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소음과 음색의 측면에서 본 20세기 서양음악의 역사와 이론에 대한 개론서 Timbre of Attraction “오늘날 백남준 이후 분리된 예술들이 다시 통합되는 흐름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서 철저히 낙후되었던 현대음악의 사상을 쨍하게 따라잡게 될 것” (김남수, 무용평론가) “록음악의 저항과 프리재즈의 자유, 그리고 우연성 음악의 탈주보다 더 근원적인 음악재료의 지점에서 이 책은 음악사의 진보를 묻는다.”(최유준. 전남대HK교수)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저서 『리듬분석』은 음악적 용어의 하나인 리듬에 관심을 두자는 제언을 담고 있다. “모든 종류의 에너지 사용은 특정한 리듬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가?”(르페브르, 2013)라고 하면서 리듬을 음악의 영역에서 우주의 영역으로 이관한 르페브르는 반대로 우주와 사회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리듬들과 그것들에 대한 논의를 음악의 영역에 수입할 것을 제언하는 듯하다. 『매혹의 음색』이, 르페브르가 음고가 아닌 리듬을 통해 자폐적 음악계를 벗어나 세상을 둘러본 것처럼, 음색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세상을 둘러보는 하나의 시도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카이로스 총서 31권. 우리 주변의 소리 중에는 악음(도, 레, 미 등)보다 소음이 훨씬 더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근대 작곡가들은 어째서 소음을 음악의 재료로 여기지 않았을까? 멋진 풍경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왜 지리산의 시냇물 소리는 녹음하여 블로그에 올리지 않을까? 우리의 음악청취 경험은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으로 한정되었을까? 음악의 가능성은 거기까지일까? 이 책은 근대 서양음악의 역사와 이론을 ‘음색’과 ‘소음’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비판적으로 조망한다. 근대 이후 서양음악의 대부분은 음의 높낮이를 갖는 음악적 음을 가장 중요한 재료로 삼아, 음을 다루는 정형화된 방법들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20세기 초반에 음고가 아닌 음색, 소음 등이 여러 작곡가들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구체음악, 조직음악, 전자음악, 스펙트럼음악 등은 음색을 부차적이고 장식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그것을 조직화·구조화하려는 20세기의 시도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내용을 인문학적·과학기술적 관점과 통합시킴으로써 음악의 영역을 확장하고 음악에 대한 사유를 우리 삶, 또 생명 자체에 대한 통찰과 연결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음색이란 무엇인가? 청각을 가진 사람은 별다른 의식없이 주변의 소리를 들으면서, 듣기 좋은 소리와 불편한 소리를 구분하고 음악인 것과 음악 아닌 것을 구별 짓는다. 이 책은 이 세상의 무수한 소리들을 음색의 관점에서 조망하면 지금까지 인간의 청각이 무의식적으로 수행해 왔던 그 구분이 반드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같은 새로운 관점이 새로운 지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악음(음악적 음)과 악음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음고, 즉 음의 높낮이 느낌이다. 예컨대 어떤 노래의 첫 음이 악보상의 어딘가에 위치한 음가를 갖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파도소리는 그렇지 않다. 파도소리와 다르게 음고 느낌이 분명한 소리를 악음이라 하는데, 악음은 음색, 음고, 음가, 음의 강도라는 소리 느낌의 네 가지 차원들 혹은 속성들을 가진다. 즉 음고과 음색은 악음이 갖는 소리느낌의 네 얼굴 중 하나이다. 악음보다 복잡한 소리들, 예컨대 종소리처럼 두 개 이상의 음고 느낌을 애매하게 주는 소리, 들을 때마다 음고 느낌이 달라지는 소리, 시간에 따라 음고가 변하는 소리, 음고의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 불협화 화음 같은 것들은 소리 그 자체 혹은 소리의 총체로서의 음색을 가진다. 