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마티 앳 시리즈 5권 『우울: 공적 감정』 출간 “이 책은 우울을 사적 영역에서 꺼내 우리 시대의 복잡한 정치 속으로 불러낸다. 츠베트코비치는 회고록, 문화사 및 의학사, 문학과 이론적 논의를 엮어내면서 몸, 인지, 정동에 대해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의 글쓰기와 성찰을 시도한다.”—메리앤 허슈 이제는 우울을 공적 감정으로 다루자 한국 사회의 심각한 ‘우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년 넘게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울증 유병률도 매우 높다. 2024년 우리나라 성인 절반 이상이 울분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고,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지난 1년간 극심한 스트레스, 지속적인 우울감 등 정신 건강 문제를 겪었다. 정신과 진료 환자 수는 지난해 434만여 명으로 2020년에 비해 약 90만 명이 급증했고, 우울(증)에 관한 서사에서는 ‘병식’을 갖고 의학적 치료를 통해 ‘극복’하기를 권장하는 목소리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우울에 대해 충분히 경험하고 탐구하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현재의 치료 문화는 우울한 사람이 양산되는 흐름을 막지 못한다. 그 속에서 우울이라는 감정과 감각은 개인화되고 의료화되고 탈정치화되며, 이는 정상성 규범을 공고히 하고 우울한 자아를 자기계발 영역에 의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는 F코드 진단서, 약물, 상담, 자조 모임 등을 이용해 빈틈없이 ‘멘탈관리’도 해내야 하는 각자도생의 세계다. 앤 츠베트코비치의 『우울: 공적 감정』은 우울을 단순히 개인적이고 병리적인 상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공적 감정으로 개념화한다. 우울은 이 시대를 구성하는 핵심 정서다. 또한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 신자유주의의 압박, 노예무역·원주민 학살·성차별 등 폭력적인 역사 속에서 형성된 감각이다. 츠베트코비치는 여러 분야의 문헌을 살피고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활용하여 우울을 개인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사고하고 정치적으로 조직해야 할 정동적 경험으로 재해석하고, 정신의학과 임상심리학을 중심으로 한 주류 정신건강 담론에 도전한다. 퍼블릭 필링스 프로젝트, 일상의 정동으로 신자유주의 문화정치를 들여다보다 츠베트코비치의 작업 중심에는 로런 벌랜트, 헤더 러브, 데버라 굴드 등과 함께 2001년 9·11이 발생한 즈음에 결성한 ‘퍼블릭 필링스’(Public Feelings) 프로젝트가 있다. 이들은 감정과 일상의 경험을 학문적 분석의 주요 대상으로 삼고, 감정도 지식 생산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해왔다. 또한 감정을 배제하기보다는 긍정적 감정(낙관, 행복, 동기부여, 향상심 등)만을 강조하며 부정적 감정(불안, 수치심, 혐오, 공포 등)은 비정상적이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취급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거부한다. “나쁜 느낌은 실제로 변화의 토대가 될 수 있다. … 이 책은 우울을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희망과 심지어 행복도 다룬다”(19). 퀴어 페미니즘과 정동 이론의 중요한 교차점을 이루고 있는 츠베트코비치의 저작은 더 근본적이고 고착된 이분법을 의문시하고 흩트리는 데로 나아간다.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것, 영적 위기와 세속적 번아웃, 경험 및 감각과 이론, 생산성과 무기력, 낙관과 비관에 대한 이원론적 구분을 벗어나, 쉽게 극복을 말하는 대신 우울 자체의 고유한 특성과 그에 내재된 생산적 가능성을 탐색해가는 것이다. 특히 「서론」은 이 책의 요지뿐 아니라, 퀴어 정동 이론의 지형과 ‘정동적 전환’을 주창하는 연구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도 탁월한 글이다. 자전적 에세이의 확장, 경계를 넘는 글쓰기 실험 주류 담론이 우울을 다루는 방식을 넘어서기 위해 이 책은 형식과 스타일 면에서도 기존의 학술 연구나 비평의 한계 바깥으로 전진한다. 츠베트코비치는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시기에 겪은 첫 우울 삽화에서 시작해 자신의 우울 경험을 섬세하게 기록한다. 