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한 비교역사학적 연구를 시도하다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아직까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책은 자살한, 자살을 시도해본 사람들의 심리 상태의 면면을 밝히는 책이 아니다. 저자 마르치오 바르발리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자살, 즉 자발적 죽음에 대한 그의 연구는 ‘자살론’으로 유명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이론이 점점 부적절해지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시작되었다. 뒤르켐의 이론이 시간과 장소에 따른 자살률의 변화와 역사적 시기, 국가, 사회 집단 간의 자살률 차이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해왔으나, 많은 나라에서 나타난 예상치 못한 동향을 설명하는 데 적절치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001년부터 ‘비교역사학적’으로 이 주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잘 알려져 있듯, 뒤르켐은 자살률의 변화가 사회적 통합과 사회적 규제,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뒤르켐에 따르면 통합 정도가 낮을 때, 즉 개인이 사회로부터 소외되면 ‘이기적 자살’이, 통합 정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이타적 자살’이 발생한다. 사회적 규제가 너무 약하면 ‘아노미적 자살’이, 사회적 규제가 과도해지면 ‘숙명적 자살’이 나타난다. 뒤르켐의 이론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로 올수록 집단에 대한 개인의 종속이 약해지면서 ‘이타적 자살’이 사라질 것이고, 사회적 통합과 규제의 끈이 느슨해지면서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그러나 실제 20세기의 마지막 40년 동안 이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던 이타적 자살은 오히려 증가했다. 1963년 불교 승려 틱꽝득이 정부에 대한 항의로 분신자살한 사건을 시작으로, 인도, 베트남,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또한 자살 특공 임무의 형태를 띤 새로운 형태의 이타적 자살이 등장했다. 그리고 서유럽 곳곳에서 가파르게 치솟을 것으로 추정됐던 자살률은 꾸준히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다.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뜻밖의 두 가지 동향은 우리가 지금까지 추종해온 뒤르켐 이론의 한계를 말해준다.
이타적 자살은 사회적 통합이 과도하거나 개인이 특정 집단에 종속된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지난 17~18세기 중국에서 남편이 죽은 뒤 이타적 동기로 목숨을 끊었던 과부와 ‘수절하는 처녀들’은 결코 사회의 요구에 종속된 수동적인 여성들이 아니었다. 이렇듯 저자는 지난 40년간 많은 나라에서 나타난 새로운 동향과 역사학자, 인류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심리학자, 신경생리학자 등 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방대한 새 흐름을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의 구성
저자는 뒤르켐의 이론을 참조하되, 다른 분류를 사용하여 자살을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공격적 자살, 무기로서의 자살로 분류했다.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은 뒤르켐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는 있지만, 이는 ‘누군가를 위한 자살’과 관련되어 있다. 즉 자살을 하게 만든 사회적 원인이 아닌 ‘개인’의 의도에 초점을 맞춘다. 공격적 자살과 무기로서의 자살은 보복으로서의 자살이다. 공격적 자살은 개인적인 이유로 타인을 해치고자 하는 자살이고, 무기로서의 자살은 가미카제와 같이 종교적·정치적인 이유로 하는 자살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자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이 책에서는 자살을 문화적·사회적·정치적 요인, 그리고 심리적·정신의학적 요인을 통해 추적해나간다. 1부는 유럽과 전반적인 서구사회를 살펴본다. 1장은 중세부터 20세기 초까지 장기간에 걸친 유럽의 자살 동향을 다루며, 자살의 대폭적인 증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한다. 2장은 서구사회의 자살 증가를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시작된 수많은 사회적·문화적 변화로 추적한다. 3장은 15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나타난 자살률과 살인율의 반대되는 동향을 비교하고 다양한 해석적 가설을 제시한다. 4장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나치와 소련 정권, 홀로코스트 등 20세기의 사건과 변화들로 인한 자살률의 변화를 밝힌다.
