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형수

박철웅 and other
3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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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과 방탕한 생활을 쫓던 전과4범 박철웅은 사채빚을 갚기 위해 범행을 감행, 세 명의 목을 졸라맨 후 자신의 집 마당에 묻고 그 위에 조경수까지 심었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금당 부부 살해범 박철웅은 1980년 강도 살인, 시체 은닉, 사기 및 사기 미수 혐의로 사형이 확정되었다. 인간으로서는 입에 담지도 상상할 수도 없는 살해행각을 벌였던 박철웅은 놀랍게도 사형이 확정된 후 기독교에 귀의, 독실한 신앙생활로 회개의 나날을 보내며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뉘우치고 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때문에 구치소 측은 행형 성적이 좋지 않은 말썽꾸러기 재소자를 번갈아가며 박철웅과 합방을 시켰고 그는 교도관 이상으로 순화에 성공했다. <나는 사형수>는 양순자 교화위원에게 보낸 참회의 편지(옥중 생활과 그 때의 심경 변화)를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정리한 책이다. 박철웅은 방탕한 세월 속에서 잘못 살아온 후회, 그리고 자신을 통해 피해를 입고 상처받고 있을 그 가족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과 미안함을 양순자 교화위원을 통해 전하고 있다. 박철웅은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자기 안의 어두운 방을 비로소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생에 처음 자신의 말에 온몸으로 귀를 기울여주고, 가장 따스한 눈빛을 보내주고,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주었던 만남을 가지게 된다. 박철웅은 비록 길지 않은 시간 시간이었지만 죽음을 기다리는 877일 동안 그의 생에 있어 가장 따뜻한 순간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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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골동품상 부부 실종, 3일째 안 돌아와 사형수 박철웅과의 만남 1장 밤의 발레 2장 난장판 3장 운명의 선택 4장 하나님과의 첫 만남 5장 다시 허영의 시장에서 6장 살의의 탄생 7장 야수의 증언 8장 죽음의 집의 기록 내 목에 밧줄이 놓이기 전에 덧붙이는 글

