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높고 쓸쓸한... ?
천상천하유아독존
우주 가운데 나보다 더 존귀한 이 그 누구인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초지성
특별한 능력이 낳은 비극적 운명!
이질적이고 이기적인 이종 인류, 이상한 존의 일생
73년 만에 국내 최초로 완역된 올라프 스태플든의 <이상한 존>
스태플든의 광대한 지적 전망은 나의 우주관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내 작품의 상당수는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 아서 클라크(작가, 미래학자)
오늘날 과학소설사에서 크나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추앙받지만, 원래 올라프 스태플든은 과학소설계와는 교류가 없었던 철학자이자 작가였다. 첫 책 <최후와 최초의 인간>을 낸 뒤에 열렬한 반응을 나타낸 것도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당대의 주류문학계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에 배인 심원한 시각과 풍부한 아이디어들은 숱한 과학소설 작가들에게 씨앗을 뿌렸다. 직접적인 계승자를 자처하는 아서 클라크를 비롯해 <나니아 연대기>를 쓴 C. S. 루이스도 스태플든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이 밖에도 오늘날 모든 과학소설 작가와 작품들에서 직간접적으로 스태플든의 영향, 특히 철학적인 면에서 모티브나 영감을 받지 않은 경우는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가 남긴 유산은 크다. 아직까지 국내에 올라프 스태플든의 작품이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기에, 최초의 완역판을 만들면서 누린 행운과 진작 누리지 못했던 아쉬움이 묘하게 뒤엉킨다.
이 소설은 존 웨인라이트라는 초인의 탄생부터 최후까지, 짧지만 파란만장한 일생을 관찰자의 시점에서 술회하고 있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논점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를 매우 독특한 입장에서 객관화시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 미덕이다. 오만하게 출발하는 듯 하다 이내 무심함으로 바뀌는 존의 시선에 이입되다 보면 독자는 흔치 않은 방식의 자기 반추를 경험하게 된다.
- 박상준, 작품해설 중에서
스태플든은 굉장한 작가다
그 비범한 상상력과 시야로 그는 찬란한 대가들의 영역에 입성했다
- 도리스 레싱(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모든 슈퍼히어로물의 원조
다양한 초능력자들의 향연, 핍박받는 초능력자의 오리지널 모티브
모든 슈퍼히어로의 모티브를 집적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상한 존>에는 다양한 초능력자들이 등장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들의 능력, 1700년대에 태어나 아주 천천히 늙어가는 고급 매춘부 자클린, 35년 전에 죽었지만 시공간을 넘나드는 아들란, 엄청난 지성과 기술적 재능을 갖고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응군코, 의학에 통달한 독서광 로, 인지 능력을 뛰어넘어 심적 상상력까지 통찰할 수 있는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자 랑가체, 적외선도 볼 수 있는 초고감도 시력을 지닌 젤리, 모성적 온화함과 연민으로 사람들의 얽힌 마음을 풀어주는 시그리드 등 각각의 능력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능력보다 먼저 눈에 띄는 기이한 외모로 인해 날 때부터 하자있는 태생으로 취급되었고, 그들의 능력이 발견되었을 때는 위험한 종자로 다뤄졌던 공통점이 있다. 존은 자기와 같은 동료들을 모아 인간 문명과는 별개의 세계를 건설하지만 그들의 유토피아를 위협으로 간주하는 인간들에 의해 막다른 길로 내몰린다. 하지만 존과 그의 동료들은 다가올 재앙을 인간의 습격이 아니라 눈사태 같은 자연재해로 여긴다. 그리고 인간 광기의 제단에 올려지는 제물의 운명을 거부한다. 마지막까지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다음 세대의 신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 어쩌면 그들은 세상의 끝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느리게 흘렀던 생의 시간 동안 매일 세상의 끝을 경험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어느날 별안간 세상의 끝이 오는게 아니다. 우리는 매일 세상의 끝을 경험해 온 것이다.’ 99년 미국사회를 들끓게 했던 콜로라도주 고등학교 총기난사사건의 주범 소년들이 평소 마릴린 맨슨을 추종했다는 이유를 들어 보수언론 미디어가 맨슨과 락매니아들에 대한 마녀사냥을 전개했을 때, 맨슨 자신이 직접 이에 대항하여 배포한 글 중에서) 그래서였을까, 생의 끝자락에 섰을 때도 존은 천진한 소년처럼 장난을 쳤고 연극을 했다.
문체나 문화 비판이야 당시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본서에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적 세련미가 곳곳에 숨어 있다. 제임스 존스와 아들란의 이야기, 랑가체의 반전은 그것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훌륭하다. 인간 윤리의 마지노선을 단 두어 줄로 건너뛰는 장면 또한 느와르적인 시각에서 볼 때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올라프 스태플든이 후대 과학소설 거장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만약 소설 전체에 넘쳐흐르는 우월감에 속이 뒤틀리는 독자라면 작품 중에 등장하는 블룸즈버리 그룹에 대한 비판을 보며 존처럼 기괴한 웃음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존과 아들란은 역사를 순간의 연속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겹쳐놓고 동시에 투시하지도 않으며 시간이라는 적분 함수에 긴 몸뚱이를 걸치고 있는 유기체로 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시간과 사건은 에테르와 빛과 같은 관계가 아니라 일체이며, 꿰뚫어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일순간에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다. 어쩌면 고전과 현대 작품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존이야 전 우주를 그렇게 인식할지 모르지만,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문화의 생산물 정도는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 김창규, 옮긴이의 말 중에서