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냉전시기 한국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해당 시기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답습하듯 양극화되어 있다. 2013년 7월 27일로 정전 60주년을 맞게 된 한국전쟁은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특히 한국전쟁기 미국과 미공군이 수행한 공중폭격에 대한 평가는 더욱 그러하다. 이 책은 한국전쟁기 미공군 공중폭격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분석해 우상화 혹은 악마화되어 있는 미국의 실체를 밝히고 한국전쟁의 참상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김태우(서울대 HK연구교수)의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은 국내 최초로 미공군 최하급단위 임무보고서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한국전쟁기 미공군의 공중폭격에 대한 기존 연구들의 주장을 전복해낸 문제적 저작으로, “전쟁 전시기에 걸쳐 미공군은 군사목표 공격에만 역량을 집중했고 민간지역을 폭격하는 따위는 결코 행하지 않았다”는 미국 측 연구자들의 주장을 강력하게 반박한다. 한국전쟁기 미공군 문서 10만여장을 수집.분석하고 당시의 러시아, 중국, 남북한 문서로 교차분석을 진행한 치밀한 연구의 결과인 이 책은 “한 연구자의 자료수집 능력과 문제의식이 도달한 진실탐구의 깊이와 수준을 동시에 보여준다”(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점에서 한국전쟁 연구의 획기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전쟁사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이자
미국 측 연구에 대한 대한민국 젊은 역사학자의 강력한 반론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은 독창적인 문제의식으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기존의 연구경향을 넘어 지금까지 한국전쟁사 연구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기존의 관련 연구들은 한국전쟁기 미공군 작전의 성과만을 긍정하는 방향과 무차별적 공중폭격의 비인도적 성격만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에 저자는 “전쟁 전시기에 걸쳐 미공군은 군사목표 공격에만 역량을 집중했고 민간지역을 폭격하는 따위는 결코 행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고, 군사적 목표물 공격을 지향한 참전 초기 ‘정밀폭격정책’의 실상과 해당 정책에서 벗어나 ‘무차별폭격’으로 귀결된 배경과 과정을 냉철하게 짚어본다.
이를 위해 저자는 2000년을 전후한 시점부터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NARA)와 미공군역사연구실(AFHRA)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한 한국전쟁기 미공군 문서 약 10만여장을 수집?분석했고, 당대의 러시아, 중국, 남북한 문서와의 교차분석을 통해 전쟁기 유엔 측과 공산 측 주장의 신빙성을 검증했다. 특히 저자가 면밀히 검토한 문서들은 미공군 조종사의 일일임무보고서 단위의 하급문서였다.
하급문서를 살핀 까닭은 한국전쟁기 미공군의 민간지역 폭격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논저의 경우(대표적으로 로버트 F. 푸트렐), 미군과 워싱턴의 고위층 인사들이 작성한 정책문서를 근거로 제시했고, 전쟁 초기부터 무차별폭격이 가해졌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논저의 경우(대표적으로 브루스 커밍스, 존 할리데이), 대부분이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 유럽의 언론기사들을 주요한 근거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논저에는 해당 주장을 제대로 검증해줄 실제 폭격 사례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배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저본이 된 저자의 박사논문(서울대 국사학과)은 발표 당시 “과거사 정리와 관련하여 한국근현대사 연구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성과”라는 호평으로 ‘강만길연구기금’을 받는 등 큰 화제를 낳았다. 저자는 해당 논문을 기초로 하여, 폭격 주체인 미공군 조종사들의 개인정보에서부터 사상에 이르는 종합적인 분석과, 미공군의 폭격이 대량학살 양상으로 나아가는 데 직접적인 원인이 된 ‘초토화정책’과 ‘항공압력전략’에 대한 연구를 더해 이 책을 완성했다.
