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곳에서는 무엇도 썩지 않아. 우리가 묻은 시체까지도…….” 북유럽 스릴러의 가능성을 확장시킨 놀라운 데뷔작 피 한 방울 없이 소름 끼치는 스릴러 북유럽 스릴러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온 《링곤베리 소녀》를 통해 단연 두드러지는 재능을 선보인 수산네 얀손은 그간의 작품 이력을 보면 주간지에 기고한 중·단편 범죄소설이 전부인 신인 작가다. 스웨덴과 미국을 오가며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저널리즘을 공부한 그는 특히 탐사보도를 통해 문화·예술 분야의 최근 이슈를 다루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날카롭고 섬세하게 사건과 사람을 조망하는 시선을 별렀다. 의도한 바에 맞춰 자연에서 예술을 포착하는 사진기자로서 경험을 ‘사건 해결’이라는 장르적 매력에 녹여낸 첫 장편소설 《링곤베리 소녀》는 출간 즉시 스웨덴에서 화제를 일으키며 전 세계 24개국에 출간 계약되었다. 수많은 스릴러 소설 중에서도 남다른 배경과 소재를 이용한 데뷔작으로 북유럽 스릴러의 경계를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수산네 얀손은 독자들의 많은 기대를 받으며 후속작 집필 중에 있다. 적막하고 건조한 도시에서 울려 퍼지는 총성을 떠올리게 하는 북유럽 스릴러는 주로 마약과 살인 등의 범죄를 적나라하게 그려왔다. 신작 《링곤베리 소녀》는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늪과 숲으로 유명한 조그마한 마을을 배경으로 해, 북유럽 소설의 배경이 되곤 하는 잿빛 도시 혹은 눈으로 덮인 자연에서 느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작가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지 않은 늪지를 안개가 자욱하고 통제할 수 없는 신비로운 땅으로 묘사,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잔인하지만 전 세계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인신공양이라는 풍습을 소재로 기이함을 더해 늪지 서스펜스라는 장르적 재미를 확보했다. 그리고 산소가 결핍된 늪 속에서 자연 방부처리되어 마치 잠에 빠진 듯한 ‘슾지 시신’을 소재로 이용, 피 한 방울 없는 죽음을 묘사해 오싹한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늪지는 여전히 제물에 굶주린 걸까 혹은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의 제의일까 14년 전, 모종의 이유로 고향을 떠났던 나탈리에는 생물학을 전공하던 중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늪지 연구차 돌아온다. 그러나 연구보다는 과거의 진실을 알고 싶어서 돌아왔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러던 중 근처 예술학교 학생 요한네스와 가까워지고, 함께 밤을 보낸다. 복잡한 마음에 나탈리에가 요한네스를 피하던 어느 날, 요한네스는 어김없이 조깅을 하며 늪지로 향하고 얼마 뒤 갑작스럽게 날씨가 변한 것을 알아차린 나탈리에는 황급히 그를 찾으러 나간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고 쓰러진 채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요한네스였다. 한편, 세계적인 사진작가 마야는 늪지의 풍경과 그곳에 가라앉은 것들에 관심이 많다. 경찰을 도와 요한네스 사건 현장을 카메라에 담던 중 수풀에 몸을 숨긴 듯한 사람을 발견하고, 기원전 시신인 ‘링곤베리 소녀’와 요한네스 사건 사이에 기묘한 연결 고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사건 현장 부근에서 무언가에 걸려 넘어진 마야는 그것이 시신이 떠오르지 않게 고정하는 장대임을 깨닫는다. 조사를 진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늪지에서는 지난 14년 동안 실종되었던 사람들의 시신이 연이어 발견된다. ‘링곤베리 소녀’는 기원전 300년 늪지에 어떤 강력한 존재가 깃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평온을 기원하며 제물로 바친 아이가 산소가 부족한 늪에 가라앉아 거의 부패되지 않은 채 미라가 되어 발견된 시신을 부르는 이름이다. 마야는 스웨덴의 선진 문화가 영적 세상를 믿지 않는 이성적인 문화라고 자신하지만 고고학자인 사만타의 대답처럼 영적 세상과 관계없는 문화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동물적인 본능에서부터 시작된 공포는 상상을 통해 증폭되어 유령, 굴, 언데드, 악마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인간들을 위협해왔다. 공포에 잠식되어 무언이든 희생시켜 스스로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심리와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공포의 대상이 된 늪지대를 뛰어난 수준으로 묘사한 이 책은 늪지에 깃든 존재처럼 독자들을 매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