무기력, 불안,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한 고투, 장보기의 고통, 무엇도 쓸 수 없는 답보상태… 온몸으로, 마음으로 겪는 우울의 생생한 현장이 펼쳐진다. 아버지의 조울증과 아메리칸 드림의 관계, 이민자 가족으로서의 기억, 정착민 식민주의에 연루된 백인 중산층으로서 고향 땅에 대한 복합적 감정, 퀴어 커뮤니티에서 받은 돌봄 등이 한 개인이 겪은 우울 경험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그뿐 아니라 기업화된 대학, 경쟁과 능력주의에 붙들린 학계에서 느끼는 고단함, 무력증, 성취 압박을 솔직하게 파고든다. 이런 당사자로서 말하기는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어떻게 심리적 고통을 만들어내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의 역할을 한다. 저자는 자기 경험을 생물학적 인과(유전자 또는 호르몬)로 설명하지 않으며, 개인 서사를 하나의 정치적 서사로 전환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럼으로써 1부의 자전적 에세이와 2부의 비평 에세이는 에세이 장르를 “사변적 사유를 위한 공적 장르이기를 열망하는 확장된 글쓰기의 형태”(54)로 실험한다. 동시에 정동 이론이 분석적 도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몸의 감각, 삶의 감각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형식이 될 수 있음을 보인다. 이런 글쓰기 실험과 이런 시도에 대한 저자 자신의 비평은 근년간 양적·질적 확장을 이뤄온 국내 에세이 출판을 정확하게 성찰하고, 다양한 질병 서사와 소수자들의 에세이를 정당하게 비평하는 데 꼭 필요한 목소리이기도 하다. 우울의 역사는 어떻게 지워지고 또 표현되는가 이 책이 수행하는 문화연구의 고유함은 츠베트코비치가 구축해온 ‘우울의 아카이브’에서 나온다. 2부는 우울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표현되고 형상화되는지를 분석한다. 기독교 문헌, 19세기 소설부터 신노예서사까지의 문학작품, 퀴어·페미니스트·아프리카 디아스포라 등 다양한 주체들의 회고록, 주류 미술사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수공예 작가들의 작업 등 대문자 역사에서 배제되기 쉬운 것들을 비공식적이고 감각적인 형태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아카이브가 그 기반이다. 예컨대 2부 1장은 우울이라 할 만한 증상을 다룬 기록으로 아케디아(“우울과 유사한 영적 절망”, 56)에 관한 초기 기독교 문헌부터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을 비롯해 대중적·비평적 찬사를 고루 받은 현대의 우울 회고록과 대중 의학서를 살펴본다. 이렇게 우울을 논하는 여러 종류의 학문적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동시대 우울이 놓여 있는 복잡한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지워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장에서는 식민주의, 노예제, 집단학살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우울을 다룬다. 츠베트코비치는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 연구자인 세이디야 하트먼과 재키 앨리그잰더의 저작을 통해 두 사람이 겪는 답보상태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의 우울에는 노예제로 인한 언어상실의 상태와 ‘정치적 우울’이 수반된다. 물리적 폭력과 억압이 자행된 시점은 먼 과거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겪는 일상적 인종차별뿐 아니라, 미국 문화에도 아프리카 토착문화에도 연결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절망 역시 깊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그저 ‘우울증’이라 명명할 때, “지리적·정치적 박탈의 역사”(58)가 삭제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기괴하고 과잉되고 사랑스러운 퀴어한 것들과 연결되기 이어서 저자는 우울을 수용하면서도 완화해가는 삶을 연습하고 시도하기 위해 퀴어 문화를 활용한다. 그가 만들어온 퀴어 아카이브에는 모성 멜로드라마적 카바레 공연, 퀴어 펨 드래그 퍼포먼스, ‘뜨개질 폭격’ 실천들, 거대한 뜨개 설치로 회복적 공간을 구성하는 실라 페페, 과잉된 질감과 색채로 괴이하지만 사랑스러움을 지닌 레즈비언 괴물들을 창조한 앨리슨 미첼, 다양한 자전적 영상 작업 등이 소장되어 있다. 수공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