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노천명 시인에서 백남준 아티스트까지 예술가의 육필 편지 49편 육필로 쓴 편지에는 글쓴이의 몸 내음이 스며 있다. 작가 박완서, 유치환, 노천명, 이광수, 서정주, 전혜린을 비롯해 백남준, 장영주 등 예술가들의 육필 편지 49편에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이 해설과 감상을 붙였다. 사랑 편지와 가족 편지를 비롯해 문우文友 간에 주고받은 편지, 작가들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연하장, 동판에 뜬 연서 등 이색적인 편지도 볼 수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등이 한국의 글벗에게 보낸 편지도 주목할 만하다. 강인숙 관장은 영인문학관을 운영하며 문인과 예인의 육필 원고와 편지 등을 2만 5천여 점 이상 모았다. 문학평론가로서 작가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는, 편지만으로는 부족한 배경지식과 뒷이야기들을 소개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의미를 더했다. 차마 적지 못한 그리움 한 사람만을 위한 문학 저자는 “편지는 수신인 혼자서만 읽는 호사스런 문학이다. 그것은 혼자서 듣는 오케스트라의 공연과 같다”라고 말한다. 요컨대 예술가들이 쓴 편지를 읽는 것은 그들이 가슴속에 숨겨둔 하나의 ‘작품’을 읽는 것과 같다. 그들의 일상과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는 재미에 글맛이 어우러져 진한 감동과 여운이 남는다. 원본 그대로 실린 편지는 육필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한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밤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눈을 감으면 세상은 당신과 내 가슴속에 잠자고 그럴 땐 이따금 요강 뚜껑으로 물 떠먹던 옛날의 어느 시절인가가 생각나곤 한다. 그때 어떻게 당신과 내가 함께 있지 않고도 불행하지 않았던가. -소설가 박범신이 부인 황정원에게 보낸 편지(30쪽)에서 농밀한 속내가 담긴 육필 편지로 만나는 작가의 내면세계가 낯설고도 친근하다. 저자의 말처럼 “뺄 것은 빼고 보탤 것은 보태는 과정을 겪고 완성된 작품은 흙이 아니라 꽃이어서, 뿌리가 디디고 선 물렁물렁한 토양의 질감, 그 적나라한 작가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줄 수가 없”지만, 편지는 그것이 가능하다. 춘원 이광수가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부인 허영숙을 뒷바라지하며 “이곳은 다 잘 지내니 안심하고 즐겁게 공부하시오. (…) 공부하는 중이니 저금 아니해도 좋소. 학비가 곧 저금이오”라고 쓴 편지나, “부탁이야. 나를 대구로 데려가 주. (…) 한 사람도, 그래 정말이지 한 사람도 내 맘을 붙드는 인간이 여기는 없다” 하고 소설가 최정희에게 떼쓰는 노천명 시인의 편지, 소설가 박경리가 “다름이 아니라, 괴로움 호소할 밖에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하고 잡지사 기자에게 보낸 원고 거절 편지를 읽다 보면 작품만으로는 알 수 없던 작가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속마음을 훔쳐보는 느낌이다. 오래오래 기다리다가 만났어도 또 며칠 만에 떠나보내고 나니 어떻게 된 건지 감정과 시간의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 (…) 줄잡아 10일은 걸려야 할 것인데 바로 3, 4일 전부터 네 편지를 기다리고 있는, 그래서 현주 어미한테 오늘 아침에도 "애비 편지 왔니? 안 왔니?" 하고 물었을 정도다. -시인 박두진이 아들 동설에게 보낸 편지(68쪽)에서 박두진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하던 아들이 휴가를 보내고 간 뒤 금세 또 보고 싶어 “애비 편지 왔니?” 하고 자꾸 묻는다. “편지가 올 때가 정해져 있는 것이 크로노스적 시간의 계율이라면, 떠나자마자 편지를 기다리는 것은 내면적인 시간의 율법이다. 결국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당신이 먼저 쓴 편지가 여기 있다.”(73쪽 「편지를 말하다」에서) “회답할 때 봉투에 ‘김상옥 아버지께’ 이렇게 쓰면 남이 흉을 본다”라며 딸에게 훈수하는 김상옥 시인의 편지나 “책 한 권 조그만 접시 하나에라도 마음을 붙이고”라며 며느리를 걱정하며 쓴 시인 김광균의 편지 등 가족 간에 주고받은 편지에는 격식 없는 이해와 걱정, 삶에 대한 토로, 꾸지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88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아’ 소리가 나올 적이 있을 만큼 아직도 생생하고 예리하게 가슴이 아픕니다. (…) 그런 저에게 수녀님의 존재, 수녀님의 문학은 제가 이 지상에 속해 있다는 걸 가르쳐주셨습니다. (…) 마치 걸음마를 배우듯이 가장 미소한 것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지상에 속했고, 여러 착하고 아름다운 분들과 동행할 수 있는 기쁨을 저에게 가르쳐준 수녀님 감사합니다.” -소설가 박완서가 시인 이해인에게 보낸 편지(98~99쪽)에서 타계한 작가의 편지를 읽으면 자연스레 그를 떠올리고, 문학적 자취를 되짚어보게 된다. 아쉬움과 그리움을 담은 초혼招魂 의식과도 같다. 낡은 서랍 속 뜨거운 마음 편지, 이 시대의 희귀한 문화재 “편지는 그리움을 기어코 동여매려는 자의 수적手迹이다. (…) 문인과 예인의 결곡한 속내라서 육필의 곱살함이 더 황감하다. 한마디로 이 시대의 희귀한 문화재다.”(뒤표지 추천사에서) 피난을 가면서까지 편지 보따리를 들고 다닌 소설가 최정희 같은 문인이 없었다면 우리는 북의 시인 이용악의 육필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기의 기저귓감을 구하지 못해 와이셔츠를 뜯어 기저귀를 만들었다는 일제 말기의 편지다. 한편 소설가 김승옥이 소설가 최정희에게 보낸 엽서는 그림이 반이다. 풍랑이 거친 바다 위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배가 그려져 있다. 날짜는 64년 8월 2일. 「서울 1964년 겨울」이 쓰인 해다. 남도의 작열하는 더위 속에서 보낸 작은 엽서 한 장이 예사롭지 않다. 문인의 행적이 담긴 편지는 작가나 작품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곤 한다. 예술가들의 미묘한 내면세계와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과의 교감의 양식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쉽게 접할 수 없는 예술가들의 육필 편지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 느끼는 아날로그 정서가 뜨겁고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