Description

‘용서받지 못할 살인마에게도 천국의 문은 열릴까?’ ‘피해자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살인자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는가?’ “당시 볼펜심지를 넣어주는 것은 불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날부터 흐느적거리는 심지로 껄끄러운 휴지에 그것도 희미한 불빛 속에서 모포를 뒤집어쓰고 모두 잠든 사이에 매일 미친듯이 글을 써갔던 것 같다.”-박철웅과의 만남 중에서 양순자 교화위원이 박철웅에게 “만약 정말 만약에 사면이 되어 세상에 나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박철웅은 “누나,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사면 같은 것이라도 있어 죽음을 면제받는다 해도 나는 그대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철웅은 자신의 과거 소행으로 보아 스스로도 사형이 되었으니 망정이지 세상에 다시 나간다면 악인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온 국민의 충격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게 하는 흉악 범죄들이 늘어나면서 사형제 존폐론에 대한 논쟁이 대한민국을 들끓게 하고 있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속죄는커녕 다시 세상에 나오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살인범들의 철면피한 행동에 신물을 날 정도라고들 한다. 양순자 교화위원은 30년 전 그 누런 원고를 복간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숲속에 동물들도 자기들만의 가이드라인이 있다. 그러나 인간들의 잔인성은 이미 가이드라인을 넘어서버렸다. 생에 마지막 순간에 진정한 만남과 완벽한 영혼의 교감을 이루어내고, 비로소 죽음 앞에서 참회와 용서에 다가간 ‘철웅이 네가 어디 한번 말해보라’라는 심정이다.” 《나는 사형수》는 사형수가 직접 쓴 글로 여기엔 토시 하나도 보태지 않았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죽음의 발자욱 소리를 들으면서 이 글을 써야 했던 사형수 박철웅의 목소리를 통해 삶과 죽음, 선과 악, 죄와 벌, 용서와 구원이라는 인간에게 주어진 오랜 질문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제공한다. 이 책은 ‘용서를 구할 자격조차 없는’ 살인마가 회개했다는 것만으로, 졸지에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상실감과 흉악 범죄에 몸서리 치는 기억으로 고통을 받는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살인마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크고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수사 연인원 2만 명이 투입됐고, 조사를 받은 사람만 4천 명에 달했던 전대미문의 금당사건 1979년 6월 골동품상 금당 부부의 실종 이후 9월 초까지 3개월간 중개상 3,400여 명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문 닫는 고미술상이 속출했고 인사동 일대 골동품 거래는 올 스톱됐다. 사건 해결 후 확인해보니 중개상 등 115명이 용의자로 조사받다 별건으로 입건됐고 그 중 76명은 구속됐다. 한 중개상은 조사 도중 투신자살을 기도하는 등 고문 의혹도 불거졌다. 주범 박철웅이 검거되고 난 후 서울시경 국장은 용의자로 몰렸던 골동품상과 중개상, 골동품 수집자 등 2천 명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내야 했다. 동거녀 부모의 제보로 100일 만에 범인 검거에 성공, 완전범죄 같았던 박철웅의 악행은 종지부를 찍었다. 범인이 살고 있는 정원 구덩이 속에서 김장비닐로 칭칭 동여맨 시체 3구가 확인되는 순간 시체 발굴 현장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분노했다. 이 장면은 2007년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로도 쓰일 만큼 온국민의 뇌리에 깊이 박혔던 참옥한 현장이었다. 결국 주범 박철웅은 1982년 7월 사형 집행을 받았다. 훗날 그가 남긴 옥중 참회록 《내 목에 밧줄이 놓이기 전에》라는 책의 인세로 3명의 생명을 살렸으나 그때 숨진 3명은 영영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877일이 그의 생에 가장 따뜻했다는 박철웅의 옥중 고백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저는 해볼 수 있는 일은 다해 보았습니다. 돈도 모아 보았고 쓸 만큼 써 보았으며 수많은 여자들도 안아 보았습니다. 100미터 안 되는 거리를 자가용으로 다니기도 했습니다.”-박철웅이 사형 집행 전 한 마지막 기도 중 쾌락과 방탕한 생활을 쫓던 전과4범 박철웅은 사채빚을 갚기 위해 범행을 감행, 세 명의 목을 졸라맨 후 자신의 집 마당에 묻고 그 위에 조경수까지 심었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금당 부부 살해범 박철웅은 1980년 강도 살인, 시체 은닉, 사기 및 사기 미수 혐의로 사형이 확정되었다. 인간으로서는 입에 담지도 상상할 수도 없는 살해행각을 벌였던 박철웅은 놀랍게도 사형이 확정된 후 기독교에 귀의, 독실한 신앙생활로 회개의 나날을 보내며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뉘우치고 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때문에 구치소 측은 행형 성적이 좋지 않은 말썽꾸러기 재소자를 번갈아가며 박철웅과 합방을 시켰고 그는 교도관 이상으로 순화에 성공했다. 그의 회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사람이 옥중의 박철웅이 생의 마지막 2년 6개월 동안 매주 금요일에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양순자 교화위원이다. “누님이 내게 없었으면 제가 어떻게 이 글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그 어떤 이 세상의 말로도 하나님 앞에 범죄한 내 죄의 악함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떤 때 꿈속에서 죄를 저지르고 깨고 나면 내 자신에 대한 환멸과 혐오로, 이 육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게 한없이 괴로움이 되기도 한답니다.”-박철웅이 양순자 교화위원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1980년 3월 20일 《나는 사형수》는 양순자 교화위원에게 보낸 참회의 편지(옥중 생활과 그 때의 심경 변화)를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정리한 책이다. 박철웅은 방탕한 세월 속에서 잘못 살아온 후회, 그리고 자신을 통해 피해를 입고 상처받고 있을 그 가족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과 미안함을 양순자 교화위원을 통해 전하고 있다. 박철웅은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자기 안의 어두운 방을 비로소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생에 처음 자신의 말에 온몸으로 귀를 기울여주고, 가장 따스한 눈빛을 보내주고,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주었던 만남을 가지게 된다. 박철웅은 비록 길지 않은 시간 시간이었지만 죽음을 기다리는 877일 동안 그의 생에 있어 가장 따뜻한 순간을 보내게 된다. 죽음 문턱에서 비로소 고된 성장의 의례를 치른 듯, 한층 성숙된 모습으로 자기 앞의 생을 마감하게 된 그는 1980년 4월경 누구의 권유도 없이 교도소 당국에 자신의 신체 전부를 집행 뒤에 병원을 통해 남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한 줌의 재까지 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바치고 가겠습니다.” 박철웅의 유언에 따라 그의 장기를 8명에게 주고 갔다. 형장에 있었던 구치소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철웅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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