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과 시적 문체가 돋보이는 소설 『우연한 방문객』은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알리 스미스의 첫 장편이자 대표작으로, 휘트브래드 상을 수상하고 맨부커 상과 오렌지 문학상 최종 후보에까지 오른 화제의 소설이다. 처녀작 『자유연애(Free Love)』를 위시한 몇 편의 단편집을 통해 영국 문단에서 뛰어난 언어적 기교와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로 인정받은 알리 스미스는 『우연한 방문객』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다소 정형적 느낌을 주는 ‘시작’, ‘중간,’ ‘끝’의 구조적인 틀 안에서 네 가족의 이야기가 각각 3인칭 시점으로 그려지는 『우연한 방문객』은 독특한 상상력과 시어 같은 감각적 문체가 곳곳에서 발견되어 알리 스미스만의 독창적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각자 심각한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던 한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방문한 묘령의 여인 앰버를 통해 고민을 해결해가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우리 삶에 깃든 현실과 꿈에 대해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성 높고 감동적인 소설이다. 마음 나눌 곳 없는 고독한 가족의 삶에 조용하고 은밀한 변화가 시작된다 이 작품에는 전원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영국의 중산층 가족이 등장한다. 사춘기를 맞은 12세 딸 애스트리드와 고교생인 17세 아들 매그너스, 어릴 적 고아가 된 엄마 이브, 그리고 이브와 결혼하여 이 가족의 일원이 된 영문학 교수 마이클. 우선 ‘수준 이하’, ‘전형적이고 아이러니하게도’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애스트리드는 비디오카메라로 날마다 새벽 풍경을 찍는 데 집착하고 있다. 그런 비정상적인 행동의 근원에는 얼굴도 모르는 친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정체성의 혼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것에 대한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모범생이며 우등생인 매그너스는 위기에 처해 있다. 학교 친구들과 장난으로 어떤 여학생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서 전교생에게 이메일로 보냈는데 그 여학생이 자살을 하고 만 것이다. 매그너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다가 그 여학생을 따라 자살을 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마이클은 에너지와 영감을 얻기 위해 학점을 볼모로 제자들과 금지된 사랑을 즐기는 위험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제자들과의 공허한 육체적 쾌락은 허탈감만을 안겨줄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브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목숨을 잃은 실존 인물이 다시 살아나 삶을 이어간다는 내용의 자전적 픽션 ‘진짜 시리즈’ 여섯 권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에 종일 작업실 바닥에 누워 차라리 벌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소통이 단절된 가족 관계 속에서 각자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던 어느 날, 맨발에 화장기 하나 없는 신비스러운 여인 앰버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오며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문제투성이 가족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앰버.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80년대 페미니스트 스타일의 이 여자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 가족 역시 그녀에게 완전히 매료된다. 우선 앰버는 애스트리드의 비디오카메라를 높은 곳에서 던져 깨뜨린 다음, 세상의 종말을 예상하며 새로운 시작인 ‘새벽’을 카메라에 담는 애스트리드로 하여금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현실과 대면하고 사물을 직시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또 사춘기인 매그너스를 정상적인 성관계와 사랑의 세계로 이끌어줌으로써 방황하는 그로 하여금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고 살아야겠다는 의욕을 북돋워준다. 엄마 이브 역시 자신의 고립을 이해해주는 앰버의 키스를 받은 후 작가로서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되고 가족들과도 더욱 긴밀한 유대를 갖게 된다. 마이클은 앰버와 만난 후 병적이었던 바람기를 청산하고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시로 승화하게 된다. 문제투성이 가족에 찾아온 매혹적인 여인, 앰버의 의미 『우연한 방문객』의 맨 앞과 시작, 중간, 끝 다음 맨 마지막에 1인칭으로 소개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알람브라’라는 여인이다. 마지막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이 꿈꾸었던 모든 것이다.” 알람브라는 곧 앰버 맥도널드이고, 영화가 상징하는 ‘꿈’이다. 그렇다면 그 꿈은 무엇을 의미할까? 앰버가 떠난 후 어린 애스트리드와 매그너스는 그녀를 그리워하지만 어른인 이브와 마이클은 그녀가 허풍선이에 협잡꾼에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이었음을 인정한다. 매그너스 방식으로 표현하면 ‘꿈 = 천사, 빛, 환상’이다. 그것은 우리를 속이고 우리가 가진 걸 빼앗고 환멸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우리가 늘 갈구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절대적인 매력의 소유자,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구원의 빛이다. 그리고 그것은 앰버 맥도널드처럼 언제라도 우리에게 예기치 않게 나타난다. 1968년에 태어난 앰버는 오늘날 거대한 인식의 변화를 초래한 1960년대 자유주의 정신의 산물이자, 현실이 아닌 꿈과 영화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우연한 방문객』에도 1960년대의 정치적 암살, 대학생 시위, 비틀스의 노래, 과학기술의 발달이 언급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여전히 오늘날 우리 모두의 가정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소설에서 1960년대의 정치적 상황은 미국과 영국이 개입한 최근 이라크 문제까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우연한 방문객』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유분방했던 1960년대의 후손들로, 당시의 시대정신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앰버는 『사운드 오브 뮤직』, 『마이 페어 레이디』, 『졸업』, 『러브 스토리』, 『택시 드라이버』, 『내일을 향해 쏴라』 등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갈등을 다룬 과거 영화들이 합성된 이미지로 묘사되고 있다. 앰버는 이 가족이 간절히 추구하고 있지만 심각하게 결여하고 있는 소중한 것, 즉 파멸로부터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꿈과 희망이자 정신적인 지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와 연관해서 『우연한 방문객』이 형상화한 현실은 정신세계가 파편화되고 황폐해진 암울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한 방문객』을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기회를 갖는 동시에 자신의 꿈과 환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