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의 '위험한' 평화헌법

C. 더글러스 러미스
2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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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는 한 명의 ‘정치사상가’로서 ‘비폭력 독립운동’에서 ‘보통의 폭력국가’를 제안했다. 그러나 간디의 이 최후의 헌법안은 인도사람들(국민회의)에 의해 무시되고, 역사 속에 묻혀졌다. 그 이유는 간디의 생각은 바야흐로 독립한 인도를 서구 근대국가를 모방하여 현대적 산업국가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너무도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누구도 실현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향이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지만, 국가에 관한 기본상식을 뒤엎을 수 있고, 또 실현 가능하기도 한 이상향은 진실로 두려운 것이고, 따라서 금기시되어야 했다. 그에 따라서 간디는 한 명의 ‘정치사상가’로서 ‘제거’되고, 성인(聖人)으로 추켜올려져, 우리 범인(凡人)의 세계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져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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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책머리에 3 제1장 최대의 금기 9 사상 최대의 비폭력 세력 | 토론의 부재 그들의 헌법, 우리들의 헌법 | 부인(否認)상태 | 네루의 견해 “간디는 국가폭력을 인정했다”라는 논리 | 부인상태의 구조 제2장 ‘환상적’ 헌법론의 전모 31 간디의 ‘환상적’ 헌법안과의 만남 | 간디의 헌법안은 유토피아적인 게 아니다 간디와 마키아벨리 | “나는 예언자가 아니다, 나는 현실적 이상주의자이다” 비협력 | 비폭력 | 간디와 헌법 constitution① 체질 | constitution② 조직의 구성 constitution③ 영국 헌법 | constitution④ 신(神)의 뜻 constitution⑤ 조직의 회칙 | constitution⑥ 혁명 전략 사회의 신체로서의 constitution 70만 개의 마을 | 판차야트 ― 근원적인 주권재민 ※ 슈리만 나라얀 아가르왈의 《자유인도를 위한 간디의 헌법안》 중에서 제3장 일어난 일, 일어나지 않은 일 75 간디의 신헌법안은 평화헌법이었다 | 두 종류의 평화헌법 일어나지 않은 일 | 일어난 것 | 간디의 최후의 헌법안 | 창립과 희생 보론 래디컬 데모크라시와 시민사회 101 ― 간디의 유산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간디의 유산 | 현대세계의 시민사회 | 시민사회의 반대는? 시민사회와 일본국 헌법 | 시민사회는 비폭력이다 주권재민 재고(再考) | 시민사회와 언어 | 일본의 시민사회는? 간디는 유죄였다 맺음말 140 부록 적극적 평화? 146 왜 제국이면 안되는가 168 제국의 논리, 미국의 전쟁경제 190 역자 후기 214

