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혁명의 성지 연안으로 가는
조선의용대 청춘들의 눈부신 희망의 기록!
픽션과 논픽션을 가르는 소설의 모험
한국문학에서 보기 드문, 생동감 넘치는 사실적인 전투 장면 묘사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_현기영 소설가
안재성의 글에는 과장도 미화도 영웅화도 없다. 있던 사실을 그대로, 냉정하게 그려낸다.
_김성동 소설가
『파업』『황금이삭』『경성트로이카』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 안재성의 장편소설 『연안행』이 출간되었다. 1980년대 노동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파업』, 한국 근ㆍ현대사 100년의 궤적을 훑어낸 『황금이삭』, 1930년대 경성에서 노동운동을 펼친 지하 혁명조직 '경성 트로이카'의 활동을 복원하고자 했던 『경성트로이카』에 이르기까지. 안재성 작가는 그동안 한국 근ㆍ현대사에서 잊혔던 역사와 인물들을 복원하는 데 힘써왔다.
이번에 출간된 장편소설『연안행』에서 안재성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엄혹한 제국주의 시대에 머나먼 중국 땅에서 독립을 위해 싸웠던 조선의용대이다. 1938년 김원봉에 의해 창설된 조선의용대는 중국의 광활한 대륙을 무대로 항일운동에 업적을 남긴 독립운동단체. 이 소설은 김원봉, 박효삼 등 당시 조선의용대를 이끌었던 실존 인물들과 주인공 임상혁, 정명선 등 가상 인물들을 등장시켜 조선의용대가 머나먼 중국 땅에서 이루고자 했던 단 하나의 꿈, 독립에 대한 열정과 치열한 싸움을 호쾌하게 그려낸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
액자소설 형식을 띤 이 소설은 모 문학상의 심사위원을 맡은 작가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 소설 한 편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북한 주민이 보내온 그 소설의 제목은 ‘연안행’으로, 그의 아버지가 겪은 파란만장한 독립운동기를 그리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은 임상혁. 1938년 늦가을, 스물세 살의 나이에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중국 상해로 건너온 청년 임상혁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주로 모인다는 상해의 한 조선 국숫집에서 정명선이란 여인을 만나 그녀의 권유로 조선의용대에 합류한다.
그렇게 그의 파란만장한 독립운동기가 시작된다. 이 소설은 임상혁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조선의용대(1942년에 조선의용군으로 바뀜)가 무한, 계림을 거쳐 연안으로 가기까지의 여정을 주요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들의 여정은 돌파와 후퇴를 거듭하는 험난함의 연속이다. 당시 조선의용대는 함화(가까이 맞선 적군을 향하여 큰 소리로 하는 정치적ㆍ군사적인 선전전)를 주로 담당했지만, 상황에 따라 격렬한 전투를 치르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때문에 보통 전쟁이나 전투 상황을 그린 작품들에서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의 고뇌 등을 무겁게 그려내기 마련이다.
『연안행』이 여타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럼에도 참전 중인 병사들의 모습을 시종일관 밝고 힘차게 그리고 있다는 것.
팔로군과 우리에게 보급되는 좁쌀은 아무리 잘 물에 일어서 밥을 지어도 모래알이 씹혔다. 힘껏 씹었다가는 이빨이 부러지기 딱 좋았다. 그래도 대원들은 껄껄 농담으로 넘겼다.
“아무리 모래가 많아도 그래도 쌀알이 더 많지 않겠어?”
“에쿠, 또 돌이다. 에라, 일본 놈 씹어 먹듯 갈아 먹을란다.”
-128쪽, 2부「연안송」중에서
여러 고뇌의 지점들을 언급하면서도 끝끝내, 이 소설은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뭉친 이들의 힘찬 발걸음과 소망을 잊지 않고 빼곡하게 기록해낸다. 전투 장비와 먹을 것, 입을 것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의용대원들은 시종일관 웃음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그들이 닿은 곳은 다름 아닌 연안.
그들은 왜 연안에 갔을까. 연안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잊힌 꿈을 흔들어 깨우는 소설 『연안행』
이 무렵의 연안은 혁명적 사상을 가진 모든 조선인들이 꿈에 그리는
곳이었다. 잔학한 일본군과 부패하고 무능한 국민당 군대에 더렵혀진
중국 대륙에서 유일하게 정의가 지켜지는 곳으로 여겨지던, 혁명의 성
지였다. 국내의 항일 사회주의자들까지도 중국공산당이 웅거한 연안
을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하고 겹겹의 검문을 뚫고 연안행을 감행하고 있었다. 조선의용군의 연안행 결정은 대원들을 들뜨게 했다.
-160~161쪽, 2부「연안송」중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격랑의 한국 현대사에 휩쓸려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으로 인한 파워 게임 속에서 독립을 위해 힘썼던 조선의용대원들의 업적은 상당 부분 가려진 게 사실이다. 『연안행』은 2012년이 다가오는 이 첨단의 시대에 그들의 삶과 꿈을 되살리려는 시도이다. 물론 이것은 오랜 기간 관련 자료를 모으며 소설을 완성한 안재성 작가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연안행』은 잊혔던 꿈을 다시, 흔들어 세운다. 지금으로부터 70년도 더 된 이 이야기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청춘들의 뜨거웠던 피와 땀, 연안으로 향하던 그 걸음걸음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