한국전쟁기 미공군의 폭격정책: ‘군사목표 정밀폭격’에서 ‘초토화정책’으로
이 책은 비행기 발명과 함께 시작된 공중폭격 역사에 대한 개론과 한국전쟁기 공중폭격의 주체인 미공군의 설립과 공중폭격정책 형성과정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다룬 제1부 ‘서막’을 시작으로, 북한과 남한 전역에서 이루어진 폭격의 실제 사례를 면밀히 검토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초기 북한지역 전략폭격과 북한의 대응을 그린 제2부 ‘북폭’, 한국전쟁 초기 미공군의 남한지역 민간인 공격의 배경과 양상에 대한 제3부 ‘평범한 임무’, 1950년 11월 북한지역의 모든 도시와 농촌을 불태워버리기로 결정한 ‘초토화정책’의 배경과 진행과정에 대한 제4부 ‘초토화정책’, 그리고 정전협상이 중국과 미국 간 세력전으로 더디게 진행되는 사이 꾸준히 계속된 폭격, 북한주민들을 죽음의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철도차단작전과 항공압력전략의 성격에 대해 분석한 제5부 ‘협상하며 죽이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저자는 미공군이 초기에 ‘정밀폭격정책’을 지향했음에도 ‘무차별폭격’의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상세히 규명하고, 무차별폭격으로 전이한 미공군의 공중폭격 양상과 정책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49년 미국에서는 전략폭격의 무차별적 성격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때문에 미공군은 향후 전쟁에서 순수 군사목표만을 폭격한다는 원칙을 엄격히 준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발발한 한국전쟁 초기 북한지역 폭격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공군은 ‘군사목표 정밀폭격정책’을 준수했다. 그러나 민간인 희생은 불가피했다.
기술력 부족으로 레이더 조준을 통한 폭격은 오폭률이 높았고, B-29기 등의 전폭기는 항속거리가 짧아 목표지역에서 정찰 후 폭격을 수행하기가 어려웠으며, 전폭기를 목표지역으로 안내.통제하는 전술항공통제씨스템은 불안정했다. 더불어 착륙시 안전을 위해 일단 탑재된 폭탄을 모두 소진해야만 했기에 조종사들은 짧은 시간 내에 육감과 우연, 자의적인 판단에 의지해 표적을 식별.공격해야만 했다. 이러한 기술적인 요인에 더해 저자는 기존 연구를 살펴 폭격 수행자인 미공군 조종사들의 출신계급, 교육 정도와 참전 목적 및 동기, 미공군 내 문화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또한 미공군의 폭격현장 피해분석 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폭격목표에 대한 피해만을 다루고 해당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폭격 성과에 대한 군의 인식 역시 민간인 희생을 야기한 원인이었음을 밝혔다.
이후 남한지역까지 확대된 공중폭격은 이러한 상황에 전쟁에서 최대한 빨리 승리하려는 전술적 목표까지 더해져 무차별폭격 양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전황이 악화되자 1950년 11월 5일 맥아더는 미공군 사령관들에게 북한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도시와 농촌지역 자체를 군사적 목표로 간주하고 소이탄으로 불태워 없애버리라는 공세적 명령을 하달했다. ‘초토화정책’의 시작으로, 더이상 후방이란 없었다. 정전협정이 중국과 미국 간 이해다툼으로 지연되면서 민간인 피해는 지속적으로 늘어만 갔다. 그리고 1953년, 미공군은 ‘항공압력전략’이라는 새로운 공군전략을 실행하게 된다. 이는 공군력에 가해진 기존의 정치적?군사적 제한요소를 해체시키고, 오히려 공군력을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직접 활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공군전략이었다. 북한군에는 치명적인 철도차단작전이 개시되고, 극동공군의 공군력을 ‘파괴’작전에 집중시켜 정전체결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는 파괴의 정도가 최고치에 달했다. 미공군은 이미 초토화된 땅에서 민간인을 포함해 적의 전쟁수행 의지를 꺾기 위해 교통을 차단하고, 식량 생산수단인 저수지와 전답을 폭격했다.
‘위생 처리’되지 않은 공중폭격 기록의 증언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은 미공군의 기록으로 그들의 공중폭격정책을 밝히는 명민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또한 실제 폭격을 수행한 조종사들의 무미건조한 기록 속에서 이 땅의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와 분노, 무고한 죽음을 생생하게 읽어낸 저자 특유의 예민한 감성이 빛난다.
이 책에 풍부하게 실린 실제 전폭기 조종사들의 임무보고서들은 한국전쟁 초기 남한지역에서조차 민간지역 폭격이 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