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끝에 희망은 있는가?
개념-감지-탐구-상상으로 직조하는 인류세의 풍경
우리 시대의 가장 활동적인 환경 전문 기자 남종영과 인류세연구센터를 10년간 이끌며 학문적 논의를 주도한 박범순 교수가 인류세의 풍경을 직조했다. 『에피』 ‘인류세’ 섹션의 글들에, 환경·생태 전문 PD 최평순의 글과 인류세를 주제로 미술 작업을 해 온 이소요의 글을 더해, 개념-감지-탐구-상상 네 개의 부로 묶었다. 인류세의 개념 정의로 시작해,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류세적 사례들을 자세히 살피고, 다가올 인류세에 대한 상상으로 나아가는 이 책은 지금, 이 순간 인류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진솔하게 묘사한다.
현재 인류세에 관한 논의는 쉽게 극단으로 갈린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뿌려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는 기후공학적 해결책으로 인류세를 넘어설 수 있다는 낙관론. 조만간 대재앙이 닥치고 현존 세대 안에 인류가 멸종이라도 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비관론으로. 하지만 남종영이 잘 꼬집듯, 양 극단은 과학자들이 ‘경고’하면, 미디어는 ‘공포’로 번역하고, 대중은 ‘망각’하는 매너리즘을 키울 뿐이다. 사실 그 사이에는 방대한 회색 영토가 접혀 있다. 이 책은 그 영토들을 하나씩 펼쳐 보이려 한다. 매너리즘이 가리는 인류세의 진짜 풍경과 이후의 세상을 드러내려 노력한다. 글들은 저마다의 파국과 희망을 품고 말한다. 보라고. 이게 바로 인류세의 풍경이라고.
개념: 기후위기와 인류세의 기원
‘개념’에서는 인류세라는 개념에 대한 혼동을 정리하고 한발 더 나아간 논의를 들려준다.
역사학자인 줄리아 애드니 토머스는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 시스템에 개입하여 일어나는 징후와 현상이라면서, 기후위기는 그중 하나일 뿐으로 기후위기와 인류세를 동격으로 보는 세간의 시선에 경고를 날린다.
동시에 탄소중립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박선아의 글은 줄리아 토머스의 질문을 더 파고들어 간다. 탄소중립의 미래는 언제나 유토피아인가? 온실가스를 줄이기만 하면 지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는 탄소 환원주의는 자본 투자와 기술 혁신에 인류의 판돈을 건다. 하지만 탄소중립이라는 납작한 렌즈로 접근할 경우 인류세를 총체적으로 볼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인류세가 실천적 개념으로 확장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한 박범순의 글은 충만한 지적 경험을 선사한다. 새로운 지질시대를 초래한 장본인은 서구 선진국과 거대 기업인데, 인류 전체를 암시하는 듯한 ‘인류세’라는 호명은 지구가 앓는 질병의 원인을 모호하게 만든다. 이에 대안적 명칭으로서 ‘자본세’ 논의, 그리고 실천적 방향으로서 ‘툴루세’, 그리고 근대 이후 과학과 정치의 분리를 비판하는 라투르의 논의를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김수현은 신생대 제4기 고기후·고생태학의 관점에서 인류세를 탐색한다. 인류세를 지질시대가 아닌 ‘지질학적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 변화의 시점을 신석기시대로 보는 인류초기개입설 등은 2024년 인류세실무단이 내놓은 초안이 지질학계에서 왜 거부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감지: 역사와 현실의 풍경
‘감지’에서는 여러 학자가 사유한 담론과 저자가 뛰어든 현장을 여행하면서 인류세의 역사와 현실을 다룬다.
인류는 언제부터 자연을 마음대로 쓰고 착취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박범순은 16~17세기 근세 유럽의 자연관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과학혁명이 일어나고, 국가가 도래하고, 해상 무역이 팽창했다. 정복된 곳의 오래된 전통과 역사가 지워지는 테라포밍과 제노사이드가 일어났다. 인류세의 현상은 20세기 중반 이후에 볼 수 있지만, 그 연원이 되는 사회 시스템의 변화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갈 수 있다.