2부는 인도, 중국, 중동 지역을 다룬다. 5장은 인도의 자살 가운데 특히 남편이 죽은 뒤 부인이 따라죽는 ‘사티’ 풍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6장은 명나라와 청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가 중국의 방대한 문화적 레퍼토리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마지막 7장은 중동에서 자살 특공 임무가 생겨나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현상을 분석한다.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의 자살: ‘최대의 죄악이자 가장 중대한 범죄’
19세기 초부터 많은 학자들은 유럽 등 모든 문명국에서 자살률이 증가했고, 그 원인을 산업혁명으로 봤다. 하지만 실제 산업혁명의 발원지인 영국에서는 오히려 자살률이 더디게 증가했으며 미국의 자살률은 낮아지는 등 반대의 양상을 보였다. 그렇다면 유럽의 자살률은 언제부터 증가했을까? 중세에 자살은 보통 영웅주의나 순교로 여겨졌다. 이후 17세기 후반부터 서유럽의 자살률이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영국 상류층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 현상을 학자들은 ‘영국병’이라 부르며 하나의 전염병으로 봤다. 영국병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으로 퍼져나갔고, 급기야 1797년 파리의 자살률은 런던의 자살률(10만 명당 9명)보다 2~3배 높아졌고, 1782년에는 10만 명당 28명, 1793년에는 230명으로 급증했다. 산업화 및 도시화 외에 또 어떤 요인이 자살률 증가를 불러온 걸까? 저자는 자살자에 대한 엄격한 규제 체제가 붕괴되면서 자살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가설을 세웠다.
과거 유럽은 철저한 기독교 사회였고,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범죄이자 죄악이자 영혼과 육체의 이중적 살해로 여겼다. 종교 당국 및 시 당국은 자살(시도)자들에게 엄격한 처벌을 내렸다. 구체적인 방법은 나라마다 상이했지만, 유럽 전반에 공통된 현상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1786년 영국에서는 이런 설교가 들려왔다. “자살자들은 기독교식으로 매장될 수 없으며 재산이 몰수되고 가족들은 뭇 사람의 질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충격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어떤 지역에서는 자살자의 시체를 교수형에 처하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시체를 거리에 질질 끌고 다니며 오욕과 불명예를 안겨줄 것이다.” 당시 유럽인들이 자살이 극악무도한 죄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리와 광장에서 벌어지는 시체에 대한 응징, 자살한 후에도 재판에 회부되어 교수형에 처해지는 광경뿐 아니라 재산이 몰수되고 남겨진 가족들이 느끼는 절망과 굴욕은 자살을 하면 치러야 하는 대가였다.
그러다 16세기 중반과 17세기에 이르면 문화적 엘리트층 사이에서 자살에 대한 기독교 윤리가 처음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귀족, 지식인, 교육 수준이 높은 부르주아 가운데서 자살을 옹호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시기는 달랐지만 토머스 모어, 미셸 몽테뉴, 몽테스키외도 각자 작품을 통해 자살에 대한 입장을 드러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특히 문학작품을 통해서였다. 셰익스피어는 자살에 지대한 흥미를 느꼈고, 그의 작품 32편에서 자살을 소재로 사용했으며 무려 24명의 등장인물을 자살하게 했다.
현재 남아 있는 문서들을 보면, 자살자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내렸던 재판은 18세기 전반이 되면서 훨씬 드물게 열렸고 말경에는 거의 사라졌다. 이렇듯 유럽사회에서 자살에 대한 처벌은 점점 약화되었으며, ‘목숨을 끊을 자유’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상류층에서 시작해 점차 각계각층으로, 개인의 새로운 권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살인과 자살, 그리고 자살률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
1786년 로마를 방문한 괴테는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반면, 자살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살인이 자살보다 많은 것은 당시 유럽사회의 공통된 현상이었다. 당시 살인이 자살보다 빈번했던 이유는 자살을 살인보다 훨씬 더 강하게 억제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