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사회의 지하에는 우리가 모르는 은밀하고 방대한 범죄 세계가 있다.
붕괴, 살인, 화재, 칼부림…. 이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사건들.
아무리 외면해도 끝내 마음 한 켠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 있다.
실업률 최고치, 국가 최악의 부도상황에 처해있었던 1998년대 IMF 시절, 25살 연희는 꿈도, 돈도 없이 빚쟁이들을 피해 뒷골목을 헤매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 외엔 다른 생각은 할 수조차 없는 상황. 빚쟁이 중 한 명은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있다며 명함 하나를 건넨다. 명함에 적힌 회사의 이름은 ‘미래 클리닝’. 겉보기엔 평범한 청소업체이지만, 사실 그 실상은 범죄 현장의 시체를 처리하고 경찰이 알아챌 수 없도록 범죄 흔적을 지우는 집단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연희가 ‘미래 클리닝’에 취업을 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곳에서 연희는 폭력과 살인, 마약과 방화 등 사회의 온갖 범죄들이 만들어낸 끔찍한 주검들을 마주한다. 점차 생활은 나아지고 돈이 모여가지만 그럴수록 연희는 범죄세계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리고 눈앞에서, 바로 옆에서 펼쳐지는 끔찍한 사건들의 반복을 끝내 외면 할 수 없게 된다.
<굿잡>은 이야기 내내 대한민국에 있었던 크고 작은 비극들을 은유한다.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 여성 혐오 범죄들, 크고 작은 화재와 살인 사건….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은 이야기 속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사회의 비극들을 마주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삶을 다 바쳐서 그 비극들과 맞서 싸운다. 타인과 세계의 비극이 마침내 자신의 비극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올 때 주인공은 온 힘을 다해 달려간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 벌어지는 비극과 우리 자신을 분리시킨다.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 사회면 어딘가에 기록되어 전달되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일상을 쉽게 변화시키지 못한다. 끔찍한 비극의 얼굴들을 외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외면해도 어느 순간 마음 한 켠이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도대체 이 세상에선 왜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참사들이 발생하는걸까. 왜 이렇게 사람들은 죽어나가는걸까.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왜 이렇게 잘 들리지 않는걸까.
작가 해원은 소설 <굿잡>을 통해 이 사회에 벌어진 비극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극악의 상황, 벼랑 끝에 몰린 여성들.
그녀들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타개해나가는 모습은 강렬하고 묵직하다.
강렬한 여성 서사로 장르계 주목을 받았던 해원 작가가 두 번째 소설을 출간했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의 주인공이 남미 마약 카르텔의 한복판에서 사건을 겪는 해원 작가의 전작 <슬픈 열대>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런 소재, 그런 배경에서 여성 주인공은 장단점이 있겠지만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는 데 있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두 번 째 소설 <굿잡> 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살인 사건 현장을 청소하는 독특한 직업 설정으로 장르적 성격이 매우 강렬한 기획임에도 작가 해원은 다시 한번 여성 주인공의 서사를 그려낸다. 남성 주인공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편안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작가 해원의 여성 주인공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사회 환경적 이유로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다. 주인공다운 격렬한 딜레마 속에서 그녀들은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녀들을 도와주는 왕자님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자신을 그런 상황에 몰아넣은 외부적 상황을 비난하거나 책임을 돌리지 않고 정면돌파를 선택한다. 더 나아가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담담한 처절함이 만들어내는 작품의 무게는 어떤 남성 서사보다 강렬하고 묵직하다.
작품은 작가 해원이 자신의 소설 속 여성 주인공을 향해 살아가라고, 틀리지 않았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는 지지선언처럼 힘있게 펼쳐진다.
독특한 설정, 정밀한 묘사,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허구적 이야기지만 매일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로하는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