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LA 타임스 북 프라이즈, 애스펀 워즈 문학상 수상 뉴욕 타임스 최고의 책(2017) 맨부커상 최종 후보(2017) 단 네 편의 소설로 “한 세대의 가장 창의적이고 재능 있는 작가”(가쿠타니 미치코, 《뉴욕 타임스》)라는 평을 들으며 이 시대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로 떠오른 파키스탄 출신 작가 모신 하미드의 신작 《서쪽으로(Exit West)》가 문학수첩에서 출간되었다. 9/11테러를 바라보는 파키스탄인의 시선을 이야기하고(《주저하는 근본주의자》) 자기계발서 양식을 차용해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서 더럽게 부자가 될 ‘나’의 인생을 풀어놓았던(《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작가는 이번에는 끝없이 이동하는 ‘난민’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아시아의 어디쯤일, 이슬람 전통을 가진 어느 도시에서 만난 젊은 남녀가 타국으로 단번에 이동할 수 있게 해 주는 ‘문’을 통해 먼 곳으로 이동하며 겪는 변화와 갈등을 다루는 이 작품은 휴대전화와 인터넷, 빠른 교통수단 등을 통해 전 세계 어디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된 현대에서 과연 ‘난민’은 누구인지를 묻는다. 시간을 넘어, 공간을 넘어 일어나는 이주의 경험이 대이동의 시대를 맞은 현대의 삶에 과연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도발적이면서도 영리한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출간 직후 ‘지금까지의 작품 중 최고’(NPR[미국 공영 라디오])라는 찬사를 얻으며 전 세계 32개 언어 번역 출간, 《뉴욕 타임스》, 《피플》,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을 비롯한 8개 매체 최고의 책 선정(2017), 〈LA 타임스 북 프라이즈〉와 〈애스펀 워즈 문학상〉 수상(2018), 〈맨부커상〉 최종 후보(2017) 등의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감독으로 유명한 루소 형제가 영화화 판권을 획득해 제작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모두가 어딘가로 이주하는 시대, 비현실과 현실이 만나는 그 어딘가의 이야기 난민들이 넘쳐나지만 아직 전쟁 중이지는 않은 어느 도시의 강의실, 보수적이고 따뜻한 청년 사이드는 도발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의 나디아에게 강하게 끌린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만남을 시작해 곧 서로에 대한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고, 그사이 도시가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며 그들의 관계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 위태롭게 타오른다. 가족과 사촌이 폭탄에 목숨을 잃고 익숙했던 거리가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가운데 전쟁이 없는 타국의 도시로 빠져나갈 수 있는 ‘문’에 대한 소문이 돌고, 사이드와 나디아는 새로운 곳에서 그들의 삶을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데……. 모신 하미드는 그동안 파키스탄과 미국, 영국 등을 오가며 살아온 스스로의 정체성을 작품마다 조금씩 담아내며 자신의 삶과 작품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왔다. 핵 실험을 하는 나라(《나방 연기》), 9/11 테러를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각(《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등 그간의 작품에서 꾸준히 자신의 삶의 궤적을 통해 얻은 시선을 과감하고 영리한 방법으로 작품 속에 담아낸 그가 이번에는 ‘이주’라는 키워드를 잡았다. 휴대전화 화면만 들여다봐도 간단히 먼 타국과 접속할 수 있는 현대에서, 그처럼 간단한 방식으로 정말로 물리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하나의 ‘문’을 열어 바로 타국의 먼 도시로 이동하는 사이드와 나디아의 모습에서 작가는 이동하는 자의 삶의 모습을, 물리적인 이동에 따른 인간의 심리와 관계의 변화를 그린다. 나디아와 사이드의 삶은 언뜻 상당히 무겁고 힘겨워 보인다. 고향 도시는 폭격으로 조각이 나고, 가족과 생이별을 하며, 옮겨 간 도시에서는 적대적인 현지인들에게 얻어맞는다. 그러나 나디아와 사이드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런 큰 사건들이 아니다. 일상의 사소한 부분, 함께 담배를 피운다거나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곁에 있어 준다거나 상대방을 생각해서 해 준 조언이 오해를 받는다거나 하는, 어느 커플이든 겪을 수 있는 일들이 이들의 관계를 가깝게 하고, 또 멀게 만든다. 전쟁이라는 엄청난 사건 속에서 오히려 이런 일상적인 경험들이 관계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은 이 소설에 공감과 보편성을 선사한다. 작가는 전쟁이나 난민이 겪는 폭력의 경험보다도 사이드와 나디아의 내면과 일상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독자는 이들의 삶과 관계가 자연스럽게 변해 가는 모습에 몰입해 자신이 나디아인 듯, 자신이 사이드인 듯 작품에 빠져들어 간다. 거대한 폭력으로 찢겨 나가는 삶 속에서 정작 사람을 울고 웃게 하고 관계를 움직이는 작은 경험들을 포착하는 작가의 시선에서 비범한 통찰력이 엿보인다. 이 작품은 또한 이야기의 곳곳에 세계 이곳저곳의 사람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모험, 또는 소중한 인연을 만나는 하나의 기회로 다가오는 또 다른 ‘이동’들을 그린다. 이동의 경험이 삶 속에서 어떻게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지를 묘사하는 이 에피소드들은, 오후 한때의 경쾌한 외출쯤으로 그려지는 이러한 이동이 세계 곳곳에 얼마나 만연할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지극히 사실적인 주인공 커플과 대비해 더없이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 이야기들은 독자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누구에게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미래가 ‘문’을 통해 열리는 것이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삶, 그 아름답고도 씁쓸한 변화에 대하여 세계의 어느 곳에서든, 누구에게든 이동은 일어난다. 평생을 한집에서 살아온 이들마저도 “시간을 통과해 이주”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이동 속에서 우리 삶의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지, 무엇이 남고 무엇이 떠나가는지를 끊임없이 관조하며 질문을 던진다. 공간과 공간을 넘어, 시간과 시간을 넘어 일어나는 이동 속에서 우리의 삶에 궤적을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 나디아와 사이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이들과 남겨진 자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게 하는 모신 하미드의 《서쪽으로》는 분명 아름답고도 씁쓸한, 길고 큰 여운을 남기는 이 시대의 새로운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