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홍콩의 민중운동을 촉발하는 뿌리 깊은 갈등과 부동산 헤게모니”
‘화천대유’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이 대선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사태에 이어 이번에도 부동산이 이슈의 중심에 있다. 소수 지배 계급의 토지 독점권이 빚어내는 빈부 격차, 부동산 가격 급등, 중산층의 몰락 등은 대한민국이 부동산 지옥이 되어버린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홍콩의 토지와 지배 계급》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반면교사와 같은 책이다. 저자인 앨리스 푼(Alice Poon)은 수십 년간 홍콩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부를 축적한 전략을 살피고 홍콩 사회의 모순을 상징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부동산’ 문제라고 규정한다. 평범한 시민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장만하기가 쉽지 않다. 홍콩의 부동산 재벌들이 지난 20년간 온갖 방법으로 부동산 가격을 높여온 결과다. 정부 엘리트들은 이를 통제하기는커녕 방임을 넘어 협조했으며 중국 정부 또한 이를 방조하긴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영국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토지 제도가 어떻게 홍콩 지배층의 막대한 재산 증식을 촉진했는지, 경쟁법의 부재가 어떻게 지배층에게 산업과 경제를 집중시켰는지를 파헤친다. 이를 통해 2014년 우산 혁명부터 2020년 범죄인 송환법 반대 투쟁까지, 홍콩의 민중운동을 촉발한 뿌리 깊은 갈등의 이면에 부동산 문제와 이를 둘러싼 짙은 헤게모니 투쟁이 있다고 단언한다.
“홍콩의 부동산 문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홍콩의 공공토지임대제는 초기 모델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토지 임대 기간 및 토지 사용료 납부 방식에서 심각한 후퇴가 있었다. 특히 1997년 중국 반환 과정에서 토지 사용권이 무상으로 재연장되는 퇴보를 경험했다. 매년 납부하는 토지 사용료가 낮은 수준이어서 부동산은 투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와 맞물려 중국 본토에서 유입된 자본으로 인해 홍콩 부동산 시장에 교란이 발생했다.
《홍콩의 토지와 지배 계급》의 저자는 토지가 하나의 도시 공간에서 어떻게 독점 및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일상의 영역까지 침투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소수의 부동산 재벌이 토지를 독점하여 홍콩 경제를 지배하게 되면서 부의 과도한 집중과 빈부 격차가 발생했다. 그 결과 토지 및 부동산 가격의 고공행진, 임대료 상승, 생필품 가격 상승, 공익사업.공공서비스 요금 상승, 중소기업 퇴출, 시장 진입장벽으로 인한 창업 기회 박탈, 실업 등 온갖 문제가 발생해 홍콩의 경제력이 저하되었다. 홍콩의 부동산 문제는 다른 사회구조적 요인과 결합되어 홍콩 시민들, 특히 청년층의 불만을 촉발하게 된다.
2009년 6월 홍콩중문대학 학생회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건설적 제안’이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모든 홍콩 시민에게 보냈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토지와 여타 경제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지배 계급의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청년들의 분노는 ‘정치’의 변화 요구로 귀결된다. 2014년 우산 혁명을 일으키고 행정장관 직접 선출권과 홍콩 독립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홍콩 정부가 이러한 문제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사회적 갈등과 분노가 고스란히 누적되어 2019년 6월 범죄인 송환법 이슈로 재점화되었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와 함께 송환법 입법에 반대하고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저항했지만 안타깝게도 국가 폭력에 의해 제압당하고 말았다. 2020년 5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중국-홍콩의 일국양제가 끝났음을 상징적으로 선포했다.
토지 제도, 산업 집중, 그리고 엄청난 부의 불균형이 온갖 사회?경제적 병폐의 근본 원인임을 간파한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한국의 20∼30대 청년들은 ‘N포 세대’로 불린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집도 연애도 결혼도 모두 포기했다. 그런데 수도권과 일부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하자 그나마 자산을 동원할 수 있는 이른바 ‘영끌 청년들’이 부동산과 주식에 몰두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 시장에 빠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홍콩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다. 그만큼 토지와 부동산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 사회의 부동산 제도를 개혁하는 데 홍콩 사례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토지 소유권 제도는 다르지만 드러나는 양상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토지 문제는 지대, 즉 토지 사용료가 누구에게 귀속되느냐가 관건이다. 결국 토지와 관련한 이해관계의 핵심인 지대를 토지 사용료나 토지보유세 형식으로 얼마나 제대로 환수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건강한 토지 제도를 수립하고 유지하려면 공동체 의식 수준이 높은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큰 틀에서 토지 사용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홍콩과 달리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는 대통령 선거권이 있으며 정치에 참여할 길이 폭넓게 열려 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청년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