Description

새로운 국가 모델, 판차야트라지 근대국가의 정체성(적어도 표방하는)을 알고자 한다면 그 나라의 헌법을 살펴보면 된다. 헌법은 국가의 조직 및 작용의 기본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전쟁과 독립운동으로 세계가 폭력에 휩싸여 있었을 때, 인도는 비폭력 저항을 전략의 중심으로 삼고 당시에 무적이라고 생각되던 대영제국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인도 독립 과정에서 폭력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되었던 것은 분명히 국민회의에 의한 비폭력 투쟁이었으며, 인도가 독립을 성취했을 때 정권을 잡은 것도 국민회의였다. 그런데 한편 독립이 쟁취된 이 새로운 인도의 헌법을 만들기 위해 구성된 헌법제정위원회(국민회의가 전부는 아니지만 중심 세력이었던)가 만든 헌법은 군사력을 인정하고 전쟁을 용인하는, 즉 ‘국가가 정당한 폭력을 독점’하는 ‘보통의 국가’의 헌법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러미스 교수의 의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왜냐하면 ‘국가는 군대를 보유한다’는 세계의 ‘상식’을 부정하고, 비폭력을 제창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현·실천해온 조직인 국민회의가, 아무런 토론조차 없이 비폭력이라는 그들의 근본 원칙을 방기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의문을 풀기 위한 조사과정에서 러미스 교수는 간디의 제자였던 슈리만 나라얀 아가르왈이 쓴 《자유인도를 위한 간디의 헌법안(Gandhian Constitution for Free India)》이라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된다. 간디에게는 비폭력이 단순히 인도의 독립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독립 인도(국가)의 모습과도 밀접히 연관된 것이었다. 따라서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의 인도(국가)의 모습은 ‘국가가 정당한 폭력을 독점’하는 ‘보통의 국가’일 수는 없었다. 국가는 본질적으로 폭력적 조직이며 비폭력적인 국가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점에서 간디는 주류 정치학, 정치학자들과 견해를 같이했다. 달랐던 것은 간디는 그 해결책으로서, ‘국가’가 아닌, ‘국가’와는 근원적으로 다른 정치형태를 제안하였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인도의 70만 개 마을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마을 공화국’이 되어, 인도국가는 그 ‘마을 공화국’들의 연합체가 된다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국가 모델이었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70만 개 마을 ‘공동체’가 아니라, 마을 ‘공화국’이라는 점이다. 주권이 ‘인민’이라는 막연한 존재에 있는 게 아니라 보다 확실한 조직, 즉 각각의 마을에 있다. 이 국가 모델에서 “주권재민은 국가권력을 정당화하는 신화가 아니라 정치사회의 구조에 구체적으로 들어가 있는 원리”(본문 67쪽)이다. 마을이 장악하는 주권은 이론상의 존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의 힘이었다. 동시에 간디의 헌법안은 ‘평화헌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여기서 구상하고 있는 정치형태는 그 구조 자체로 인하여 전쟁의 가능성이 처음부터 배제되기 때문이다. 간디의 헌법안에는 군사력만이 아니라 경찰의 강제력도, 즉 국가에 의한 일체의 ‘정당한 폭력’, 공권력 자체가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비폭력 독립운동’에서 ‘보통의 폭력국가’로 간디는 한 명의 ‘정치사상가’로서 이것을 제안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는 이 구상이 실현 가능하다고 진실로 믿었다는 말이다. 인도의 비폭력 독립운동은 틀림없는 현실적인 힘이었다. 1921년에 간디가 중심이 되어 국민회의가 세웠던 계획은, 밑으로부터 마을사람들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여 정부의 권위를 차츰 엷어지게 하여 최후에는 영국 식민지정부를 무력하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간디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것도 1947년 독립 후의 인도정부에 대해서도 마을로 권력을 돌리는 운동을 부활시키자는 것이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런데 왜 간디의 이 최후의 헌법안은 인도사람들(국민회의)에 의해 무시되고, 역사 속에 묻혀졌을까. 그 이유는 간디의 생각은 바야흐로 독립한 인도를 서구 근대국가를 모방하여 현대적 산업국가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너무도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누구도 실현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향이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지만, 국가에 관한 기본상식을 뒤엎을 수 있고, 또 실현 가능하기도 한 이상향은 진실로 두려운 것이고, 따라서 금기시되어야 했다. 그에 따라서 간디는 한 명의 ‘정치사상가’로서 ‘제거’되고, 성인(聖人)으로 추켜올려져, 우리 범인(凡人)의 세계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져야 했던 것이다. 이것을 러미스 교수는 국가·국가권력에 관한 한 일류 사상가인 마키아벨리가 새로운 정체(政體)의 창립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었던 ‘원시적 희생’이었다고 말한다. “간디의 영향 밑에서 인도라는 독립국가는 거의 비폭력적으로 성립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민회의가 ‘비폭력 독립운동’의 단계로부터 ‘보통의 폭력국가’로 이행하는 데에는 역시 인신공희(人身供犧)가 필요했다. 그때 제물로 바쳐진 것은 거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바로 그 인물이었다. 즉 그 비폭력운동의 지도자 자신 말이다.”(본문 145쪽) 간디의 유산(遺産) “이 주권은 대단히 역동적인 힘으로, 사회 속의 불평등, 부정, 착취, 탄압에 대해서 끊임없이 싸우는 힘이 된다. 그리고 마을의 자립은 정치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경제와 교육을 포함한 온갖 영역에서 철저하게 행해진다.”(본문 68쪽) “실제로, 권력은 본래 민중에게 있는 것 혹은 민중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의 운동은 권력자에게 청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을 직접 되찾기 위한 행동이 된다. 스트라이크도 그런 것이다. 보이콧도 그런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도, 식민지 제도에 대한 비협력운동도 그리고 풀뿌리의 스와라지도 그런 것이다. (…) 그러나 거꾸로, 설령 한 사람이라도 협력을 그만두는 것은 의미가 있다. 자신의 양심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그만둔다, 납득할 수 없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다 등등, 이러한 활동에는 무엇보다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되찾는다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하여 보여줌으로써 모두를 위한 가능성의 영역을 넓히는 데로 이어진다.”(본문 109쪽) 물론 오늘날 국가 형태를 해체하고 마을 중심 정치형태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또한 그것이 꼭 바람직한 것인가도 따져볼 일이다). 그러나 그 근저에 있는 보편적 정치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즉 권력은 그 권력에 의해 휘둘리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협력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는 법칙 말이다. 간디의 독립은 스와라지, 즉 자립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것은 정치적·경제적·정신적 및 윤리적 자립, 즉 인간의 전면적인 자립을 뜻했다. 전(前) 세기의 ‘식민지 제도’는 자취를 감추었을지 몰라도 다른 형태의 ‘식민주의’가 엄연히 살아서, 전세계 풀뿌리 민중의 자립적 삶의 가능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21세기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간디의 사상은 유효할 뿐만 아니라 몹시 긴요한 것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의 현실은 간디가 우려했던 바로 그 현실이 되어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서구식 근대국가 모델을 따라 국가적·국민적 이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부추겨온 결과 지금 세계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근원적인 방향전환 없이는 생태계의 붕괴와 함께 인간적 삶의 전면적 황폐화는 기정사실이다. 지금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는 공존·공생의 논리이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바로 이것을 외치며 다양한 형태의 협동운동, 지역공동체 운동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간디가 생각한 ‘마을 공화국’의 현대판이라고 해석해도 좋지 않을까. 60년도 더 걸려서 간디의 사상은 전세계 민중의 자치·자립·자급운동들 속에서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