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미셸 투르니에 ·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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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의 대표작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 재출간됐다. 번역자 김화영 교수의 재검토와 교정과정을 거쳤으며, 오역을 바로잡고 작가 연보를 추가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이 책은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뒤집어 다시 쓴 소설이다.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한 우화로, 진취적인 용기와 독립심, 개척정신과 청교도주의 등 영국적 가치관의 승리를 그려낸 <로빈슨 크루소>. 투르니에는 이 소설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볼 때 1719년에 나온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선 그 소설에는 방드르디(프라이데이)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취급되고 있어요. 그는 단순히 빈 그릇일 뿐이지요. 진리는 오로지 로빈슨의 입에서만 나옵니다. 그가 백인이고 서양인이고 영국인이고 기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디포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두 번째 문제점은 모든 것이 회고적인 시각에서 처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섬에 혼자 던져진 로빈슨이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그는 당장 구할 수 있는 것들만을 가지고 과거의 영국을 재현하고자 합니다. 즉 그는 난파한 배의 표류물을 주워 모아 섬 안에 작은 영국 식민지를 또 하나 만들어놓으려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원주민 방드르디가 전면에 나선다. '방드르디'는 '금요일'을 뜻하는 프랑스어.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우연히 만난 야만인에게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듯이, 이 책 속의 로빈슨은 '방드르디'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하지만 이후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디포의 원작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방드르디는 크루소가 섬에 만들어낸 '또 하나의 완벽한 유럽문명'에 감화받기는 커녕 크루소에 대한 반항심만 키운다. 결국 그는 크루소가 애써 재현해낸 문명의 이기들을 깡그리 없애버린다. 그 후, 놀랍게도 두 사람은 '야성적인 삶의 방식'을 배우게 된다. 크루소는 방드르디가 가르쳐 주는 대로 아무도 봐주는 사람 없는 옷을 벗어던지고, 거추장한 물건을 만들지 않고, 자연과 섬이 베풀어주는 야생의 양식들만을 먹으면서 자유롭게 즐기기 시작한다. 책은 인간의 문명, 뿌리깊은 관습, 진정한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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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프롤로그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작품 해설 / 김화영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의 신화적 해석 작가 연보 참고 문헌

Description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의 대표작 자연이 문화를 지배하고 원시성이 문명을 극복하는 ‘새로운 신화’ 고유의 서사 방식으로 『로빈슨 크루소』를 뒤집은 패러디 문학의 걸작 “절벽을 굽어보는 바위에 몸을 의지한 채 서로 몸을 부둥켜안은 로빈슨과 방드르디는 곧 있는 그대로의 원소들이 서로 혼연일체가 된 그 신비의 위대함 속에 빠진 채 무아지경이 되었다.” 프랑스 현대 문학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의 대표작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재출간되었다. 1995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바 있는 이 작품은 번역자 김화영의 꼼꼼한 재검토와 교정 과정을 거쳐 보다 원서에 충실할 뿐 아니라 우리말로서도 더욱 매끄러운 판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실수로 누락된 문장을 복원하고 오역을 바로잡는 등의 수정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작가 연보를 추가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미셸 투르니에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18세기 고전으로 꼽히는 영국 작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의 『로빈슨 크루소』를 투르니에가 뒤집어서 다시 쓴 소설이다.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의 모험은 ‘성서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빈번한 출판과 번역의 대상’이 되어왔으므로 투르니에가 소설로 쓰기 이전에 모두가 알고 있었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것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한 우화로, 거칠고 투박한 인적미답의 자연에 대한 서구식민주의 문명의 승리를 그려 보인다. 진취적인 용기, 독립심, 개척 정신, 청교도주의, 경제적 인간 등 이른바 영국적인 가치관이 소설이라는 형식 속에 투영되어 현대적 신화의 차원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투르니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로빈슨의 신화를 ‘다시 쓴’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더군다나 투르니에는 로빈슨의 이야기를 다시 쓴 최초의 작가도 아니고 유일한 작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 현대 패러디 문학의 대표적 저작물로 꼽히는 이유는 투르니에 고유의 서사적 방법 때문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신화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오늘날의 세계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는 특유의 서사적 방법은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그의 대표작인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의 탄생 배경에는 두 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프랑스에서 한동안 절판이었다가 재출간된 것이고, 두 번째는 투르니에가 유명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에게서 강의를 듣고 지도받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그는 인간 박물관에서 인류학, 언어, 야만인과 문명인의 개념에 대하여 배운 바를 염두에 두면서 『로ㅂ빈슨 크루소』를 읽었다. 그 순간 그는 이것이 바로 새로운 소설의 소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레비스트로스를 통하여 눈뜨게 된 새로운 인류학적 성과를 활용하면서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자기 식으로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자연이 문화를 지배하고 원시성이 문명을 극복하는 ’새로운 신화’ 디포의 소설 속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물질문명과 절연된 무인도에 표류하여 뜻하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등 뒤에 두고 떠나온 과거의 세계, 즉 대영제국의 가치체계에 근거한 하나의 세계를 무인도에 재현하려고 애쓴다. 오로지 그가 백인이고 서구인이고 영국인이며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로빈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모두가 진리라는 전제하에 서술된 그 작품을 읽으며 투르니에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전혀 다른 로빈슨을 창조하려고 마음먹었다. 과거의 가치들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무인도에서는 전혀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로빈슨을 말이다. “내가 볼 때 1719년에 나온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는 극도로 충격적인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선 그 소설에는 방드르디(프라이데이)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취급되어 있어요. 그는 단순히 빈 그릇일 뿐이지요. 진리는 오로지 로빈슨의 입에서만 나옵니다. 그가 백인이고 서양인이고 영국인이고 기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도는 방드르디가 중요한 역할을, 아니 심지어 끝에 가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소설을 써보자는 데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소설의 제목을 로빈슨이 아니라 방드르디로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디포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두 번째 문제점은 모든 것이 회고적인 시각에서 처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섬에 혼자 던져진 로빈슨이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그는 당장 구할 수 있는 것들만을 가지고 과거의 영국을 재현하고자 합니다. 즉 그는 난파한 배의 표류물을 주워 모아 섬 안에 작은 영국 식민지를 또 하나 만들어 놓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로빈슨은 오직 과거에만 정신이 팔려 있고 잃어버린 것을 복원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이죠. 나는 자신의 의도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를 로빈슨 스스로가 깨닫게 되는 소설, 그것이 터무니없는 짓이라는 느낌 때문에 그의 건설 사업이, 이를테면 내부로부터 잠식되어 붕괴해 버리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는 방드르디가 불쑥 나타나서 모든 것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그런 소설을 말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지 상태 위에서 새로운 언어, 새로운 종교, 새로운 예술, 새로운 유희, 새로운 에로티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 소설 속에서 방드르디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까닭입니다. 그는 미래를 열고 기획하며 로빈슨으로 하여금 과거의 재구성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이처럼 투르니에의 작품에서는 디포의 작품과 달리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원주민 방드르디(프라이데이)가 전면에 나선다. 『로빈슨 크루소』가 산업 사회의 탄생을 상징한다면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그 사회의 추진력이 되는 사상의 폭발과 붕괴, 그에 따라 인간의 신화적 이미지가 원초적 기초로 회귀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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