음색, 서양음악사의 특별한 재구성을 위한 키워드 교과서에서 우리가 배워온 서양음악사는 세습처럼 이어지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 유명 작곡가들의 릴레이이다. 근대 서양음악사를 음색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우선 20세기 이전 서구의 예술적 음악에서 작곡가들은 악음이 가진 여러 차원들(음가, 음의 강도, 음색, 음고) 중에서도 음고만을 중요하게 여겼다. 음고를 제외한 정보는 장식처럼, 대본의 부차적인 지문처럼 표기됨에 반해서(예컨대 악보에 작은 글씨로 표기되는, 점점 더 크게를 의미하는 크레센도나 그 반대인 디크레센도), 음고를 철저하게 체계화하는 기보법(악보작성법)의 발달만 보아도 음고와 다른 음의 차원들 간의 불평등한 취급은 확연하다. 그런데 사실 우리 주변에 있는 소리 중에는 소음이 훨씬 많지 않은가? 왜 악음만 특별한 취급을 받고, 소음은 배제되었을까? 왜 음색은 음악가들에게 무시당했을까? 그 이유는 풍요로운 음색을 가진 소음은 악음만큼 강한 음고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강한 음고 느낌은 복잡한 음색에 비해, 혹은 복잡한 소리로서의 소음에 비해 근대적 합리주의의 관점에 보다 잘 부합했기 때문이다. 강한 음고 느낌을 가지는 악음을 처리하는 작곡법은 풍요롭게 발전하였지만, 음색의 관점에서 보면 그 발전은 과도하다. 음고중심 작곡법의 20세기 버전인 음렬음악이라는 사조는 난해한 음악으로 인간의 일반적인 지각능력을 벗어났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20세기를 전후로 음색과 소음은, 각각 음고와 악음을 대체하는 것으로써 음악의 중요한 요소로 서서히 부각되었다. 서양음악사는 한편으로는 소음을 악음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혹은 악음의 영역을 넓히는 과정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악음이 가진 음색의 측면과 소음의 풍부한 음색을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온 과정이다. 이 책은 “음색과 소음”이라는 열쇠로 서양음악사의 여러 요소들, 경향들, 사유을 통합하고자 한다. 음색과 소음은 20세를 전후하여 등장한 새로운 음악적 재료이자 언어이다. 이러한 통합 작업은 현대음악의 역사와, 음악학적 이론 작업, 작곡의 방법론 등을 인문학적·과학기술적 관점과 연계하고 통합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구체음악과 조직음악, 전자음악, 스펙트럼음악, 그리고 음렬주의음악 등 아직은 국내에 생소한 현대음악 사조들을 천천히 살펴본다. 음렬주의를 제외한 위 사조들은 복잡한 소리, 소음, 음색 등을 음악의 주요한 재료로 혹은 음악적 담론의 주요 요소로 제시하고 있다. 이 음악사조들은 음색을 부차적이고 장식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그것을 조직화·구조화하려는 20세기의 시도들이다. 매혹의 음색, 세상을 향한 음악적 관심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동네 뒷산의 산길을 걷는 내 앞에 어떤 사람이 천천히 걸어간다. 나는 그를 추월해 좀 더 빨리 걷고 싶은데 그가 내 앞을 막고 있다. 그런데 인기척을 해도 불통이다. 자세히 보니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음악을 어찌나 크게 듣는지, 이어폰을 통한 소리를 내가 들을 수 있을 정도다. “좀 지나가겠습니다.” 여전히 듣지 못하는 그 사람. 참다못한 나는 그의 어깨를 내 둘째손가락으로 아주 살며시 누른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는 뒤를 돌아보고 나를 쏘아본다. “좀 지나가겠습니다.” 한참 동안 나를 노려보다가 시간이 좀 지난 후 상황파악이 됐는지, 옆으로 비켜 길을 나에게 양보한다. “이어폰을 꽂고 세상과 단절한 채 음악을 듣는 현대인”의 모습은, 저자가 보기에 이어폰으로 귀를 가리는 것과 같다. 이런 방식의 청취는 오늘날 음악이 끼치는 부정적 영향의 상징적 모습이다. 음악은 오늘날 현실을 가리는 귀가리개, 눈가리개로 작용한다는 통찰이다. 전문 음악가라 불려온 사람들은 어떤가? 음악가들은 현실을 잘 모른다.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음악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추상된, 음고 느낌이 강한 악음을 이렇게 저렇게 연결하여 만들어진 음악이 아닐까? 17, 18세기의 사회사상이 어떤 재해석 없이 21세기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구체적으로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