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일본, 책 읽는 국민 태어나다
책 읽기, 멀찍이 앞선 이웃나라 일본
“책은 정신의 음식이다”(소크라테스), “방에 서적이 없는 것은 몸에 영혼이 없는 것과 같다”(키케로), “자손에게 만금을 물려준다 해도 그것은 한 권의 경전을 주는 것만 못하다.”(한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은 언제나 명징한 삶을 위한 최고의 도우미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아니, 단순한 도우미가 아니다. 책은 인쇄물로 유통되는 형태의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 삶 자체이자(클래런스 데이), 인간의 무수한 정신을 담은 그릇으로서 인간과 같은 존재라고 칭송받기까지 한다(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책이 지니는 이 같은 중요성 때문인지 국가에서도 책 읽기를 ‘당위’의 차원에서 논하며 각종 지원책을 쏟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독서는 각종 다른 오락거리에 밀려 문화생활의 후순위를 점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40% 정도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청의 ‘2009년 사회조사’ 결과는 이러한 우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어떤가. 초등학생의 연간 도서관 대출 건수가 1인 평균 35.9권(열흘에 한 권씩 읽음)으로 53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일본 문부과학성 사회교육조사). 너무나 대조적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는가. 인터넷 등으로 여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40%), 시간이 부족해서(38.3%) 책을 읽지 않는다는 우리나라 국민(2008년 국민독서실태조사)과 출퇴근 시간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일본 국민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1900년대 초 일본인, 독서 습관을 익히다
《독서국민의 탄생 ― 근대 일본, 책 읽는 국민을 만들다‘?書?民’の誕生―明治30年代の活字メディアと?書文化》는 이러한 의문에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저자 나가미네 시게토시永嶺重敏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본의 독서 문화를 분석하면서 당시 일본인이 활자미디어의 전국 유통, 사람들의 이동성 증가, 다양한 독서 장치의 보급을 통해 독서 습관을 익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자신이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국민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일본’이라는 국민국가의 형성에 ‘독서’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해당 시기 일본인의 독서 문화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활자미디어를 읽을 수 있었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활자미디어를 일상적으로 읽는 독서 습관을 가진 독자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다시 말해 독서 습관의 형성에 더욱 주목한다. 독서 습관을 몸에 익힌 독자층의 형성, 이것이 곧 이 책에서 말하는 ‘독서국민의 탄생’이다. 일본인의 독서국민화, 그것이 바로 현재의 일본을 독서 강국으로 만든 토대다. 독서가 더 이상 개인의 취미가 아닌 당위로 인식되는 평생학습의 시기, 일본의 독서국민 형성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일본의 독서 문화, 메이지 30년대에 전환점을 이루다
독서국민, 활자미디어를 일상적으로 읽는 습관이 몸에 밴 국민
많은 이들이 공부 때문에, 일 때문에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핑계’일 뿐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러한 핑계의 원인을 독서 습관의 결여에서 찾는다. 독서가 습관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바쁜 시간’ 쪼개가면서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리나라의 모습과 달리 일본 국민은 일찍부터 책 읽는 습관을 몸에 익혔다. 저자는 그 시기를 메이지 30년대(1897~1906)로 본다. 메이지 30년대에 일본의 독서 문화가 중요한 전환점을 통과했으며, 그 전환점을 분수령으로 ‘독서국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독서국민reading nation’이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우치다 로앙內田魯庵(1868~1929)은 다이쇼 원년(1912)에 쓴 수필 첫머리에서 ‘독서국민’을 ‘책을 읽는 습관이 몸에 밴 국민’의 의미로 사용한다. 저자는 이를 좀 더 일반화해서 ‘신문이나 잡지, 소설 등 활자미디어를 일상적으로 읽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을 ‘독서국민’이라고 정의한다.
독서국민, 어떻게 무엇을 통해 만들어졌나
독서국민 형성의 첫째 요건은 읽고 쓰는 능력과 독서 습관의 보급이다. 메이지 시대 국민의 대다수는 소학교 졸업자였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졸업 후 읽고 쓰는 능력이 매우 저하되어 독서 습관을 기르지 못한다. 이에 따라 주로 중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고 중산층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독서국민의 자생적 성장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들 중산층만으로 일본 국가가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 의식 함양은 전 국민에 해당되어야 했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작은 도서관의 지방 설립 등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독서회, 순회문고 사업 등을 통해 지방 독자를 확보하고자 했던 언론사들의 자본주의적 경쟁도 독서국민 형성에 한 몫 한다.
독서국민 형성에 필수불가결한 둘째 요건은, 독서 습관을 획득한 사람들에게 읽어야 할 독서 재료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일이다. 낡은 사서오경이 아닌, 중앙의 출판 자본에 의해 발행되고 근대 일본어로 쓰였으며 근대적 국민성이 각인된 새로운 활자미디어를 공급해야 했다. 또한 그것이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유통될 수 있어야 했다. 독서국민은 독서 습관의 보급과 균질적인 근대 활자미디어의 전국 유통이라는 이 두 요건이 결합함으로써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메이지 30년대였다.
《독서국민의 탄생》,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저자가 메이지 30년대에 주목하는 이유는 해당 시기에 ‘활자미디어의 전국 유통’과 ‘여행 독자의 전국 이동’, ‘독서 장치의 전국 보급’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독서국민은 메이지 30년대에 거의 동시적으로 생겨난 독서 문화 가운데 이 세 가지 새로운 전국적 요소가 융합되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활자미디어의 유통
제1부에서는 활자미디어의 전국 유통망 형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전국 독서권의 형성을 추적한다.
1장 <전국 독서권의 탄생>에서는 메이지 30년대 활자미디어의 유통 구조 변화를 분석한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메이지 30년대 전후부터 격화되는, 신문?잡지?서적 등 모든 영역에 걸친 중앙 활자미디어의 지방 진출 공세다. 철도망이 전국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과거 삼도三都(교토?오사카?에도) 중심이던 지방 출판 유통 체제는 도쿄가 거대한 중심이 되는 중앙 집중형 유통 체제로 재편되어간다. 철도와 함께 활자미디어의 전국 유통망 형성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된 것은 신문?출판의 유통과 관련된 기업가의 등장이다. 이들은 눈앞에 펼쳐진 신문?출판의 전국 시장을 새로운 사업 기회로 인식, 과감하게 뛰어들어 동업자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의욕적으로 독자를 확보해나갔다. 중앙 활자미디어의 전국 유통망은 이처럼 메이지 20~30년대에 철도라는 하드웨어와 출판유통업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두 축이 되어 형성될 수 있었다.
2장 에서는 신문사?출판사가 메이지 30~40년대에 독서 과소過疎 지역에 거주하는 지방 독자를 지원하려는 목적 하에 추진한 독서회 활동을 다룬다. 이러한 지방 독자 지원 활동은, 주변부로 소외된 지방 독자를 우편망을 통해 전국 독서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중앙 신문.출판 자본의 통합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동하는 독자
2부의 주인공은 이동하는 독자인 여행자다. 메이지 30년대의 확대된 철도망은 연간 1억 명의 철도 여행자를 배출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차내 독자’라는 근대의 새로운 독자 유형과 여행 독서 시장을 탄생시켰다.
3장 <차내 독자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에서는 차내 독자의 탄생을 다룬다. 메이지 시대에 인력거, 승합마차, 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