사회가 지닌 여러 문제점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안방의 세월호’라고도 불린다. 이익만 추구하며 소비자의 안전은 나 몰라라 하는 기업, 그 기업을 관리·감독할 의지나 능력이 없는 정부, 이른 시기에 사태를 인지하고도 원인 파악에 실패한 의료계, 세균 공포를 확산하며 이슈 만들기에만 골몰하는 언론 등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이 사건의 원인과 경과만 분석한 것이 아니라, 유사한 환경 비극의 사례를 복기하면서 우리가 이 사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방안도 함께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257명에 달하는 대형 참사 가습기살균제 사건,
대한민국에서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2016년 대한민국은 또다시 대형 참사로 시끄러웠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건강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많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데 밝혀진 검찰 조사 결과는 이보다 훨씬 충격적이다.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가해자로 지목된 회사는 자신들이 만든 제품이 사건을 일으킨 원인이라는 것은 부정하는 한편, 피해 사실을 검증하는 실험에 영향력을 행사해 실험의 결과도 조작했다. 그 과정에서 기업과 대학 연구 기관의 결탁이 드러났으며, 기업의 대표들은 소비자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줄 것을 알면서도 제품을 판매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정부의 대처도 매우 안일했다. 8월 18일 밝혀진 3차 피해자 조사에서 37명이 1·2단계 피해자로 인정됐다. 그런데 3·4단계 피해자는 각각 49명, 81명으로 발표되었다. 1·2단계 피해자와 달리, 3·4단계 피해자들은 피해에 따른 배상을 받지 못한다. 피해자를 구분하는 단계를 두고도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 규모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사건은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만 봐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1·2단계 피해자 257명, 그 가운데 사망자가 113명이나 나온 대형 참사다. 그런데 이 책은 이 비극이 이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아직 이러저러한 이유로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 피해를 입었어도 그것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인지 모르는 사람을 포함하면 피해자 수는 예단하기 어려운 수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존한 피해자들이 겪어야 할 후유증, 피해자들의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가습기살균제 사건이라는 재앙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근본 원인을 파헤치다
가습기살균제가 최초로 개발된 것은 1994년이다. 그리고 질병관리본부가 사태를 인지하고 조사에 착수한 시기는 2011년경이었다. 무려 17년 만에 문제가 부각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미 2006년부터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피해를 입은 환자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정부는 5년이나 지나서야 진상 조사에 나선 셈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국내 몇몇 병원 소아과에는 2006년부터 원인 모를 폐 손상 질환에 시달리는 어린 환자들이 찾아왔다. 환자들은 비슷한 증상을 보였지만 의료진이 시행했던 어떤 치료도 소용이 없었고, 많은 환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그런데 소아과 병원에서는 바이러스만 의심했을 뿐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이런 질환이 생겨났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가습기살균제는 계속 판매되어 피해자가 점점 늘어났다. 이 책은 병원 측이 질병관리센터에 조사를 요청하는 등 조금만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피해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가습기살균제라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살균제가 널리 사용된 배경도 자세하게 설명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화학물질을 사용한 살생물제가 그렇게 쉽게 유통될 수 없다. 규제가 훨씬 까다롭고 그런 화학제품을 바라보는 인식도 우리와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는 유공에서 처음 시판되면서부터 별다른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유통되었다.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 사용하는 제품이 안정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팔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과 정부의 무책임함이 부각된다.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된 나머지, 사실상 국민들을 실험 대상으로 쓴 셈이다.
그리고 이 책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주거 환경, 지나친 세균 공포증도 가습기살균제가 널리 사용된 이유라고 지적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주거 형태는 아파트다. 아파트에서는 겨울철에 난방을 할 경우 실내가 건조해지기 쉬운데, 환기를 충분히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가습기를 타고 전파된 가습기살균제는 몸이 약한 임신부나 어린이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세균을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해 모든 세균을 나쁜 것으로 몰아가는 언론 보도와 우리의 인식도 가습기살균제라는 비극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세균을 죽이는 물질은 세균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몸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탈리도마이드 사건, 미나마타병, 보팔 참사 등 다른 환경 재앙에서 배우다
살생물제를 사용하다가 이 정도로 피해를 입은 사례는 대한민국이 최초다. 그런데 화학물질을 이용하다가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책은 그러한 사례들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그러한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리도마이드는 일종의 정신안정제로 개발되어 여러 나라에서 시판되었다. 그런데 그 약품이 임신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 매우 많은 아기가 신체 기형을 안고 태어났다. 이것이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미나마타병은 일본에서 일어난 환경 재난으로, 공장에서 무분별하게 배출된 수은 등 화학물질 때문에 미나마타에 사는 주민들에게 생긴 병이다. 또한 인도에서 일어난 보팔 참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 삼성반도체 직업병 사건 등이 이 책에서 다루는 환경 재앙이다.
이러한 환경 재앙은 지역과 시대를 달리 해서 일어났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 공통점은 기업의 탐욕과 무책임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충분한 실험이나 환경적 고려를 하지 않고 유독물질을 유포시킨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발뺌을 하고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며 시치미를 뗀다. 심한 경우에는 문제를 제기하는 측에 폭력을 가하는 천인공노할 짓까지 저지른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이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국가가 이러한 사태를 방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환경 재앙 때문에 나타나는 피해가 커질수록 국가가 져야 할 책임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직의 특성상 어떻게 해서라도 문제의 실상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난 문제도 최대한 쉬쉬하며 묻으려고 한다.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라고 할 만한 나라들도 모두 이런 식으로 문제에 대처했다.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에서 일어난 일도 이러한 과정을 그대로 답습했다. 기업은 자신들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국가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 기업의 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