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밤낮없이 죽을 것처럼 일만 하던 남자, 오기사
그.가.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녀를 사랑하게 만든 그녀에게
도시 100개를 선물하고 싶은 남자가 말한다
연애는 여행이었다
빨간색 하이바를 뒤집어쓰고 있는 캐릭터와 ‘오기사’라는 필명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오영욱. 그는 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동시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사실, 그가 하는 이 세 가지 일은 교묘하게 맞물려 있다. 여행을 다니며 본 도시와 건축을 그림으로 그리고, 책으로 묶는 작업이 벌써 여섯번째다.
하지만, 이번 책은 감히 말하건대…… 다르다. 달라도 아주 다르다. 오기사 인생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 벌어졌으니, 그것은 바로 ‘연애’였다.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긴 나이에 ‘연애’가 처음도 아니고 그리 요란을 떨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연애’의 감정이 짙어져 바야흐로 ‘결혼’으로 이어진다면? 그리고 그녀에게 이 책이 ‘청혼’의 매개체가 되어준다면?
가수의 경우라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청혼하는 모습을 흔히 보아왔다. 그런데 이 남자, ‘책’으로 프러포즈를 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청혼하겠다는 이 남자의 포부가 다부지다못해 결연함마저 느껴진다. 주말도 밤낮도 없이 일만 하던 지독한 그가, 심지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를 위해서라면 일요일엔 일을 하지 않겠어.”
그는 첫눈에 반한 그녀에게 시를 써서 선물하기로 했다
낭만을 아는 남자, 오기사
이 책은 어느 날 그녀에게 받은 문자메시지의 답장으로 갑자기 써보냈던 스마트폰용 시(詩) 한 편에서 출발한다. 그날 이후 그는 어찌 보면 유치하고 어찌 보면 황당하기도 한 시들을 매일 한 편씩 그녀에게 보내기로 한다. 그의 3.5인치짜리 스마트폰 액정 위에서 그는 전 세계를 횡단하는 여행 같은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그의 연애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또한 현대적이고, 감각적이다. ‘연애’라는 행위가 주는 고전적인 ‘낭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진보된 연애 행태와 그 속사정들을 오기사 특유의 유쾌한 문체로 기술하고 있다. 휴대폰에 엔터 기능이 없었으면 별로 유용하지 않았을 짤막한 시를 주고받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IT 문명의 혜택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적나라하고도 내밀한 연애의 감정들 사이에서 ‘여행’과 ‘연애’의 공통점을 하나씩 발견해나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택시를 타면 길을 돌아가 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을지 전전긍긍하다가도 의사소통의 능력을 키우고 그 도시를 제대로 알아가면서 차차 그 불안함이 걷히게 되는 것과 같이, 연인 사이로 발전함에서도 처음의 낯선 분위기 속에서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도를 높여가면서 반말을 사용하게 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또, 새롭게 시작된 연인 사이에서는 시간의 가치가 달라짐을 이야기하면서 교통기술의 발달로 서울과 도쿄를 연결하는 연애가 가능해진 작금의 현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뿐인가. 기내에서 제공하는 열악한 커피 이야기를 통해, 처음 만난 연인들은 커피숍의 분위기에 치중하다가도 친밀도를 쌓고 서먹함이 사라진 후에는 커피의 맛을 중요시하게 되듯이 처음에는 서로의 공통점에 열광하다가도 차츰 그보다는 차이점에 불만을 느껴가는 연애의 과정을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낯선 도시에서 비행기 환승을 해야 할 때 느꼈던 걱정과 불안함을 연애 과정에서의 시행착오와 연결 짓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사오던 물건과 연인에게 줄 선물의 공통 맥락을 찾아내기도 하며, 여행지에서의 시차 적응처럼 연애에서도 남녀간의 차이를 좁혀가는 이야기를 역설하기도 한다.
그는 결국 헤어지는 연인들이 마지막 지니는 내면은 마음이 편하지 않은 도시를 여행하는 여행자의 심리와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호기심이 세상의 많은 여행지의 가치를 생성시킨다고 했지만 사람마다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목적지가 각각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아량을 베푼다고 해도 스모그가 짙게 깔린 대기 아래 아저씨들이 경쟁적으로 거리에 침을 뱉는 도시를 단지 열린 자세만으로 사랑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호기심은 기본적으로 공명할 수 있는 각자의 마음을 전제로 하는 더 깊은 관계로의 충분조건인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법이니 아무리 마음이 잘 맞는 사이라 할지라도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차이가 또 한 번의 이별을 위한 도화선이 될지 비로소 만나게 된 짝에게 느끼게 되는 오묘한 매력이 될지는 애정에서 기인한 관용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기에 그가 사랑에 빠진 그녀에게 막연하게 차이를 느끼며 그 차이에 대한 실체와 그 차이를 극복 혹은 수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던 것은 사랑의 증거였다.
_ 본문 [호기심](72쪽) 중에서
두 항공편의 연결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치밀하게 계산된 시스템에 의해 별 무리 없이 연결된다. 설사 조금 오차가 생기더라도 콜롬보에서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인천으로 돌아와야 하는 사람이 쿠알라룸푸르에 갇혀 평생 그곳에서 머물러야 하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연인 관계 역시 두 영혼이 만나 둘만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가 불안감을 해소한다. 그렇기에 그녀가 조금 놀 줄 아는 친구들과 여명이 비출 때까지 영혼을 불살랐던 어느 어두웠던 밤에 그는 필연적으로 다가온 순간적인 걱정 앞에서 마치 올 것이 왔다는 듯 심호흡을 했다. 그녀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말하고, 다만 조만간 보다 성숙한 남자가 되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_ 본문 [환승](90쪽) 중에서
연인 사이의 시간차란 한국의 서울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엄연히 존재하는 일곱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아득했다. 몇 번 정도야 온갖 핑계를 대며 일터에서 빠져나와 서로의 시간대를 공유할 수 있겠지만 결국 상대방의 입을 튀어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인 시차 적응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시간대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에 많은 연인들과 부부들은 각자의 시간대에 살아가며 마치 새벽에 홀로 깨어 낯선 호텔방에서 멍하니 검은 풍경을 바라보는 여행자처럼 고독함을 느낀다.
_ 본문 [시차 적응](146쪽) 중에서
연애의 어느 시점에서 그는 문득 사랑하는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도 여행중 전망대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방식과 닮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연인끼리라면 보통의 시간을 보내며 마치 여행자와 거리의 간판 같은 관계로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남자와 여자의 근원적 차이나 상대방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과거의 콤플렉스나 트라우마 등에 의해 그녀를 보다 거시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_ 본문 [전망대](175쪽) 중에서
연인은 언젠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부부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법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이전의 상황보다는 훨씬 친밀도가 높아지게 된 남자와 여자의 사이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권태가 찾아올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물리는 순간이 오고, 환상적이었던 여행에도 힘겨운 귀국 여정이 존재하듯 사랑을 믿었던 둘 사이에도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이 올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랑지침서에서 이미 결론을 내린 것처럼 이런 심리적 결핍 상태는 결혼 관계를 건강히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참고 이해하며 원만하게 풀어야 할 과정이다. 귀국길의 우울감에도 불구하고 다시 떠나게 만드는 여행만이 선사하는 어떤 무언가의 요소가 남녀 관계에도 필요한 것이다.
_ 본문 [귀국](258쪽) 중에서
그동안 오기사의 전작들을 통해 우리는 건축가 혹은 여행작가로서의 그의 모습은 숱하게 보아왔다. 하지만, 이번 에서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오기사로서의 다분히 인간적인 면모를 그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