최명애는 이러한 역사의 연장선을 따라 미국 남부와 뉴올리언스 지역을 여행하면서 인류세의 연대기를 보여 준다. 흑인 노예를 납치해 대농장을 만들었고, 그 자리에 들어선 열악한 노동 환경을 기반으로 한 중화학 공업 단지는 최고의 암 발생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치로 나타났다. 뉴올리언스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파국을 맞는다. 저자는 그 끝에도 희망은 있는지 묻는다.
최평순은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대가속의 재난 끝으로 인도한다. 대가속의 시기는 일군의 지질학자와 지구시스템과학자가 인류세의 시점으로 지목한 시대다. 사상 최악의 산불이 일어난 호주, 빙하 홍수가 잦아지는 히말라야의 산간 마을, 인도네시아의 석탄 광산을 누볐다.
마지막으로 남종영은 코로나19 대유행 때 일어난 밍크 살처분과 미국의 육류 대란 사태를 상기시킨다. 동물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인간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닭 뼈가 인류세의 중요한 화석이 될 거라고 이야기되는 22세기의 인류세에 당도하게 된다.
탐구: 인간-비인간 그물망에 빠지다
‘탐구’에서는 인류세를 헤쳐 나가기 위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망을 응시한 사유와 경험을 풀어놓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고 우리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 그리고 진드기 같은 미세 곤충이 인간의 가시권 밖에서 인간과 네트워크를 이루고 상호 작용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김동주는 지구의 역사, 인류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현상을 분석할 때에도 다종 관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수공통감염병 시대에 쥐와 박쥐 그리고 진드기에 대한 관심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성한아는 전국에서 ‘가장 백로가 많은’ 인구 150만의 대도시 대전의 역사와 현재를 추적하면서, 인간과 백로가 과거부터 따로 있었던 게 아니라 얽혀 존재하여 왔음을 드러낸다. 시민의 여가 공간 창출을 위한 하천 복원 사업조차 의도치 않게 백로에게 혜택을 주었다.
식물은 너무 조용해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비인간 행위자였다. 하지만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태양 에너지를 다른 생물들이 쓸 수 있는 에너지로 바꾼다. 뿌리를 뻗어 미생물을 키우고 다시 탄소를 저장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기후와 토양, 경작 방식에서 빨리 자라는 스위치그래스 같은 식물이 기후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중요한 행위자로 주목받고 있다. 민경진은 이렇게 조용하지만 강력한 지구의 수호자인 식물을 보여 준다.
생명이 없는 비인간도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간과 상호 작용한다. 미세먼지를 중심으로 하는 연결망에서 대중의 행동, 기업의 이윤 추구, 과학자의 연구, 국가의 정책 결정의 연결망을 따라가며, 미세먼지의 풍경을 각자도생과 호흡 공동체의 공기 주머니로 파악한 김성은, 김희원, 전치형의 글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상상: 인류세 너머의 지구?
‘상상’은 행성으로서의 지구와 지구에서 역동하는 행위자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 상상을 펼쳐 놓은 장이다. 지구를 인간과 비인간 동식물, 기술, 자연 등이 영향을 주고받는 총체적 시스템으로 볼 때, 우리는 인류세를 헤쳐 나가는 새로운 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문사회학자와 공학자로 구성된 인간, 두루미라는 비인간 동물, 그리고 머신 러닝을 하는 인공지능이 AI 생태학자를 만드는 과정을 최명애가 기록했다. 다종적인 결합을 보여 주는 흥미로운 관찰기다.
이다솜은 세계 전기 사용량의 1.8퍼센트를 소비하고, 인구 3만~5만 명의 소도시에 필요한 양의 용수를 당겨쓰는 데이터 센터 폭증 시대에 개인 차원에서 기여할 대안으로 데이터 기부를 상상해 본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데이터의 노이즈를 줄이는 것 또한 기후 행동이지 않을까? 강남우도 인공지능을 이용한 제품 설계가 자원 사용을 최소화하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등 환경 영향을 크게 줄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김동주는 인류세의 지평을 우주로 확장하여, 우리가 착목하여 사유할 지점을 표시한다. 인류세라는 개념이 나오면서 지구는 비로소 행성의 자리를 취득했다.
마지막으로 매립을 마친 경기도의 한 쓰레기장 시추 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