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삶에 관한, 그리고 깨어 있는 삶에 관한 책
『20세기를 생각한다』는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포스트워'의 저자이자 사회 참여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토니 주트와 전도유망한 젊은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가 20세기 서구 정치사상에 대해 나눈 긴 대담의 기록이다. 이 책은 <역사이자 전기이며 윤리학 논문>이다.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파시스트 지식인들이 이해한 권력과 정의를 주제로 한 서구 근대 정치 사상사, 제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격변이 일어난 직후 20세기 중반 런던에서 동유럽 유대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역사가 토니 주트의 지적 전기, 그리고 20세기 정치사상의 한계와 도덕적 실패에 대한 윤리학적 사색, 이 세 가지 이야기가 교직되어 있다. 책은 과거에 대해 말하지만, 우리가 싸워 얻어야 할 미래에 대해 논증한다. 우리는 공동선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는데, 20세기는 이에 대해 우리에게 해줄 말이 많다.
역사가로서의 명성이 정점에 달해 있던 2008년, 토니 주트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20세기를 생각한다』는 바로 그러한 사정에서 탄생했다. 토니 주트가 통상적인 의미에서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된 역사가 티머시 스나이더가 그에게 책을 한 권 같이 쓰자고 제안했고, 주트가 이를 수락한 것이다. 2009년 정초부터 봄, 여름 내내 스나이더는 매주 목요일마다 주트의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이를 녹음해 녹취한 뒤 주트가 생각한 방식에 따라 9개의 장으로 편집했다. 스나이더와 나눈 일련의 대화에서 주트는 오로지 자신의 정신과 기억을 나침반 삼아 20세기라는 거대한 대륙을 탐험하며 그 지적, 정치적 지형도를 읽어 내고, 자신의 지적 좌표를 정치적 지식인의 역할과 역사가라는 직업에 비추어 자전적 이야기로 풀어냈다.
전기적 요소와 역사적 요소로 나뉘어 있는 각 장은 토니 주트가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자전적 전기로 시작한다. 주트의 이야기는 대화에서 나온 것이지만 스나이더는 자신의 말은 빼고 주트의 이야기만 남겨 두었다. 역사 이야기는 주트의 간략한 자전적 이야기가 끝나는 자리에서 20세기 정치사상의 가장 중요한 현장들을 관통하며 진행된다. 홀로코스트와 이스라엘의 관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식인들의 매혹과 환멸, 파시즘과 반파시즘, 동유럽에서 윤리학으로 부활한 자유주의, 유럽과 미국의 사회 계획 등이 주트의 빛나는 통찰력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는다.
주트는 이 책의 <후기>를 받아 적게 한 지 몇 주 뒤 이 세상과 작별을 고했고, 이로써 우리는 20세기의 유산에 대한 가장 중요한 논평자 한 명을 잃게 되었다. 주트의 마지막 지적 작업을 함께한 스나이더는 이 책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매혹된 지식인들과 그들의 환멸
수많은 주제와 인물을 둘러싼 두 역사학자의 대화는 요약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몇 가지 중심적인 테마는 있다. 그중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식인들의 매혹과 환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말 신뢰를 잃은 신을 대신해 세속의 종교로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 실패의 과정에는 끔찍한 이야기들이 있다. 주트가 보기에 지식인들은 이 끔찍한 결과에 책임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타인들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는가? 토니 주트는 지식인들의 그 책임과 의무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작동 방식을 놀랍도록 훌륭하게 설명했다. 역사가 자기편이며, 자기가 가는 길이 진보라고 의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지식인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나키스트들은 체제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론이 없었고, 개혁주의자들은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할 말이 없었으며, 자유주의자들은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이 모두를 분명하게 설명했다. 또한 공산주의는 동조자들에게 강렬한 공동체 의식을 제공했다. 파시즘에 관여했던 회고록의 첫 번째 권에 <나>라는 제목을, 공산주의 시절을 다루고 있는 두 번째 권에 <우리>라는 제목을 붙였던 프랑스의 시인 클로드 루아처럼, 공산주의 사상가들은 자신들이 같은 생각을 하는 지식인 공동체에 속한다고 생각했으며 자신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과정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자신했다. 마르크스주의는 기독교의 세계관과 유사한 세속의 종교였다. 인간관계의 상실과 공동체의 파괴를 주제로 한 잃어버린 세계라는 오래된 이야기에 자본주의가 파괴되고 남은 퇴적물에서 등장할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인간 경험에 대한 상상을 덧붙였고, 인간의 타락, 메시아, 메시아의 고난과 대속, 구원, 부활 등 전통적인 기독교 종말론의 많은 부분을 포함했다.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을 말하는 마르스크스주의는 세속의 종교로서 구원을 약속했고, 구원을 위해서라면 희생은 감수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환상은 깨져 나갔다. 1936년 스탈린의 시범 재판과 1939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그리고 1956년 헝가리 봉기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에 대한 소련의 무력 진압은 공산주의에 대한 지식인들의 환멸을 불러왔다. 전향한 지식인들은 한때 지녔던 신념을 합리화하고 신념의 상실 또한 표현해야 했는데, 역사가 아니 크리젤이 쓴 책의 제목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 그리고 프랑수아 퓌레가 쓴 20세기 역사에 관한 책의 제목 <어느 환상의 과거>는 그들이 생각한 방식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여전히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이 있었다. 미래의 결과만이 현재의 믿음을 검증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에게 혁명의 희생자들은 헤겔 철학적 의미에서 정신Geist의 희생자, 즉 인간이 아닌 역사의 희생자였다. 이들은 타인의 운명에 가해진 폭력을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믈렛을 만들면서 달걀을 살살 다룰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트는 이처럼 미래의 이름으로 현재의 악행을 정당화한 것을 20세기 지식인들의 윤리적 문제로 보았다. 스스로 미래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자들은 어쩔 수 없지만 타인에게 미래를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하거나 타인의 희생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죄악이었다. 공산주의의 죄과에 대해 침묵했다는 주트의 비판에서 사르트르도 홉스봄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죽음과 폭력에 대한 숭배라는 이 낭만적 감수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2006년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을 침공해 많은 민간인들이 고초를 겪었을 때, 부시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이를 <새로운 중동의 탄생을 알리는 산고>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련을 역사가 새로운 세상을 낳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런 식의 수사는, 주트가 보기에 타인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미화한다는 측면에서 역사의 궁극적 목적을 위해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20세기 지식인들의 수사와 한 치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국가의 개입은 히틀러로 가는 길인가 ― 케인스와 하이에크, 복지 국가
경제학적 관점에서 국가의 역할에 관한 논쟁은 20세기 내내 케인스와 하이에크 사이의 결투였다. 시장을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