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진정한 판타지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이 땅의 모든 생명에게 바치는 이야기! 활자화된, 그러나 무엇보다 눈부신 시각적 세계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원령공주(もののけ姫, 모노노케 히메)]라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일본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화려한 색채감이 돋보이는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흡입력 있는 스토리와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의 구현이 장점으로 꼽힌다. 덕분에 이 작품은 국내에서 마니아층을 형성함은 물론,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적 한계에서 벗어나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우에하시 나호코의 《사슴의 왕》을 읽다 보면 [원령공주]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두 작품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으며, 제작 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원령공주]는 영상으로, 《사슴의 왕》은 종이 위의 활자로 대중과 만난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그것을 접하는 순간, 하나의 눈부신 세계를 보게 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만큼 두 작품 모두 각자가 담고 있는 판타지 세계를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사슴의 왕》에서 돋보이는 것은 바로 ‘묘사’의 힘이다.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공간과 인물들의 행동 및 심리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굉장히 세밀하다. 따라서 소설을 읽는 내내 작가가 써내려가는 숲과 마을과 인물들, 그리고 벌어지는 사건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이미지로 그려진다. 작가는 단순히 이야기만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소설 속 모든 장면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도록 서술 방식에 공을 들인다. 때문에 소설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한 편의 아름답고 웅장한 애니메이션으로 재생되며, 이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는 동시에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인간의 몸속 세계와 전염병에 대한 의학적 접근 《사슴의 왕》의 작가 우에하시 나호코는 소설가이자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학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이러한 경험은 소설 속에서 소수민족의 생활과 의식, 세계관의 설정 등에 현실성을 부여하면서 사실적인 판타지를 그려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작가 후기에서도 밝히고 있듯, 실증적인 면을 강조하는 작가의 노력은 소설 속 사건들의 현실성을 극대화한다. 특히 《사슴의 왕》 속에서 서술하고 있는 병소(病素)에 관한 설명, 전염병의 특성과 전이 과정, 인간의 몸속 세계에 대한 고찰 등은 작가의 세심한 주의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작가는 실제 의사인 사촌 오빠의 도움을 받으며 소설 내용을 검증한다. 그뿐 아니라 여러 생물학 서적을 읽으면서 자신이 쓰고 있는 내용들에 대한 실증적 근거를 찾는 동시에,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묘사한다.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제국을 위기로 몰아넣는 ‘흑랑열’이라는 전염병이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가상의 질병이 아닌, 현실 속에서 다른 형태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현실성은 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상처받은 자들의 몸부림과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 우리는 저마다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크기나 가치, 기간에 상관없이 모두 우리들 가슴속에 상처를 남긴다. 이때 생긴 상처는 평상시에는 잊고 있다가도 순간순간 떠오르고, 그때마다 우리는 그 잃어버린 것과 그것이 있던, 지금은 비어 있는 공백을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 공백이 사라지거나(사라졌다고 믿거나) 다른 것으로 채워지기 전까지는 계속 괴로울 수밖에 없다. 《사슴의 왕》을 이끌어가는 주체들도 무엇을 잃어버린 상처받은 자들이다. 누구는 아내와 자식을 잃고, 누구는 부모와 형제를 잃었으며, 누구는 고향과 나라를 잃었고, 개중에는 이 모든 것을 다 잃었다. 물론 그들이 느끼는 분노와 슬픔과 좌절은 비단 소설 속 세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느꼈고, 느끼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각각의 등장인물의 행동에 쉽게 몰입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결코 낯설다거나 남의 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때로는 파괴적이고, 과격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그들의 감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그래서 우리는 더욱 그들에게 애정을 갖으며 빠져들게 된다. 《사슴의 왕》에 등장하는 ‘반’과 ‘유나’, ‘사에’의 만남은 매우 흥미롭다. 이 세 사람의 만남은 상당히 이질적이지만 소설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반과 유나는 죽음의 시간을 견디며 함께 살아남은 ‘동지 관계’이며, 반과 사에는 ‘쫓고 쫓기는 관계’이다. 그리고 남남인 유나와 사에는 여러 사건을 함께하면서 ‘모녀 관계’ 이상으로 친밀하다. 공통적으로 그들 모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상처받은 자’이지만, 함께하는 동안 혈연보다 더 끈끈한 가족 관계를 형성한다. 물론 그러한 관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그들이 맺어가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즉 기존의 도식화된 가족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직시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운명공동체’이다. 죽은 아내와 아이를 향한 그리움과 마주하면서 유나를 딸로서 대하는 반과 언제나 그와 찰싹 붙어 있으려 하는 유나,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자석에 이끌리듯 함께하는 사에. 이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가족’은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을 선사하면서 지금 우리가 지니고 있는 상처를 내려놓게 만든다. 《사슴의 왕》은 상ㆍ하권으로 구성되었음에도 결코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작가의 세밀한 묘사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구성, 적재적소에서 터지는 유머가 마지막 책장까지 확인하게 만든다. 그리고 작가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 이 책은 허구적 상상력에만 기댄 익숙한 판타지 소설이 아닌, 잘 짜인 영화 같은 새로운 판타지 소설로 탄생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전혀 새로운, 진정한 판타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